건강한 자기 개념 세우기 > 마음읽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마음읽기


 

건강한 자기 개념 세우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406회 작성일 10-11-20 14:34

본문

고등학교 2학년인 효주(가명)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효주가 친구들을 많이 챙기는 편이었다. 문제는 상대방 친구들도 효주를 친하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효주가 자기들에게 하는 것처럼 자잘한 데까지 신경쓰거나 챙겨주는 일은 더욱 없었다. 효주가 자기들한테 하는 건 ‘저 좋아서’ 혹은 ‘지가 다 잘 보이고 싶으니까’ 그러는 것쯤으로 치부했다. 대놓고 그런 효주를 비아냥거리는 애들도 있었다. 효주가 힘있고 인기있는 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별짓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리고 친하다고 여기는 아이들조차 자신을 냉대할 때마다 효주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마음속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아무리 하찮은 얘기라도 굉장한 상처가 되곤 했다. 상대방이 누구든 그가 자신에 대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고 거기에 매달렸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싫은 순간이 많았다. 특히 혼자 있는 밤시간이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먼지만도 못한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효주의 내면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유난히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친구 하나가 효주와 친구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넌 그렇게 빌붙는 게 좋으니?정말 징그러운 애야!”했던 것이다. 평소 효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애들조차 그 아이의 말에 다 할말을 잃고 말았다. 오히려 효주가 아무 얘기도 아니라는 듯 엉뚱한 화제를 꺼내 어색함을 무마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효주는 입을 다물었다. 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그냥 멍한 얼굴로 오고갈 뿐이었다. 집에서도 자기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엄마가 들여다보면 그냥 잠만 자고 있거나 아니면 멀거니 방 한구석에 앉아 있거나 했다. 결국 효주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오게 되었다.
효주의 문제는 자기 개념이 너무 빈약하다는 데 있었다. 십대 시절에는 누구나 분명한 자기 개념을 갖기 어렵다. 사춘기의 방황을 거쳐 서서히 자기개념의 윤곽이 잡혀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원인으로 인해 자아 정체성을 상실할 경우, 효주처럼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빈약한 자아상을 채우려고 하기 쉽다. 덕분에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욱 더 올바른 자기개념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자기개념의 학문적 정의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간단히 요약하면,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는 밑그림, 정체성, 자기 존중 정도 등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자기개념 여하에 따라 자존심과 자기 확신이 결정된다. 따라서 자기개념이 분명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남들의 평가에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 자기개념에서는 자아의 역할이 매우 크다. 자아는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의식의 문지기라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맡고 있다. 자아에게 그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관념, 기억, 감정, 지각 등은 자각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아는 마치 증류장치와 비슷하다. 많은 심리적 자료들이 그 속에 넣어지지만 그 중에서 완전한 자각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린 매일 온갖 종류의 일을 겪는다. 그러나 그 중 대부분은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자아에 의해 걸러진다. 이것은 자아의 중요한 기능이다. 증류장치에서 무엇이 걸러지는지는 부분적으로 경험의 강도에 의해 결정된다. 약한 경험은 자아의 문전에서 퇴짜를 맞을 테고 강한 경험은 그 문을 부수고 들어갈 것이다. 그런 자아가 갖고 있는 재산은 많다. 일을 수행하고 책임을 지고 인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유머감각과 호기심, 유연성, 용기 등도 다 이 자아 속에서 그 싹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한 자아인식에 도달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개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차츰 자아인식에 눈뜨게 되고 성장하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개념도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린 누구나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에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두운 면까지 보아야 할 때 그것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자기 수용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미처 모르고 있던 자기 감정이나 생각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하나씩 얻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정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안정된 자기개념을 만들어 갈 때 건강한 자긍심이 생겨난다. 그것이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어떤 외적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기 자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 시기에는 그렇게까지 굳건한 자기개념은 바랄 수 없다. 따라서 많은 부분 외적인 부분에 자기 평가를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대부분의 십대들이 부모나 친구들, 학교 선생님 등,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때 얼마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느냐가 결국 건강한 자기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안 분위기가 온화하고 가족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아이는 정서적인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폭군처럼 군림하는 타입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이고 과잉보호를 하는 타입일 경우에는 정서적인 불안정 속에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때 아이들은 자기가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부모의 기대치나 희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런 생각은 아이들에게서 자기 권리는 물론이고 자기 책임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걱정이 많고 불안정하고 고립되거나 적개심을 품으며 성장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자기개념이 불분명한 채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 경우, 효주처럼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적이 되고 그들의 평가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반대로 매우 시건방지고 분노가 가득한 십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때 주변에서 부모나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청소년기에 자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자아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경우, 그 아이는 올바르고 건강한 자기개념을 획득하는 데 훨씬 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