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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할머니 댁 4대 가족에게 듣는 행복과 건강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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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1,219회 작성일 15-06-21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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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풍류처럼, 풍류를 일처럼”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개성 음식 전문점 ‘개성하우스’는 78세 정영희 할머니와 그의 딸 김숙자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만둣국, 개성 편수 등 음식을 정성껏 만들고 딸은 가게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을 처리한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무조건 집에서 편히 쉬는 걸 당연시 했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정영희 할머니처럼 일하면서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는 일 없이 남은 세월을 사는 것이 오히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게 정영희 할머니의 말씀. 그 말씀처럼 <행복>은 자신의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장수를 누리는 비법 중 하나라고 생각, 평균 수명의 나이에 현역에서 활동하며 장수를 바라보는 정영희 할머니를 만났다. 자신의 존재를 일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건강과도 직결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매일 아침 출근하는 할머니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정영희 할머니는 깨끗이 씻고 화장한 후 나설 채비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신념을 평생 지켜온 만큼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아침 10시가 되기 전 개성하우스로 출근한다. 딸 김숙자 씨는 이런 할머니의 부지런함에 대해 젊은 사람도 이토록 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어머니는 ‘일’ 자체를 좋아하세요. 젊을 때부터 이날까지 거의 평생을 해오셨죠. 개성하우스를 열기 전에는 대학교 내에서 스낵 코너를 운영하셨고, 그전에는 레스토랑을 하셨어요. 먹고살 걱정이 없어진 후 일을 그만두시려고 했지만 오히려 집에 계시니 아프시더라고요.”
할머니의 일터인 개성하우스는 경제 활동을 하는 기쁨을 주는 동시에 할머니를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곳으로, 할머니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할머니의 손맛에 반해, 그리고 특유의 마음 씀씀이에 반해 그를 만나러 오는 단골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감기에 걸린 단골 꼬마 손님이 유독 할머니가 만든 호박 부침개를 찾아 부모를 졸라서 왔단다. 할머니 생신 때는 케이크를 들고 와서 영업이 끝난 후 축하하고 돌아간 손님도 있었다. 깔끔한 개성식 음식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개성 요리 강습도 한다.
“피곤하면 잠깐잠깐 중간에 쉬더라도 문 닫는 10시까지는 꼭 자리를 지켜. 가게 주인이 항상 나와 있어야지.”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할머니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적극적으로 삶을 이끌어나가는 동기 부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점이 할머니의 제1의 건강 비법이라고 가족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가끔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도 평생 해온 일을 손에서 놓게 하는 것이 불효인 것 같아 그저 묵묵히 도울 뿐이다.
그렇다고 정영희 할머니가 매일 일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 사위 이세권 씨가 꼽은 정영희 할머니의 또 다른 건강 비법은 ‘풍류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일과 놀이의 균형을 맞추며 삶을 향유하는 것이 할머니의 건강한 삶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단다. 촬영이 있던 일요일, 할머니는 이미 선약이 있었다.
“4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어. 예전에는 이 친구들과 매주 주말마다 부부 동반으로 놀러 다녔지. 그때는 버스를 빌려 밴드까지 태워 다녔어. 돌아다니다가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내려서 음악을 연주하고, 갖고 간 참숯을 꺼내 고기도 구워 먹었지. 이제 할아버지는 다 돌아가시고 우리만 남았어. 그래도 2주나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 주도적인 친구 한 명은 우리 모임을 위해 큰 차를 샀을 정도야. 어떻게 만날 똑같이 살 수 있겠어?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지! 나는 젊은 시절에 우리 남편이랑 왈츠도 배웠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차려입고 춤을 추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놀 수 있을 땐 실컷 놀아.”

개성에서 홀홀 단신 내려와 일군 4대 가족 정영희 할머니에게 일도 중요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개성이 고향인 할머니는 한국전쟁 중 월남했다. 그때 나이 겨우 열여덟 살. 다른 식구보다 하루 일찍 서둘러 서울로 내려온 것 때문에 영영 가족과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단다. 작고한 남편 고 김춘배 옹 역시 학업을 위해 개성에서 서울로 내려왔다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홀로 남은 동향 사람끼리 만나 가정을 꾸렸고 딸 김숙자 씨와 경자 씨를 낳으며 남쪽에 정착했다. 2대 김숙자 씨는 자라서 이세권 씨와 결혼해 딸 이민영 씨를 낳았고 3대 이민영 씨는 최인배 씨와 결혼해 4대 세영, 세은, 유현이를 낳았다. 어렵게 시작한 1대 부부는 이렇게 4대까지 단단히 뿌리를 내렸고, 알알이 영근 가족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렇기에 이들 모계 4대 가족은 이사를 다닐 때에도 몰려다닐 정도로 떨어진 적이 없다. 결혼 후 얼마 전 분가한 민영 씨 내외의 집도 그의 할머니 집에서 차로 5~10분 거리.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할머니를 보러 오는 민영 씨 내외와 마찬가지로 할머니도 출퇴근하다가 손녀와 증손녀 얼굴이 보고 싶으면 수시로 들르며 끈끈한 가족애를 이어간다.
“나는 아직도 사위를 처음 본 그날을 기억해. 우리 딸 숙자가 대학 졸업할 무렵 나는 종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지.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점퍼를 입고 들어온 사위를 보고 ‘저 총각 스타일 좋네’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도 딸 있는데 소개해줄까’라며 장난을 쳤어. 그런데 그 총각이 밤을 새우며 진짜 기다린 거야. 그게 인연이 돼 숙자와 나, 셋이서 소주도 한잔씩 마시다가 가족이 됐지.”

지금도 셋이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씩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할머니는 한 세대 젊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니 절로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단다.
그렇다면 이들 가족에게 정영희 할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딸 김숙자 씨는 어머니를 두고 ‘우리 가족의 멘토’라고 한다. 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정영희 씨는 평생 일에 대한 책임감과 부지런함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여자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한다며 딸에게 많은 교육을 시켰고 바깥 활동을 지지해줬다. 그런 성격을 그대로 닮은 김숙자 씨는 하얏트 호텔에서 오랫동안 총지배인으로 일할 당시에도 가장 먼저 출근해 부지런함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가족 모임이 있으면 할머니는 늘 가정의 평안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하고 자손들은 귀를 기울인다. ‘가정이 최우선이다’‘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라’‘어른을 잘 공경해라’‘부부가 최고다’ 등 삼강오륜에 나오는 것과 같은 낡은 이야기지만, 곱씹을수록 진리로 바로 통하기 때문에 생활의 지침 같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다 아는 이야기라도 반복해서 듣고 또 몸소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자손도 따라 하는 걸 당신도 경험했기에 자주 덕담같이 말씀한다.
“내게도 할머니가 있었지. 나의 할머니는 밥을 먹다가 거지가 오더라도 반드시 나눠 먹으라고 하셨어. 그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해. 그래서 난 젊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걸 참 좋아했어. 직접 스웨터를 떠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보내기도 하고. 예전에 손녀 민영이와 같이 살 때는 둘이서 토요일마다 방영하는 <사랑의 리퀘스트> 보는 게 우리의 즐거움이었어. 1천 원이나 2천 원이라도 매주 기부했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 남을 도우면서 살라고 말해. 이런 나의 말이 앞으로 민영이의 삶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가족은 할머니의 울타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말도 정영희 할머니의 가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민영이가 할머니를 정말 사랑해요. 그러니까 민영이 시댁에서도 할머니를 공경하시고 안부를 물어오시죠. 민영이 아이들도 외증조할머니라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잘 따라요. 어른을 존경하는 모습, 아이들이 그대로 닮는 걸 보면 어머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물며 손녀사위도 할머니에게 안기고 뽀뽀를 한다니, 이 정도면 아래에서 위로 가는 사랑이 짐작 가리라.
“할머니가 감수성이 예민하고 로맨틱하세요. 우리가 ‘늙은 소녀’라고 부르기도 해요. 비 오는 날 좋아하시고 첫눈과 크리스마스 기다리시고…. 시도 종종 읊어주시죠. 이런 할머니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도 지금껏 크게 편찮으신 적 없이 건강하게 사시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민영 씨의 말처럼 추운 날씨의 촬영에도 정영희 할머니는 시종일관 쾌활하고 넉넉한 마음을 내보였다. “젊을 때에는 내가 가족을 위해 울타리를 만들고,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내 울타리가 되어주는 게 가족이다”라며 자손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말하던 할머니. 그 말에 옆에 앉은 증손녀들이 “가족끼리는 뭐든지 다 해줘요”라며 할머니 말씀에 덧붙였다. 행복과 건강은 화목한 가족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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