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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계 할머니의 무병장수 비결: 소박하게 밥 먹고 헐겁게 나이 먹었더니 어느새 9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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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552회 작성일 15-06-2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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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가 저렇게 귀여울 수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있을까. 눈이 빨개지도록 만개한 천냥금 나무 옆에 서서 웃는 할머니. 파도가 어루만진 몽돌처럼 둥실둥실한 그 웃음에 자꾸 마음이 풀어진다. 이런 웃음을 만나니 늙는다는 게 꼭 쓸쓸한 일만은 아님을, 인생은 갈피마다 다른 종류의 기쁨이 남아 있음을 알 것 같다. 서귀포의 한 구릉, 올해로 98세의 오월계 할머니를 찾아나선 길이다.

“적당히 뭉쳐 살아야 해” 밀감밭 사이 돌담집에서 할머니는 혼자 ‘잘’ 살고 있다. 박하사탕 먹으며 송해 씨 나오는 <전국 노래 자랑>도 보고, 김동건 아나운서 나오는 <가요 무대>도 보면서 혼자 잘 지낸다. 할머니 가족은 할머니의 집을 중심으로 둘째, 셋째, 다섯째 아들의 살림집이 가까이에 흩어져 ‘한 울타리 여러 살림’을 살고 있다. 자식이 가정을 이루면 시어머니는 밖거리(바깥채)로, 식구가 많아진 며느리네가 안거리(안채)로 옮겨 가 ‘한 울타리 두 살림’을 하는 제주의 풍습 때문이다.“항시 자유여. 간섭도 없고 내 하고 싶은 대로 자유여. 여덟 시에도 아홉 시에도 일어 잡고 싶으면 일어나고, 눕고 잡으면 눕고. 자다 자다 잠 안 오면 옛날 재미난 생각 하면서 누워 있고. 글케도 뭉쳐서 살면 좋지 좋아. 넘 한데 뭉치지 말고 적당히 뭉쳐야 해.”
할머니의 말처럼 서로 부엌과 광을 달리하면서도 ‘적당히 뭉쳐’ 사니 부모든 자식이든 마음의 짐이 훨씬 가볍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고, 갈등이 생길 기회도 적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도타운 정은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동거와 분가를 현명하게 절충해 사는 오월계 할머니는 아흔여덟의 나이에도 삼시 세끼 손수 마련해 즐거이 먹고, 맛나게 만든 반찬을 오히려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산다. 병원도 혼자 다니고, 버스도 혼자 타고 시내 나가 볼일 보고, 글은 잘 모르지만 서울 넷째 아들네 전화도 척척 해낸다. ‘한 울타리 여러 살림’이 만든 독립정신은 할머니를 정신적・육체적으로 더 당당하게, 더 건강하게 살게 한 원천인 것이다. 그렇게 적당히 따로 살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다시 사이가 정겹게 깊어지고, 그걸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매는 옥색 치맛감만큼이나 곱다. 유난히 건강한 할머니의 웃음은 다 이유가 있었다.

산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 1백 년 가까이 살았음에도 뒤엉키지 않은 할머니의 기억은 신기할 따름이다. 그 밝은 기억으로 할머니가 들려준 집안 내력이 일품이다. 할머니의 시댁은 대포리의 강씨 종갓집으로 토지를 많이 가진 부자였다. 그 시절에 사위와 노비에게까지 재산을 분배하성욱했다는 문서가 국회 도서관에 남아 있을 정도로 큰 부자였다. 할머니의 시아버지가 34세(할머니는 숫자, 연도까지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총명기가 대단하다)에 돌아가시자 대신 시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했다. 선도교(증산교 계통의 신종교)의 산증인이라고 할 만한 시어머니는 재산을 선도교에 많이 헌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제주도가 전쟁터가 되리라 감지한 시어머니는 남은 재산을 팔고 식솔들과 김제로 옮겨 갔는데, 한 달 만에 해방이 됐다. 다시 제주로 내려올 형편이 못 된 가족은 10년 가까이 김제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1952년에 다시 제주에 내려왔을 때 집도 밭도 아무것도 없던 가족은 할머니의 친정 옆에 거처를 마련했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남편은 대신 가정을 살뜰히 챙기지 않았고, 밥벌이와 집안 단속은 오롯이 할머니 몫이 됐다.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옥돌 같은 7남매(원래 9남매였는데 위로 두 자식을 일찍 여의었다)를 키우고, 묵묵히 돌밭을 일궈 식솔들 밥을 만들었다. 보리・고구마・조를 심은 밭고랑을 오가며, 꿈에서도 “이구 다리야”를 외며 아흔여덟 고랑을 넘은 오월계 할머니. 그동안 식솔은 72명으로 늘어났다. 20명의 손자, 그들이 낳은 20명 남짓의 증손자, 다시 그들이 혼인해서 사위・며느리에 고손자(큰아들의 딸이 낳은 두 손녀, 곧 할머니의 고손자)까지 72명의 대가족이 되었다.
수십 명 되는 식솔들의 밥 냄새에 묻혀 평생을 바지런히 산 것, 이것이 할머니의 무병장수 비결 두 번째다. 산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임을, 해야 할 일이 있고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무감이 삶의 지지대가 되어준다는 걸 할머니는 삶으로 증명했다. 이제 베짱이처럼 살 때도 됐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바지런하다. 아직도 밭에 나가 밀감을 따고(자식들이 못 하게 말려도), 여전히 손빨래로 의복을 건사한다(할머니는 평생 동안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할머니 집의 마루는 반들반들 윤이 난다. 윤이 나는데도 훔치고 닦고 또 훔치고 닦아낸 덕에 아흔여덟 해를 호강하며 살아온 마루다.
“뭣이든 안 쓰면 걷어가는 것이 세상 이치인디. 힘도 안 쓰면 걷어가고, 재주도 안 쓰면 걷어가고. 하늘이 그냥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다 쓰라고 내줬는디 안 쓰고 아끼면 똥만 되지. 자꾸 몸을 움직여줘야 병도 안 나고 몸이 잘 돌아가는 법이지.” 철학자도 울고 갈 할머니의 인생관이 평생 입원 한번 하지 않은 무병장수 비결인 것이다. 할머니는 79세 때 노인학교도 수료했다.

조냥 정신을 발휘하여 할머니가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그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입에 문 밥을 지루한 줄 모르고 소중하게 꼭꼭 씹는 할머니. 여기에 세 번째 장수 비밀이 숨어 있다. 토양이 척박하고 물이 귀하던 제주도에선 주로 밭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주곡이 보리와 조였다. 국이 없으면 목이 멜 정도의 거친 밥이기 때문에 오래, 소중하게 씹어 먹어야 했다. 또 부드럽지 못한 조밥, 보리밥 덕분에 국이 꼭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단이었다. 들과 바다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미역샛국, 보말국, 복쟁잇국, 갈치호박국은 그야말로 장수 밥상의 원조다. 식료품 창고인 바다 옆에 살다 보니 어패류와 해초류는 늘상 먹었고, 밭이나 바다에 나가 일하는 아낙들이 요리에 재주 부릴 시간이 없다 보니 별다른 양념 없이 싱싱한 재료 그대로 먹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건강식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할머니의 다섯 번째 아들 강문택 씨가 들려준 제주 사람들의 ‘조냥 정신’(쌀독에서 쌀을 풀 때 쌀 한 줌을 다른 항아리에 비축해두었다가 춘궁기를 넘기는 풍습. 절약 정신 비슷한 것이다)에도 건강 비결이 숨어 있다. “제주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조냥 정신은 지독할 정도인데, 요즘처럼 생활이 넉넉해도 밥상을 요란하게 차리는 법이 없어요. 손님이 왔을 때도, 생일이나 회갑 같은 날에도 교자상 차림을 하지 않아요. 밥과 먹음직한 국과 나물만 내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접받는 사람들도 만족해해요. 낭비와 허례허식 없는 생활 태도죠. 또 이런 밥상은 영양소도 잘 갖춰져 있고, 양념 맛이 아니라 재료의 참맛을 느낄 수 있어요.” 생일이 아닌 때에도 할머니가 자주 먹는 미역국, 국이면서 된장으로 만든 음료수인 냉국, 화병 치료제인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밋국 등 비결을 전수받고 싶은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도 할머니의 조냥 정신은 빛난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몸도 물건도 아껴 쓰다 보니 이 집에는 우리 연배와 엇비슷한 세간이 많다. “조냥 하멍 살아사 혼다. 오늘보다 내일 생각호록, 내일보다 모레 생각호곡 경 해사 일생을 편안호게 살아진다(아끼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고 내일보다 모레를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일생을 편히 살 수 있다).” 바람벽에서 귀퉁이가 뜯어진 가방이 햇빛에 너덜너덜 환하게 웃고 있다. 할머니가 살아온 단출한 삶의 미덕, 세 번째 장수 비결이다.
장수 비결의 으뜸은 가족 둘째 아들이 73세(큰아들은 몇 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이 66세, 넷째 아들이 63세, 다섯째 아들이 59세…. 아들들 모두 검버섯 핀 노년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자식들이 안기고 부비고 싶은 ‘내 집’이다. “가족이니까 더 궂은 말도 하지 말고 나쁜 말도 담지 말고. 아들 며느리 어쩌고저쩌고 흉보지 말고. 가정이 화목하면 궂은 사람이 들어와도 좋은 사람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사람 들어와도 궂은 사람 된다.” 삶의 옹이가 그대로 들어 있는 할머니의 철학을 자식들은 따르며 산다. 낙천적인 할머니의 얼굴을 보노라면 자식들은 어느새 무릎 펴고 일어날 기운까지 얻는다(다만 할머니는 먼저 간 큰아들 이야기만 하면 눈물을 글썽인다). 돌담이 바람에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현무암 돌담 사이의 구멍을 메우지 않는 제주도 돌담처럼, 가족과 가족 사이에 숨 쉴 틈을 주어 더욱 도탑게 사는 것. 오월계 할머니의 장수 비결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서울에서 내려온 객에게 연신 “내 명 다 가져가. 내 명 다 가져가”를 되뇌며 둥실하게 웃는 할머니. 서귀포의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이 할머니에게 고요히, 천천히 박수쳐드리고 싶다. 오월계 할머니의 100세 장수는 시름 딛고 한세상 잘 견딘 사람,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립문 바깥까지 나와 우릴 배웅하는 할머니 머리 위의 머릿수건이 참 곱다. 멋을 쓰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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