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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사랑의 시련 - 춘향, 레 실피드, 뮤자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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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2,062회 작성일 12-02-2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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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이 미셀 포킨의 ‘사랑의 시련-춘향’과 ‘레 실피드’, 그리고 표현적 발레를 추구하는 보리스 에이프만의 ‘뮤자게트’를 함께 정기공연(10.31~11.3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렸다. 세 작품 모두 쟁쟁한 배경 아래 탄생되었지만 특히 미셀 포킨이라는 대 안무자가 한국의 <춘향전>을 소재로 창작한 작품이 핀란드 국립발레단에 남아 있다는 가슴 떨리는 뉴스 덕에 재현된 ‘춘향’이 대대적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나 기대가 특별했던 만큼 ‘이것이 춘향전?’이라는 의문에 매우 혼란스러웠고, 한국을 알리는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던 홍보문구가 민망하기조차 했다. 이유인즉 ‘춘향’이라는 이름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춘향전>과 크게 달랐다. 월매, 향단, 변사또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모진 시련 끝에 만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미지도 없다. 제목이 지닌 슬픈 이미지가 완전히 희화화 된, 딸을 부자에게 시집보내려다가 결국은 가난한 애인과의 결혼을 승낙한다는 ‘돈키호테’식 사랑이야기에 중국옷을 얹어 시각적 변화를 노린 연출에 불과했다.

‘한국’ 혹은 ‘춘향전’ 보다는 포킨의 말년 작

줄거리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중국 관리를 뜻하는 만다린이다. 춘향의 아버지 만다린이 돈 많은 서양 손님과 춘향을 연결시키려 하지만 춘향의 애인이 손님 일행을 공격하고 재물을 빼앗는다. 만다린의 명령으로 군인들이 춘향의 애인을 잡아오나 손님에게 더 이상의 재물이 없는 것을 알고 만다린은 춘향과 애인의 결혼을 허락한다. 이에 애인이 손님의 물건을 다시 돌려주자 아버지는 다시 손님에게 딸을 주려하나 사태를 파악한 손님이 춘향을 거부함으로써 춘향과 애인이 맺어진다는 해피엔딩이다.

돈키호테식 사랑이야기에 중국 옷을 얹어 시각적 변화를 노린 연출을 보여준‘사랑의 시련 - 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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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에 나오는 무대 배경은 중국이고, 원숭이들이 몸을 긁적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런 대본은 이 작품이 초연된 1936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지나치게 구시대적이고 무책임한 장면이다. 그보다 백여 년 전인 프랑스 낭만발레에서도 발견되는, 동양에 대한 원시적 이미지를 원숭이로 상징했던 유행을 여과 없이 따르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에 발레 개혁자로 유명한 포킨의 명성에 오히려 오점을 남긴 작품으로 보인다.

1880년 생 포킨은 1918년 러시아를 영구히 떠난 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참으로 다양한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1942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사랑의 시련-춘향’을 안무한 1936년은 포킨이 르네 블럼이 이끌던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무자로 들어간 해인데, 이미 개혁적 창조자로서의 열정보다는 대중적 화합에 초점을 두지 않았던가 싶다.

초연 음악이 다르다는 기록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포킨은 모든 움직임은 물론 무대장치와 의상까지도 드라마의 전개와 일치해야한다는 안무론을 피력했는데, 이번 모차르트 음악에 맞춘 작품은 경쾌한 리듬에 눌린 무언극에 그쳤다. 포킨의 ‘사랑의 시련’ 원작이 모차르트의 주제를 차용한 편집 음악에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음악에 대한 설명이 명확해져야 비로소 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 진행이 무언극적 사건 나열로 일관한 때문에 ‘사랑의 시련-춘향’은 이원철의 회전기가 탁월했다는 정도의 평가를 제외하고는 주역들의 기교 혹은 연기력을 논평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국립발레단 공연에서는 서양 손님의 의상이 완전한 중국 복식이라 그나마 원작에서 한발 더 멀어진 풍경이었다. 안타깝지만, 이 단막극은 ‘한국’ 혹은 ‘춘향전’ 보다는 포킨의 말년 작을 복원했다는데 더 큰 의의를 두고 관찰할 대상인 듯싶다.

줄거리가 필요 없는 순수발레의 전형 ‘레 실피드’

미셀 포킨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레 실피드’는 순수발레의 전형이다. 1907년 초연 때는 쇼팽의 음악에 맞춘 발레라는 의미로 ‘쇼피니아나(Chopiniana)’로 불렸으나 1909년 러시아발레단 파리공연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숲의 요정들’이라는 의미인 ‘레 실피드 (Les Sylphides)’로 개칭되었다. 초연 당시 파리 평론가들은 시적 동작, 영적이며 공기 같은 분위기, 포즈의 탁월한 조화를 극찬했다고 하는데, 그 평가방식은 최근에도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포킨 역시 “내 발레에는 줄거리가 필요 없다. 내 발레는 무대에서 펼칠 이야기가 없다”라고 말하며 음악과 춤의 조화를 결합시킨 추상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음악과 춤의 조화를 결합시킨 추상적 아름다움을 강조한‘레 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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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이번 무대는 세계 여러 곳에서 레퍼토리 지도를 해온 러시아 출신 라코우트 요제프가 재연했다. ‘레 실피드’는 정교하고 여유로운 호흡이 매우 중요한 반면 가시적 기교가 약해 한없이 쉽거나 혹은 한없이 어려운 작품인데, 국립발레단의 이번 무대는 장운규의 발레적 라인 확장이 큰 소득이었다.

백색 긴 치마를 입고 떼로 몰려다니는 요정 스타일의 여인들 사이에 홀로 등장하는 ‘레 실피드’ 주역 남자는 남성성을 감춰야 하는 부담을 숨기며 감미로운 느낌을 온 몸으로 뿜어내야 한다. 장운규는 목선과 발끝 선의 편안한 늘어짐, 걸음걸이의 포인트 스텝, 도약 전후의 무릎 굴신을 통해 최선의 라인과 그 활용법을 인지시켰다. 낭만적 춤집을 세세히 살피며 짚어가는 장운규의 모습을 통해 라코우트 요제프의 지도과정을 짐작했다.

여성 군무의 첫 포즈 역시 낭만적이었다. 팔이 완전히 이완된 상태에서 양 날개가 올라가며 팔꿈치와 손끝에 곡선이 만들어지는 넓고도 편안한 여유로운 아름다움, 우아하다는 표현이 가능한 그런 상태를 낭만적 포즈라고 하겠는데, 적어도 첫 포즈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조화로웠다. 그러나 그 섬세한 긴장감은 오래가지 못했고, 특히 너무 어린 솔리스트들의 흥청거림이 안타까울 정도여서 흔들거림과 부드러움의 차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낭만적 품위가 내적인 통제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외양적 꾸밈에만 치중하면 값싼 이미지가 밀고 들어온다.

발란신의 강렬한 삶을 묘사한 뮤자게트

보리스 에이프만의 ‘뮤자게트’는 예상과 달리 이번 공연의 중심이 되었다. 우선 작품의 길이가 한 시간이 넘었고, 작품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수, 그리고 소재의 범위가 단독공연용에 가까웠다. 조지 발란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04년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초연된 작품답게 발란신의 유작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냉전시대의 러시아 예술가, 미국발레를 주도했던 발란신의 삶이 에이프만 고유의 강렬한 극적 표현방식과 곡예스타일의 발레 동작구로 묘사되었다.

세계적인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천재성을 재확인한‘뮤자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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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은 조지 발란신 역을 맡은 김현웅의 회상이 무용연습실로 연결되고, 발레리나들을 꽃처럼 다루며 만들어낸 명장면들이 안무가 발란신의 삶을 부각시킨다.

환영이 도약을 거칠 때마다 새로운 여자 뮤즈들이 등장하는데, 요염한 뮤자게트 김리회는 어린 주역의 겁 없는 유연한 곡예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등에 탄 여자의 발목을 잡고 들어 올리는 일련의 동작이 어찌도 그리 아귀가 맞으면서도 다양한지, 몸을 도구로 쓰는 안무가이자 움직임 발견의 천재 에이프만을 재확인했다. 이 정도 소재면 한국 안무가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곡예적인 공중 포즈와 빼어나게 조화로운 그 연결성으로 인해 능력 밖의 부러움으로 점차 변화되고 만다.

그러나 에이프만에게도 약점이 있다. 여러 차례의 내한공연을 통해 이미 감지되었듯이, 주옥같은 동작구를 조합한 ‘뮤자게트’에서도 간결함의 묘미를 놓쳤다. 역시 작품 후반이 산만했는데, 특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과 클래식 튀튀의 형식적 춤을 연결한 장면이 독립된 작품처럼 보여 흐름의 맥을 놓쳤다. 결국은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와 병동과 발란신, 그를 위한 헌정을 강조했지만 음식을 입에 넣어주듯 끝까지 설명하는 대가의 습관이 안타까웠다.

세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린 국립발레단의 이번 정기공연은 비록 ‘사랑의 시련-춘향’이 예상과 달라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의욕적으로 애쓴 흔적은 역력했다. 김훈태가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도 성심이 녹아있었고, 발레단원들의 훈련도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국제관행에 따라 안무자나 그 대행자를 직접 초빙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작품 감상 기회를 선사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가장 큰 인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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