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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대결”-바그너의 <로엔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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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502회 작성일 11-10-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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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그린은 신성한 성배를 지키는 수호기사 파르지팔의 아들로, 정의와 선함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바그너가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는 나름대로 정치적인 신념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기사로서, 바그너의 꿈과 이상이 투영된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정작 바그너 자신은 이 오페라의 초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1849년 드레스덴에서 전제정치에 대한 일대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도 정치범으로 몰려 몸을 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브라반트국의 영주인 고트프리트 공작은 아직 미성년이어서 텔라문트 백작의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그런데 야심가인 백작부인은 자기 남편으로 하여금 권력을 잡게 하기 위해, 마법을 써서 고트프리트 공작을 백조로 만들고 그의 누이인 엘자에게는 살인범으로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대신 싸워줄 기사를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인 엘자는 꿈을 꾸게 되고, 꿈 속에서 운명의 기사를 만나게 됩니다. 엘자가 그를 선택하자 그는 정말로 모습을 나타내 텔라문트 백작과 결투를 해 이깁니다.
그 기사는 결투 전에 엘자에게 자기를 믿고 아무 것도 물어보지 마라, 그리고 결투가 끝나면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합니다.
드디어 두 사람의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되지만, 그날밤 엘자는 기사의 부탁을 저버리고 물어보아서는 안될 것을 물어보고 맙니다.
백작부인이 엘자를 유혹해 기사에 대한 의혹을 불러 일으킨데다, 엘자 자신도 자기에게 찾아온 꿈 같은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기사는 자신이 성배를 수호하는 파르지팔의 아들 로엔그린이라는 것을 밝히고 엘자의 곁을 떠납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엘자에게 동생인 고트프리트 공작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려주고 공작은 백조에서 왕자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엘자는 자신의 어리석음, 로엔그린과의 이별을 견딜 수 없어 동생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 작품에서 로엔그린이 정의로움과 선함의 상징이라면 텔라문트 백쟉과 그 부인은 악의 상징입니다. 바그너는 그들을 적절히 대비시키면서 선과 악의 미묘한 대립에 대한 자기의 신념을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그가 지니고 잇던 여자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처음으로 깨어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잇습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나 <탄호이저> 가 여성의 순결한 사랑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로엔그린>은 반대로 그러한 신념에 대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사랑을 좀먹는 것이 불신이라는 사실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자는 부모를 여의고 사랑하는 동생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자신은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였을 때, 구원의 기사로 등장한 로엔그린에게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고 상대방에게 의존적일수록, 상대방이 나를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또한 켜져가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엘자 역시 로엔그린이 보여주는 사랑이 클수록 더욱 불안해져서 그만 백작부인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이 불신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의심과 불신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잇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자는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만, 로엔그린은 사랑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믿음을 저버린 그녀와는 함께 할 수 없다며 끝내 떠나버리고 맙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 그 자체도 필요하지만 믿음이 깨어지면 끝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끝으로 사족 한가지, 요즘처럼 참된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정의의 기사 로엔그린은 언제쯤이나 나타날는지, 오늘 밤 꿈에서 그를 만나기를 기대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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