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싸름한 유혹”-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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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221회 작성일 11-10-26 15:55본문
“달콤쌉싸름한 유혹”-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보는 이 사람이 사는 법, 오늘은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8세기 오스트리아 궁정에서는 약혼 피로연 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여자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그 장미를 바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장미의 기사라고 불렀다는군요.
젊은 귀족 옥타비안은 공작부인의 애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스크 남작의 장미의 기사가 되어 부호인 파니날가의 아름다운 딸 소피에게 장미를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만 이 청춘남녀는 각자 애인과 약혼자가 있는 상태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오페라 <장미의 기사>는 나이나 정신적 성숙에 따라 변해가는 사랑의 모습을 재미있게 추적해 가는 희극적 작품입니다.
누구나 대개 첫사랑은 자기보다 연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는 감정,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이 가지고 잇는 권위와 힘을 동경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사랑도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고자 하는 행위이므로,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 많고 힘도 세고 그래서 나의 약한 점을 보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상의 상대방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지나면 보호받고 간섭받는 것이 싫어집니다. 자기도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이것은 특히 여성을 보호해주는 강력한 남성상을 모델로 하는 남자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성향입니다.
옥타비안 역시 처음에는 자신을 어머니처럼 보호해주는 공작부인과 사랑의 유희를 벌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소피를 보는 순간 곧장 그녀에게 마음이 옮겨갑니다.그리고 자시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여자로 변장해 방탕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작을 골려주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남작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반하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입니다. 바람둥이들에게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의 인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필요할 뿐. 여자를 성적 대상이나 자신의 자존심을 보상해줄 상대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점이 그 여자의 파워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파워를 추구하는 면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피도 처음에는 아버지뻘인 남작과 결혼하려고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옥타비안을 보고는 그 젊음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것 역시 파워의 추구입니다.
공작부인은 이 젊고 매혹적인 커플을 보고나서는 자신이 게임에서 졌음을 인정하고 두 사람을 축복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우연인지 시트라우스의 숨은 의도인지 모르지만, 첫 장면, 그러니까 공작부인과 옥타비안이 사랑을 나눈 후에 흑인 하녀가 초콜렛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옥타비안과 소피가 너무 사랑에 겨워 사라지면서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도 역시 흑인 하녀가 나타나 그 손수건을 집어듭니다.
하녀란 주인의 은밀한 비밀을 다 아는 사람들입나다. 그런 의미에서, 하녀가 광란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눈 두 사람에게 달콤쌉사름한 초콜렛을 가져다 주는 것과 마지막에 손수건을 주워드는 것은 꽤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여자에게 손수건이란 순결, 부끄러움의 상징이면서 또 눈물의 상징이기도 하니 소피가 손수건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앞으로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암시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하녀는 소피의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때로는 그녀의 비밀 전령사, 의논대상자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그녀의 인생을 지켜보게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끝장면을 하녀의 등장으로 마무리지었다고 해석한다면 저의 너무 지나친 분석인가요?
아무튼 이 오페라는 모자르트 풍의 아름답고 명랑한 멜로디로 이어지는 한편의 희극이므로,결국 인생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때론 희극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보는 이 사람이 사는 법, 오늘은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8세기 오스트리아 궁정에서는 약혼 피로연 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여자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그 장미를 바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장미의 기사라고 불렀다는군요.
젊은 귀족 옥타비안은 공작부인의 애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스크 남작의 장미의 기사가 되어 부호인 파니날가의 아름다운 딸 소피에게 장미를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만 이 청춘남녀는 각자 애인과 약혼자가 있는 상태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오페라 <장미의 기사>는 나이나 정신적 성숙에 따라 변해가는 사랑의 모습을 재미있게 추적해 가는 희극적 작품입니다.
누구나 대개 첫사랑은 자기보다 연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는 감정,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이 가지고 잇는 권위와 힘을 동경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사랑도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고자 하는 행위이므로,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 많고 힘도 세고 그래서 나의 약한 점을 보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상의 상대방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지나면 보호받고 간섭받는 것이 싫어집니다. 자기도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이것은 특히 여성을 보호해주는 강력한 남성상을 모델로 하는 남자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성향입니다.
옥타비안 역시 처음에는 자신을 어머니처럼 보호해주는 공작부인과 사랑의 유희를 벌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소피를 보는 순간 곧장 그녀에게 마음이 옮겨갑니다.그리고 자시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여자로 변장해 방탕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작을 골려주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남작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반하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입니다. 바람둥이들에게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의 인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필요할 뿐. 여자를 성적 대상이나 자신의 자존심을 보상해줄 상대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점이 그 여자의 파워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파워를 추구하는 면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피도 처음에는 아버지뻘인 남작과 결혼하려고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옥타비안을 보고는 그 젊음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것 역시 파워의 추구입니다.
공작부인은 이 젊고 매혹적인 커플을 보고나서는 자신이 게임에서 졌음을 인정하고 두 사람을 축복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우연인지 시트라우스의 숨은 의도인지 모르지만, 첫 장면, 그러니까 공작부인과 옥타비안이 사랑을 나눈 후에 흑인 하녀가 초콜렛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옥타비안과 소피가 너무 사랑에 겨워 사라지면서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도 역시 흑인 하녀가 나타나 그 손수건을 집어듭니다.
하녀란 주인의 은밀한 비밀을 다 아는 사람들입나다. 그런 의미에서, 하녀가 광란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눈 두 사람에게 달콤쌉사름한 초콜렛을 가져다 주는 것과 마지막에 손수건을 주워드는 것은 꽤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여자에게 손수건이란 순결, 부끄러움의 상징이면서 또 눈물의 상징이기도 하니 소피가 손수건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앞으로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암시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하녀는 소피의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때로는 그녀의 비밀 전령사, 의논대상자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그녀의 인생을 지켜보게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끝장면을 하녀의 등장으로 마무리지었다고 해석한다면 저의 너무 지나친 분석인가요?
아무튼 이 오페라는 모자르트 풍의 아름답고 명랑한 멜로디로 이어지는 한편의 희극이므로,결국 인생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때론 희극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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