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소유물로 여긴 비극, 아모나스로왕”-베르디의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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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356회 작성일 11-10-26 16:01본문
“자식을 소유물로 여긴 비극, 아모나스로왕”-베르디의 <아이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보는 이 사람이 사는 법, 오늘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등장인물들을 바라보겠습니다.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의 운명을 비극으로 이끈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는 흥미롭게도 리골레토가 딸 질다에게 보여준 부정과 완전히 대비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골레토에게는 질다가 자신의 삶 그 자체입니다.그러므로 질다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그런데 아모나스로왕은 딸보다는 자신의 왕국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딸의 사랑을 이용하는 일도 서슴치 않을 만큼.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아이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속이고 정보를 얻어냅니다. 그러기까지 그녀가 갈등하는 모습은 너무나 애처럽습니다.
자신의 욕구, 자신의 감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부모 자식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아이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아버지의 불합리한 요구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라다메스의 무덤으로 들어가 죽음을 자초하고 맙니다.
물론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속인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생을 공주로서 사느니 차라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으로써 그에게 자기 사랑을 보여주고 또 속죄도 하고 싶었을 테지요.
그러나 한편 그녀의 죽음의 언저리에는 딸의 사랑을 이용해 적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깔려 있습니다.
그가 만일 조금만 사려깊은 아버지였다면 정보만 얻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더 욕심을 부려 정보뿐만 아리나 라다메스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 와중에서 라다메스의 심정이 어떨지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채로.
라다메스를 자기 편으로 데리고 가면 그에게 그보다 더 큰 승리는 없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라다메스가 그를 따라가리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 딸의 사랑을 희생시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찌되었든 오로지 자기 목표만 이루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거죠.
아이다는 죽음으로써 그런 아버지에게 복수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대신에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아이다의 비극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이 세상에 있게 했으니 너는 나의 것’이라며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이 있는 한 아마도 그런 비극은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
아모나스로왕이 그런 현명함을 갖추었더라면 아이다의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보는 이 사람이 사는 법, 오늘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등장인물들을 바라보겠습니다.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의 운명을 비극으로 이끈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는 흥미롭게도 리골레토가 딸 질다에게 보여준 부정과 완전히 대비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골레토에게는 질다가 자신의 삶 그 자체입니다.그러므로 질다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그런데 아모나스로왕은 딸보다는 자신의 왕국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딸의 사랑을 이용하는 일도 서슴치 않을 만큼.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아이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속이고 정보를 얻어냅니다. 그러기까지 그녀가 갈등하는 모습은 너무나 애처럽습니다.
자신의 욕구, 자신의 감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부모 자식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아이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아버지의 불합리한 요구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라다메스의 무덤으로 들어가 죽음을 자초하고 맙니다.
물론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속인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생을 공주로서 사느니 차라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으로써 그에게 자기 사랑을 보여주고 또 속죄도 하고 싶었을 테지요.
그러나 한편 그녀의 죽음의 언저리에는 딸의 사랑을 이용해 적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깔려 있습니다.
그가 만일 조금만 사려깊은 아버지였다면 정보만 얻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더 욕심을 부려 정보뿐만 아리나 라다메스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 와중에서 라다메스의 심정이 어떨지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채로.
라다메스를 자기 편으로 데리고 가면 그에게 그보다 더 큰 승리는 없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라다메스가 그를 따라가리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 딸의 사랑을 희생시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찌되었든 오로지 자기 목표만 이루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거죠.
아이다는 죽음으로써 그런 아버지에게 복수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대신에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아이다의 비극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이 세상에 있게 했으니 너는 나의 것’이라며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이 있는 한 아마도 그런 비극은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
아모나스로왕이 그런 현명함을 갖추었더라면 아이다의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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