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토마의 미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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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343회 작성일 11-10-26 15:42본문
토마의 오페라<미뇽>은 <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폴로네이즈> 등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바탕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주인공 미뇽은 원래 귀족의 딸이엇으나 어릴 때 유괴되어 집시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방랑하며 살아갑니다. 독일의 어느 시골 여관에서 미뇽은 집시두목에게 채찍으로 맞아가며 춤출 것을 강요당합니다.마침 빌헬름이라는 귀족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몸값을 주고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그 자리에는 미뇽의 아버지 로타리오와, 여배우 필리느 가 잇엇습니다.
로타리오는 딸을 잃어버린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 채 유랑음악가로 떠돌아다니고 있엇던 것입니다.
미뇽은 자기를 구해준 빌헬름을 사랑하지만, 빌헬름은 필리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필리느 곁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 프레데릭이 잇습니다.그는 로젠베르크 남작의 조카로서 남작은 자신의 성에서 열리는 연회에 집시 악단을 초대합니다. 이 집시악단의 공연에서 필리느는 <한 여름밤의 꿈 중에서>,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로 등장합니다.
그런 필리느에게 질투의 감정을 품는 미뇽, 그리고 그녀를 불쌍히 여겨 성에 불을 지르는 로타리오, 불길 속에서 정신을 잃은 미뇽을 구해내는 빌헬름--그러나 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나 로타리오는 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성의 주인이자 미뇽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미뇽은 빌헬름과 결혼해서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창작의 세계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감정의 정화,즉, 카타르시스와 꿈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현실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진행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의 고통이 해결돼 꿈 같은 집에서 우아하게 살 가능성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잇는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그것을 통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슬픔을 눈물로 씻어내릴 수 잇는 작품을 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잇는 것이 바로 이 작품 토마의 <미뇽>입니다.
귀족의 딸로 태어났으나, 유괴되어 집시와 함께 떠돌며 세상의 모든 거친 경험을 하는 그녀,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빌헬름이라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잇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면에는 그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해결하려는 욕구가 숨어 잇습니다. 그런 뜻에서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버려지고 연약한 미뇽으로서는 힘있고 강력한 빌헬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빌헬름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니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필리느의 부탁으로 꽃을 가지러 갑니다. 질투하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랄까, 빌헬름이 필리느에게 준 꽃다발을 그렇게라도 가져보고 싶엇던 것입니다. 빌헬름 또한 자기가 준 꽃다발을 소중히 안고 잇는 그녀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결국 사람의 사랑은 그 깊이가 얕아, 내게 뭔가 줄 수 잇는 사람,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쏠리게 되어 잇다고나 할까요. 미뇽과 빌헬름의 사랑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는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바탕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주인공 미뇽은 원래 귀족의 딸이엇으나 어릴 때 유괴되어 집시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방랑하며 살아갑니다. 독일의 어느 시골 여관에서 미뇽은 집시두목에게 채찍으로 맞아가며 춤출 것을 강요당합니다.마침 빌헬름이라는 귀족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몸값을 주고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그 자리에는 미뇽의 아버지 로타리오와, 여배우 필리느 가 잇엇습니다.
로타리오는 딸을 잃어버린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 채 유랑음악가로 떠돌아다니고 있엇던 것입니다.
미뇽은 자기를 구해준 빌헬름을 사랑하지만, 빌헬름은 필리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필리느 곁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 프레데릭이 잇습니다.그는 로젠베르크 남작의 조카로서 남작은 자신의 성에서 열리는 연회에 집시 악단을 초대합니다. 이 집시악단의 공연에서 필리느는 <한 여름밤의 꿈 중에서>,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로 등장합니다.
그런 필리느에게 질투의 감정을 품는 미뇽, 그리고 그녀를 불쌍히 여겨 성에 불을 지르는 로타리오, 불길 속에서 정신을 잃은 미뇽을 구해내는 빌헬름--그러나 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나 로타리오는 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성의 주인이자 미뇽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미뇽은 빌헬름과 결혼해서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창작의 세계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감정의 정화,즉, 카타르시스와 꿈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현실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진행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의 고통이 해결돼 꿈 같은 집에서 우아하게 살 가능성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잇는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그것을 통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슬픔을 눈물로 씻어내릴 수 잇는 작품을 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잇는 것이 바로 이 작품 토마의 <미뇽>입니다.
귀족의 딸로 태어났으나, 유괴되어 집시와 함께 떠돌며 세상의 모든 거친 경험을 하는 그녀,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빌헬름이라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잇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면에는 그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해결하려는 욕구가 숨어 잇습니다. 그런 뜻에서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버려지고 연약한 미뇽으로서는 힘있고 강력한 빌헬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빌헬름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니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필리느의 부탁으로 꽃을 가지러 갑니다. 질투하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랄까, 빌헬름이 필리느에게 준 꽃다발을 그렇게라도 가져보고 싶엇던 것입니다. 빌헬름 또한 자기가 준 꽃다발을 소중히 안고 잇는 그녀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결국 사람의 사랑은 그 깊이가 얕아, 내게 뭔가 줄 수 잇는 사람,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쏠리게 되어 잇다고나 할까요. 미뇽과 빌헬름의 사랑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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