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의 진실-들리브의 <라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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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216회 작성일 11-10-26 15:33본문
라크메는 <코펠리아>와 <실비아>의 발레곡으로 이름을 떨친 작곡가 들리브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또한 그의 오페라 중에서 오늘날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군인이 다른 나라의 주둔지에서, 그 나라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점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 마이어베어의 <아프리카의 여인> 등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몬 교의 노승 닐라칸타는 자신들의 종교를 금한 영국인을 증오합니다.따라서 신자들에게 영국인들을 인도에서 내쫓을 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신앙을 지킬 것을 역설합니다.
그에게는 라크메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 라크메가 어느날 정원의 시냇가로 내려가 목욕을 합니다.그때 마침, 바라몬교 사원에 호기심을 느낀 영국 군인 제랄드가 사원으로 들어오고 라크메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보자마자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한편 사원 안에 외부인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닐라칸타는 라크메를 이용해 그를 잡을 계락을 꾸밉니다. 결국 그에게 발각된 제랄드는 칼에 찔리는 부상을 당하고,닐라칸타는 재빨리 사라져 버립니다. 라크메는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제랄드를 치료합니다. 그러나 군대의 행진곡이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제랄드는 라크메를 떨쳐버리고 군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혼자 남겨진 라크메는 자신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독초를 먹고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고 걱정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제랄드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설득하며 숨을 거둡니다.
나비부인이나 아프리카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라크메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뒤로 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 과연 사랑의 비중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흔히 여자는 일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남자는 사랑보다 일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일률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여자들 중에도 일을 위해 사랑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 남자들 중에도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제랄드는 사랑을 위해 아무 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크메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를 잡아끈 것은 라크메가 가지고 있는 이국적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호기심이 그를 라크메한테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미련없이 라크메를 버리고 맙니다.그에게 있어 라크메는 단지 호기심의 대상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대신 그는 자기에게 익숙한 것, 친숙한 것을 찾아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어느새 제랄드가 인생의 전부로 자리잡은 라크메로서는 그에게서 버림받는 다는 것은 곧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자살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소중했던 라크메의 사랑, 그러나 그녀의 사랑이 엄격하면서도 자기 목적을 위해서는 딸도 이용할 정도로 냉정한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분노와 반항의 결과는 아니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부드럽고 자상한 제랄드에게 빠지게 된 것도 아버지에게 없는 면을 찾고자 하는 시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을 돌아보면서 결국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은 동시에 수많은 무의식의 변주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는군요.
유럽의 군인이 다른 나라의 주둔지에서, 그 나라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점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 마이어베어의 <아프리카의 여인> 등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몬 교의 노승 닐라칸타는 자신들의 종교를 금한 영국인을 증오합니다.따라서 신자들에게 영국인들을 인도에서 내쫓을 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신앙을 지킬 것을 역설합니다.
그에게는 라크메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 라크메가 어느날 정원의 시냇가로 내려가 목욕을 합니다.그때 마침, 바라몬교 사원에 호기심을 느낀 영국 군인 제랄드가 사원으로 들어오고 라크메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보자마자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한편 사원 안에 외부인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닐라칸타는 라크메를 이용해 그를 잡을 계락을 꾸밉니다. 결국 그에게 발각된 제랄드는 칼에 찔리는 부상을 당하고,닐라칸타는 재빨리 사라져 버립니다. 라크메는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제랄드를 치료합니다. 그러나 군대의 행진곡이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제랄드는 라크메를 떨쳐버리고 군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혼자 남겨진 라크메는 자신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독초를 먹고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고 걱정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제랄드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설득하며 숨을 거둡니다.
나비부인이나 아프리카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라크메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뒤로 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 과연 사랑의 비중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흔히 여자는 일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남자는 사랑보다 일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일률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여자들 중에도 일을 위해 사랑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 남자들 중에도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제랄드는 사랑을 위해 아무 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크메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를 잡아끈 것은 라크메가 가지고 있는 이국적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호기심이 그를 라크메한테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미련없이 라크메를 버리고 맙니다.그에게 있어 라크메는 단지 호기심의 대상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대신 그는 자기에게 익숙한 것, 친숙한 것을 찾아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어느새 제랄드가 인생의 전부로 자리잡은 라크메로서는 그에게서 버림받는 다는 것은 곧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자살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소중했던 라크메의 사랑, 그러나 그녀의 사랑이 엄격하면서도 자기 목적을 위해서는 딸도 이용할 정도로 냉정한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분노와 반항의 결과는 아니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부드럽고 자상한 제랄드에게 빠지게 된 것도 아버지에게 없는 면을 찾고자 하는 시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을 돌아보면서 결국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은 동시에 수많은 무의식의 변주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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