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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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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2,035회 작성일 10-04-2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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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린 기인
새 연주 기법 발명·걸작들 작곡
초인적 기교·특이한 외모
사람들 "악마와 거래" 소문 퍼져
주검 반세기 유랑 끝 안식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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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로 파가니니
'비르투오소'란 뛰어난 기교로 악기를 다루는 연주가를 뜻한다. 19세기는 평범한 사람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기교를 가진 비르투오소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많은 비르투오소 중에서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꼽히는 이는 '작은 이교도'란 뜻의 이름을 가진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이다. 범상치 않은 이름에 특이한 외모, 현란한 연주로 그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았다. 또 여성편력과 베일에 싸인 사생활 그리고 기이한 성격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기인이기도 했다.

그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초인적이고 새로운 연주 테크닉 때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막힌 기교와 처음 접하는 음색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갈채를 보냈다. 대부분 자작곡 또는 즉흥곡으로 무대를 꾸몄으며 어떤 곡이든 암보로 연주해 청중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마치 미쳐서 날뛰는 듯 한 그의 손놀림은 사람들을 언제나 황홀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두려운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가 악마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결국 "파가니니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천재성을 얻었다" 란 소문까지 퍼졌고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에 성호를 긋는 사람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독특한 외모도 그런 소문을 더욱 부추겼다. 깡마르고 큰 키에 손발은 길고 특이하게 구부러진 매부리코와 날카로운 눈매까지. 그의 외모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악마의 이미지에 무척 잘 들어맞았다. 이런 소문에 호응하듯 그는 어깨를 뒤덮는 길고 검은 곱슬머리를 흩날리며 검정색 정장을 즐겨 입고 네 마리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를 타고 다녔다.

파가니니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데는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 연습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호되고 엄한 교육을 받았다. 악기를 연습할 때는 반드시 아버지가 곁에서 막대기를 들고 지켜 서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강훈련을 시켰고 약간의 실수에도 매질을 가했다. 그는 혹독한 훈련을 통한 탁월한 연주로 10대에 이미 출생지인 이탈리아 음악계의 스타가 됐다. 그리고는 연주를 통해 벌어들인 부를 여자와 도박에 탕진한다. 연주해야 할 바이올린까지 저당 잡히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그의 연주에 매료된 사람에게서 명품 악기를 선물 받아 다시 연주하게 된다.

파가니니는 마른 체격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넓은 어깨와 유난히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신체적 특징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연주 기법을 발명해 낸다. 기이하고 괴팍한 성격이었던 그는 자신의 연주 기법을 남에겐 비밀로 하는 바람에 다른 이들에겐 마치 마술이나 비법을 써서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존의 바이올린 곡으로는 기교의 맛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연주 기법은 뛰어났다. 그래서 파가니니는 자신의 기교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곡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고 이로 인해 작곡을 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파가니니가 작곡한 곡은 모두 파가니니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이렇게 갖은 기행과 소문에 휩싸였던 파가니니의 기구한 운명은 죽은 후에도 계속된다. 그가 프랑스에서 사망하자 생전의 명예롭지 못한 행실과 악마와 관련된 소문 때문에 가톨릭교회에서 매장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추기경과 로마 교황에게 탄원서까지 내는 등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겨우 5년 후에야 고향인 이탈리아에 일시적으로 매장허가를 얻는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조차 쫓겨나 여러 차례 묘자리를 옮겨 다닌 끝에 1896년이 되어서야 겨우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그가 사망한지 무려 56년 만의 일이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던 파가니니의 영혼은 죽은 후에도 반세기를 넘는 시간 동안 묻힐 곳 없이 떠돌아다니며 이름값을 한 셈이다.

부산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이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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