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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카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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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향의 '웰빙 클래식'을 진행하는 음악칼럼니스트 김문경 씨는 약학과 출신이다. 특허청 사무관이지만 '구스타브 말러'를 비롯해 모두 다섯 권의 책을 쓴 음악전문가이다. 클래식음반 전문점 '풍월당'의 사장이자 오페라전문가인 박종호 씨는 정신과 의사이고, 베스트셀러 '이 한 장의 명반'의 저자인 안동림 씨는 영문과 교수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프로를 훨씬 능가하는 아마추어들이다.
길버트 카플란(1941~). 그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만 지휘하는 괴짜지휘자이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지휘를 공부한 음악가도 아닌 아마추어 지휘자이다. 그의 원래 직업은 금융관련 잡지사의 CEO이었다.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경영학을 공부하던 스물네 살 우연히 본 음악회는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카플란은 모두가 비웃을 무모한 꿈을 키워갔다. 그 꿈은 바로 자신이 '직접' 부활교향곡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카플란은 학업을 마치고 금융전문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를 창간해 대성공을 거둔다. 이 잡지는 금융계에선 누구나 봐야 하는 필독서로 여겨질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잡지로 급부상한다. 잡지가 성공을 거둘수록 그도 더욱더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꿈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서른아홉 살에 카플란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비로소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바쁜 일정에다가 악기 한번 제대로 만져본 경험도 없는 초보자였지만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바쁜 중에도 매일 개인교사를 불러 최소한 다섯 시간 이상을 공부에 투자했다. 기초부터 시작하여 무려 3년 동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음악공부에 매달렸다.
드디어 마흔두 살에 그는 그토록 바라던 꿈을 실현한다. 장소는 카네기 홀, 오케스트라는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18년 전 그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그 장소에서 그 악단을 데리고 그가 꿈꾸던 '부활'을 지휘한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단지 돈 많은 괴짜기업가의 별난 취미정도로 여겼다. 카플란 또한 자신의 꿈을 이룬 것으로 만족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우연히 공연을 본 한 평론가의 호평으로 카플란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그에게 지휘를 부탁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곡목은 그가 지휘할 줄 아는 유일한 곡인 말러의 교향곡 2번이었다.
점차 많은 의뢰가 들어오고 자주 지휘를 하게 되면서 카플란은 세계에서 이 곡을 가장 많이 경험한 인물이 된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도 '부활'에 대한 그의 지휘능력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흔여섯 살에 런던 심포니와 첫 '부활'음반을 녹음한다.
그는 틈틈이 '부활'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재단을 설립해 유명한 음악학자들과 함께 말러 연구에 매달렸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두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첫 번째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개막연주 지휘자로 카플란을 초청, 2번의 지휘를 맡긴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오래 전 말러 자신이 상임지휘자였던 '말러의 오케스트라'이자 최고의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니.
두 번째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부활'음반을 빈 필의 연주와 카플란의 지휘로 출반한 것이다. 드디어 카플란은 마니아를 넘어 진정한 말러 스페셜리스트의 반열에 오른다.
"제 꿈을 앞에 놓고 저는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남들 앞에서 지휘를 했을 때 당할 부끄러움이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휘를 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제 자신이 후회하게 될 거란 부끄러움이었죠. 저는 전자를 택했을 뿐입니다." 카플란, 그는 아름다운 열정으로 위대한 꿈을 이룬 위대한 인물이다.
부산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