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섬’ 산악 국가 레소토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77회 작성일 11-01-13 11:08
본문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아프리카 하면 동물의 왕국만 떠올린다. 세렝게티 평원의 사자나 코끼리가 아프리카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는 평탄한 초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도 산악 국가가 있다. 한국의 강원도 심심산골처럼 오지에 박혀 있는 산나라도 있다. 레소토 왕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도 레소토라는 이름조차 생소할 것이다. 남아공 동남쪽 산악 지대에 섬처럼 고립된 산악 국가다. 국경이 모두 남아공에 둘러싸여 있다. 레소토공화국은 어떻게 남아공 안에 섬처럼 갇히게 됐을까?
18세기, 전쟁의 대륙 아프리카
아프리카 역사가 재밌다. 시계를 18~19세기로 되돌려보자. 당시 아프리카는 전쟁터였다. 백인과 백인, 백인과 흑인, 흑인과 흑인이 싸움을 벌였다.
1820년 영국은 남아공 케이프 식민지에 5천여 명의 자국민을 이주시켰다. 영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먹고살게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주민들을 보냈다. 하지만 영국인이 오기 전 남아공에는 이미 네덜란드인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보어인으로 트랜스발공화국, 오렌지공화국 같은 나라를 세우고 남아공에서 아프리카의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갔다.
영국과 보어인이 갈등을 빚게 된 것은 노예제 폐지 때문이었다. 영국은 상업을 했고, 보어인은 농업을 했다. 보어인이란 말 자체가 농부라는 뜻이다. 영국은 노예제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보어인은 노예는 신이 주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 와중에 남아공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황금을 놓고 영국인과 보어인은 치열하게 싸웠다. 결과는 물론 세계 최강 영국군의 승리였다. 결국 쫓기다시피 케이프콜로니를 떠난 보어인들은 새로운 정착촌을 찾아야 했다. 이들을 미국의 개척자에 비유해 ‘보어트레커’라고 하는데 이 중 일부는 드라켄스버그 산맥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흑인들도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당시 남아공 일대에서 가장 용맹했던 부족은 줄루족. 줄루족의 추장 샤카줄루는 흑인들을 상대로 정복 전쟁을 벌였다. 줄루족의 전쟁 방법은 지금 보면 별거 아니다. 당시 원주민들은 창을 들고 전쟁을 했는데 창을 모두 던지고 나면 도망갔다고 한다. 하지만 샤카줄루는 유럽식으로 군대를 재편했다. 줄루족이 다른 부족을 무찌를 수 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샤카줄루는 잔인했다. 인심을 얻지 못했다. 전쟁에 진 부하조차 죽였다. ‘검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얻은 그 역시 동생에게 암살됐다고 한다.
산꼭대기, 섬 같은 나라 레소토
그나저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사람은 바소토족이다. 영국군에게 패전한 보어인이 갑자기 밀려들어와 바소토족의 땅을 차지했다. 샤카줄루도 바소토족을 위협했다. 바소토의 추장 모쉐쉐는 궁지에 빠졌다. 나라를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었다. 산꼭대기에 섬 같은 고립된 나라를 세웠다. 이 나라가 바로 레소토다. 그나마 바소토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쉐쉐 국왕의 외교술 때문이었다. 모쉐쉐의 외교 고문은 외국인 선교사였다. 영국과 보어인의 전쟁 때 영국까지 건너가 자신은 영국 편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땅을 침범한 보어인이 미웠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처음에는 바소토랜드란 이름으로 영국보호령이 됐고, 이후 자치령을 거쳐 1966년에는 레소토란 나라로 독립했다. ‘비굴 모드’로 실속을 챙긴 것이다.
레소토라는 나라는 지금도 혼란스럽다. 위험하다. 하지만 레소토로 올라가는 길은 유명한 관광 코스다. 험하지만 아름답다. 우리말로 하면 구절양장이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이 길의 이름이 바로 사니패스(Sani Pass)다. 이 길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악 도로다. 정상은 2,873m. 2,750m인 백두산보다 높다.
사니패스란 원래 산족이 다녔던 길이란 뜻이다. 산(San)족은 영화 ‘부시맨’에 나오는 바로 그 종족이다.
원래 이 일대는 부시맨의 땅이었다. 이 일대 동굴 곳곳에는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새겨진 부시맨의 벽화가 있다. 동굴벽화의 성지다. 부시맨들은 보어인들의 농장에 들어와 화살로 사냥을 했다. 평생 목축업을 해본 적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부시맨에겐 울타리에 가둬놓은 목장의 가축은 좋은 사냥감이었다. 부시맨들의 땅을 뺏은 백인들은 화가 났다. 결국 부시맨은 백인들에게 쫓겨 칼라하리 사막으로까지 쫓겨 갔다. 현재 부시맨은 칼라하리 사막과 보츠와나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험하지만 아름다운 길, 사니패스를 따라
사니패스는 남아공의 운더버그란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현지 여행사의 사륜구동 지프 투어를 신청한다. 레소토 왕국까지 거리는 45㎞. 길이 험해서 지프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
국경으로 이르는 길은 모두 13개. 사니패스가 가장 높다. 운더버그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는 길을 30분쯤 달리니 ‘굿 호프’란 가게 터가 나왔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레소토공화국의 바소토 부족들이 내려와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다. 정부가 지붕을 뜯어버렸다. 노숙자들이나 부랑자들이 모여들어 치안을 혼란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문화재로 만들 만한 집이 지금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해발 1,968m 남아공 국경검문소를 지나면 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울퉁불퉁하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가이드는 이를 ‘아프리칸 마사지’라고 했다. 차가 처음 오른 것이 1948년이니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바소토족은 나귀에 양모와 면화를 싣고 이 길을 오간다. 차량들이 잘 보이게 나뭇가지에 붉은 깃발을 들고 산을 오르는 바소토족의 모습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귀퉁이에 앉아 나무를 팔고 있는 바소토족을 보면 사진을 찍지 말 것. 돈을 요구한다. 장작 팔러 나온 게 아니라 사진 찍히고 돈 받으러 나온 모델이다.
요즘은 바소토족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다. 지프는 물론 모터사이클과 사륜 오토바이까지 다양한 레저용 차를 볼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친 독일인 여성 시몬(34)과 캐나다인 조나단(24) 커플은 “1백만원에 오토바이를 사서 사니패스에 도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보츠와나를 거쳐 카이로까지 오토바이로 횡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어색함이 슬프게 공존하는 곳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길에는 자살 언덕, 헤어핀, 아이스 코너, 그레이 코너, 큰바람 코너 등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다.
길은 험하다. 배배 꼬였다. 그래도 장관이다. 산들은 겹겹이고, 계곡은 가팔랐다. 오른쪽으로는 12사도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웅크린 사자처럼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정상 사니 탑(2873m)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 국경엔 철조망도 없었다. 돌멩이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게 전부. 사진은 찍지 못한다. 검문소에서 보면 카메라를 뺏길 수도 있다. 여권 검사도 없다. 가이드가 검문소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 온다. 마을엔 바소토 원주민 82명이 살고 있다. 이를테면 민속촌이나 관광특구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민들은 하나 같이 거적때기 같은 담요 하나를 둘러메고 있다. 가이드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아이들은 태어나면 담요 한 장을 받고 평생 이 담요를 둘러메고 생활한다고 한다.
차림새는 남루했다. 난민 수준이다. 아이들은 외국인을 볼 때마다 검고 때 묻은 손을 내밀었고, 관광객들에게 받은 사탕을 들고 달려가 어머니의 젖가슴 속에 파묻혔다. 원주민들의 집은 원뿔 모양. 문은 모두 북향이었다. 남반구라 북향이 햇살이 잘 든다. 온돌처럼 불을 피우면 온기가 돌게 바닥에 구들을 깔았다. 여기서 원주민이 내놓은 빵 한 조각 먹고 돈 얼마 건네주는 식이다. 빵엔 누룩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술 냄새는 더 지독했다. 그래도 웃고 먹어야 한다. 그래야 원주민이 좋아하니까. 마을에 젊은 남자는 거의 없다. 남자들은 대부분 남아공 광산에서 일한다. 하지만 광산 경기가 안 좋아 금광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실업률이 40~50%가 넘는다. 레소토 왕국의 주 수입원은 댐에서 물을 남아공에 방류해주는 대가로 매달 2,200만 란드(약 300억원)를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바소토족은 양을 치며 살았다. 목동은 자신만의 장식을 새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데 사고가 나면 막대기만 보고 누구인지를 안다고 한다. 사자에게 잡아먹히면 막대기 보고 아는 식이다. 내정은 아직도 불안하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여기서 다시 발길을 돌린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남아공령의 사니 탑 산장은 외국인들로 가득하다. 산장 실내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펍’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외국인들이 맥주와 차를 마시며 산 아래 거대한 협곡에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벽에는 세계 각국의 화폐가 붙어 있다. 기자도 천원짜리 한 장을 붙이고 사인을 했다.
당나귀와 랜드로버, 원주민과 관광객…. 사니패스에는 아직도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서로 공존한다. 아름답지만 왠지 무겁고 슬프고 애잔하다.
|
아프리카 역사가 재밌다. 시계를 18~19세기로 되돌려보자. 당시 아프리카는 전쟁터였다. 백인과 백인, 백인과 흑인, 흑인과 흑인이 싸움을 벌였다.
1820년 영국은 남아공 케이프 식민지에 5천여 명의 자국민을 이주시켰다. 영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먹고살게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주민들을 보냈다. 하지만 영국인이 오기 전 남아공에는 이미 네덜란드인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보어인으로 트랜스발공화국, 오렌지공화국 같은 나라를 세우고 남아공에서 아프리카의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갔다.
영국과 보어인이 갈등을 빚게 된 것은 노예제 폐지 때문이었다. 영국은 상업을 했고, 보어인은 농업을 했다. 보어인이란 말 자체가 농부라는 뜻이다. 영국은 노예제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보어인은 노예는 신이 주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 와중에 남아공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황금을 놓고 영국인과 보어인은 치열하게 싸웠다. 결과는 물론 세계 최강 영국군의 승리였다. 결국 쫓기다시피 케이프콜로니를 떠난 보어인들은 새로운 정착촌을 찾아야 했다. 이들을 미국의 개척자에 비유해 ‘보어트레커’라고 하는데 이 중 일부는 드라켄스버그 산맥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
산꼭대기, 섬 같은 나라 레소토
그나저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사람은 바소토족이다. 영국군에게 패전한 보어인이 갑자기 밀려들어와 바소토족의 땅을 차지했다. 샤카줄루도 바소토족을 위협했다. 바소토의 추장 모쉐쉐는 궁지에 빠졌다. 나라를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었다. 산꼭대기에 섬 같은 고립된 나라를 세웠다. 이 나라가 바로 레소토다. 그나마 바소토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쉐쉐 국왕의 외교술 때문이었다. 모쉐쉐의 외교 고문은 외국인 선교사였다. 영국과 보어인의 전쟁 때 영국까지 건너가 자신은 영국 편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땅을 침범한 보어인이 미웠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처음에는 바소토랜드란 이름으로 영국보호령이 됐고, 이후 자치령을 거쳐 1966년에는 레소토란 나라로 독립했다. ‘비굴 모드’로 실속을 챙긴 것이다.
|
사니패스란 원래 산족이 다녔던 길이란 뜻이다. 산(San)족은 영화 ‘부시맨’에 나오는 바로 그 종족이다.
원래 이 일대는 부시맨의 땅이었다. 이 일대 동굴 곳곳에는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새겨진 부시맨의 벽화가 있다. 동굴벽화의 성지다. 부시맨들은 보어인들의 농장에 들어와 화살로 사냥을 했다. 평생 목축업을 해본 적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부시맨에겐 울타리에 가둬놓은 목장의 가축은 좋은 사냥감이었다. 부시맨들의 땅을 뺏은 백인들은 화가 났다. 결국 부시맨은 백인들에게 쫓겨 칼라하리 사막으로까지 쫓겨 갔다. 현재 부시맨은 칼라하리 사막과 보츠와나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험하지만 아름다운 길, 사니패스를 따라
사니패스는 남아공의 운더버그란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현지 여행사의 사륜구동 지프 투어를 신청한다. 레소토 왕국까지 거리는 45㎞. 길이 험해서 지프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
|
해발 1,968m 남아공 국경검문소를 지나면 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울퉁불퉁하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가이드는 이를 ‘아프리칸 마사지’라고 했다. 차가 처음 오른 것이 1948년이니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바소토족은 나귀에 양모와 면화를 싣고 이 길을 오간다. 차량들이 잘 보이게 나뭇가지에 붉은 깃발을 들고 산을 오르는 바소토족의 모습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귀퉁이에 앉아 나무를 팔고 있는 바소토족을 보면 사진을 찍지 말 것. 돈을 요구한다. 장작 팔러 나온 게 아니라 사진 찍히고 돈 받으러 나온 모델이다.
요즘은 바소토족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다. 지프는 물론 모터사이클과 사륜 오토바이까지 다양한 레저용 차를 볼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친 독일인 여성 시몬(34)과 캐나다인 조나단(24) 커플은 “1백만원에 오토바이를 사서 사니패스에 도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보츠와나를 거쳐 카이로까지 오토바이로 횡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어색함이 슬프게 공존하는 곳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길에는 자살 언덕, 헤어핀, 아이스 코너, 그레이 코너, 큰바람 코너 등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다.
길은 험하다. 배배 꼬였다. 그래도 장관이다. 산들은 겹겹이고, 계곡은 가팔랐다. 오른쪽으로는 12사도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웅크린 사자처럼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정상 사니 탑(2873m)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 국경엔 철조망도 없었다. 돌멩이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게 전부. 사진은 찍지 못한다. 검문소에서 보면 카메라를 뺏길 수도 있다. 여권 검사도 없다. 가이드가 검문소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 온다. 마을엔 바소토 원주민 82명이 살고 있다. 이를테면 민속촌이나 관광특구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민들은 하나 같이 거적때기 같은 담요 하나를 둘러메고 있다. 가이드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아이들은 태어나면 담요 한 장을 받고 평생 이 담요를 둘러메고 생활한다고 한다.
차림새는 남루했다. 난민 수준이다. 아이들은 외국인을 볼 때마다 검고 때 묻은 손을 내밀었고, 관광객들에게 받은 사탕을 들고 달려가 어머니의 젖가슴 속에 파묻혔다. 원주민들의 집은 원뿔 모양. 문은 모두 북향이었다. 남반구라 북향이 햇살이 잘 든다. 온돌처럼 불을 피우면 온기가 돌게 바닥에 구들을 깔았다. 여기서 원주민이 내놓은 빵 한 조각 먹고 돈 얼마 건네주는 식이다. 빵엔 누룩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술 냄새는 더 지독했다. 그래도 웃고 먹어야 한다. 그래야 원주민이 좋아하니까. 마을에 젊은 남자는 거의 없다. 남자들은 대부분 남아공 광산에서 일한다. 하지만 광산 경기가 안 좋아 금광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실업률이 40~50%가 넘는다. 레소토 왕국의 주 수입원은 댐에서 물을 남아공에 방류해주는 대가로 매달 2,200만 란드(약 300억원)를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남아공령의 사니 탑 산장은 외국인들로 가득하다. 산장 실내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펍’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외국인들이 맥주와 차를 마시며 산 아래 거대한 협곡에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벽에는 세계 각국의 화폐가 붙어 있다. 기자도 천원짜리 한 장을 붙이고 사인을 했다.
당나귀와 랜드로버, 원주민과 관광객…. 사니패스에는 아직도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서로 공존한다. 아름답지만 왠지 무겁고 슬프고 애잔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