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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속의 스위스 루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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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70회 작성일 11-01-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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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위스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갖고 있다. 대자연, 하이디의 순수한 눈동자, 만년설, 중세 시대 성, 신선한 치즈 퐁뒤…. 그림 같은 스위스는 내 안의 역마살을 흔들어 깨운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스위스 루체른의 홍보 책자에는 ‘루체른이 스위스다’라는 문구가 있다. 루체른이 스위스의 모든 장점을 아우르고 있다는 뜻이다. 루체른에는 호수도 있고, 산도 있으며, 역사적인 유적지도 있다. 게다가 1938년 시작된 루체른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음악축제다. 스위스 현지에서 만난 관광청 직원 미첼은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생 갈렌에서 태어났지만 개인적으로 루체른이다”라고 얘기했다. 루체른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여행지임에는 틀림없다. 루체른 지도를 보면 스위스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교통편도 그만큼 편하다는 뜻이다.

자, 그럼 루체른 시내부터 둘러보자. 루체른은 호수의 도시다. 거대한 호수가 둘러싸고 있고 주변엔 아름다운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 만약 여행사를 따라 가이드 투어를 한다면 가장 먼저 안내되는 곳이 바로 카펠 브리지일 것이다.


중세 시대의 아름다운 다리
사실 루체른은 중세부터 다리의 도시였다. 1400년대에 이미 4개의 아름다운 나무다리로 유명했다. 카펠 브리지는 1300년대에 세워진 루체른의 상징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나무다리에 지붕을 얹었다. 카펠 브리지가 있는 로이스 강변에는 고급 호텔과 식당가가 몰려 있다. 다리 옆은 사시사철 꽃으로 장식된다. 다리는 삐걱거렸다. 닳고 닳은 나무판과 천장에는 삼각형 그림판이 걸려 있었다. 루체른의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루체른은 로마 시대만 해도 거주민이 거의 없었다. 8세기에 리오데가 수도원이 생기면서 루체른이란 도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840년. 당시 강을 가로지르는 로이스 다리가 처음 생겼다.

루체른이란 이름은 1178년에 붙은 것이다. 1220년 이탈리아와 루체른을 연결하는 고타드 길이 열리면서 도시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카펠 브리지는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다리가 건설되고 뒷산에 무제크 성곽이 세워졌다. 처음엔 수도원의 부속 영지 정도로 여겨졌던 루체른은 점점 주목받는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자 1291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도원으로부터 도시를 통째로 사들였다. 시민들은 왕가에 저항했다. 1332년에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다.

스위스는 모두 26개 캔톤(일종의 주(州))으로 이뤄져 있는데 루체른은 네 번째 캔톤이 됐다. 1386년에는 셈파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루체른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가 그림으로 표현된 카펠 브리지도 큰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1993년 누군가 불붙은 시가를 다리에 버렸는데 이 화재로 인해 다리 대부분이 소실됐다. 당시 다리 위에 걸린 그림은 모두 1백16점이었는데 이 중 85점이 불에 탔다.

현재는 65점이 걸려 있다. 일부는 복원됐고, 일부는 원본이다.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그림도 그대로 걸려 있다. 불에 탄 그림을 그대로 전시할 것인지, 복원 판을 전시할 것인지는 내년까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1250년 건설된 호프 브리지는 1834년 파괴됐다. 카펠 브리지 외에 가장 오래된 다리는 1408년에 만든 밀 브리지다. 당시 곡식을 빻고 난 다음 겨를 다리 위에서 버렸는데 이 때문에 밀 브리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재는 방앗간은 없고 다리 주변에는 낚시꾼들만 모여 있다.


괴테가 루체른까지 온 이유
다리를 보고 나면 무제크 성곽을 둘러볼 차례다. 성곽은 1408년 완공됐다. 약 6, 7m 높이다. 성곽에 올라서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게 돼 있다. 성곽 주변에는 3개의 탑이 있는데 이 중 18m의 시계탑이 가장 유명하다. 루체른의 이 시계탑은 정시보다 1분 먼저 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성을 인정받아 다른 시계보다 1분 빨리 종을 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것이란다. 큰 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오래된 건축물 뒤편에는 작은 광장들이 이어져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광장은 와인마켓 광장. 1370년에 지어진 옛 시청자리 앞이다.

당시엔 이 광장에서만 질 좋은 포도주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17세기 예수의 오병이어 기적을 나타내는 벽화도 그려져 있다. 스택 광장에 있는 괴테의 전신상이 그려진 호텔이 명소다. 괴테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스위스는 유럽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였다. 괴테는 1832년에 사망했지만 당시 이미 스위스에 관광 붐이 불었던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자본가 계급이 탄생했다. 공장을 지어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귀족들은 세계 곳곳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여행 산업은 이때 태동했다. 19세기에 스위스는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산업자본가들의 자본을 끌어들여 알프스 곳곳에 철도를 놓았다.

루체른에 열차가 들어온 것은 1859년이다. 1938년 국제 음악제도 열렸다. 토스카니니가 바그너의 지그프리드를 초연했다. 이 음악제가 바로 루체른 페스티벌이다.

여기서 재밌는 일화 하나. 루체른 역 앞에 가보면 아치형의 아름다운 석조 건축물이 서 있다. 이 석조 건축물은 원래 옛 역사의 일부였다. 19세기에 세워진 철도역은 샬레 스타일로 소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 왕이 루체른을 방문한 뒤 초라한 역사를 보고 실망했다. 왕은 기차역을 웅장한 대리석으로 새로 지었다. 하지만 이 역사는 1970년대에 불에 타버렸고 정문 입구만 남아 있는데 그게 바로 아치형의 석조 건축물이다.


남겨진 스위스 역사의 흔적
루체른 시내를 돌다 보면 스위스 전투병의 그림이나 동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는 땅이 넓지 않아 척박했다. 당시 스위스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몸을 팔았다. 남자들이 가족을 위해 다른 나라 용병으로 나선 것이다. 이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현재 로마 교황청의 근위병을 맡고 있는 병사도 스위스인들이다. 루이 16세에 얽힌 얘기 한 토막만 하자. 루이 16세 역시 자신을 지키는 근위병으로 스위스인을 고용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스위스 용병은 시민군에 맞서 국왕을 지키다 숨졌다. 7백86명의 스위스 용병은 현장에서 모두 전사하고 만다.

후대에 이르러 루이 16세를 위해 죽어간 스위스 용병의 용맹성과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상이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이다. 사자상은 사암 절벽을 파서 조각했다. 창에 찔린 채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사자의 눈동자가 유난히 슬프다. 1821년에 완공됐는데 당대에는 가장 유명했던 작가인 덴마크의 토르발손이 조각을 시작했고, 콘스탄틴이라는 독일인이 완공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상을 보고 ‘지구에서 가장 슬픈 조각상’이라고 했다. 용병으로 팔려간 병사가 죽으면 수공예 조직인 길드에서 그의 가족들을 책임졌다고 한다.


산악 지대 감상하는 증기선과 열차 투어
루체른의 호수 관광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호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물은 깨끗하다. 새벽녘 안개 낀 호수의 풍광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안개 속에서 오래된 건물이 불쑥 나오기도 하고, 멀리 필라투스 산의 위용이 드러나기도 한다. 호수 주변에는 백조가 노닐고 있으며 주말이면 시민들이 나와 낚시를 즐기곤 한다. 증기선 투어도 유명하다. 루체른 호수의 증기선 관광은 1836년 시작됐다. 현재 5대의 증기선이 운행한다. 호수는 넓고 잔잔하다. 멀미도 없다. 주변이 모두 아름다운 산악 지대다. 경사진 목초지에 그림 같은 샬레와 별장, 호텔이 있고 뒤로는 깎아지른 산들이 우뚝 솟아 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는 리기산(1750m)과 티틀리스산(3033m), 필라투스산(2132m)이 있는데 저마다 특색이 있다. 여기선 필라투스만 이야기 하자. 전설이 재밌다.

 
필라투스는 성경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령한 빌라도 총독이다. 필라투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시신이 로마의 강에 버려졌다. 그의 시신을 버린 강줄기가 해마다 범람하자 그의 유해를 건져 묻을 곳을 찾았다. 그러다 찾은 곳이 스위스 필라투스산 정상에 있는 호수다. 시신을 묻은 이후 필라투스산은 수시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공포의 산으로 변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필라투스산에 빌라도의 악령이 산다고 믿었다. 16세기가 돼서야 루체른의 성직자들이 처음으로 산에 올라갔다. 이후 호수는 메워졌다. 지금은 호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용에 대한 전설도 있다. 두 용이 살았는데 1421년 스탬플린이란 농부에 의해 목격됐다. 이 용은 스탬플린을 보호했지만 농부의 친구인 윙켈리드란 친구가 용의 목에 창을 던져 죽였다. 1449년에는 로이스 강에서 용이 목격되기도 했다. 1509년 시는 용의 존재를 공식으로 인정했다.

필라투스는 톱니바퀴 열차를 빼놓을 수 없다. 기찻길의 경사도는 45도. 가장 급한 곳은 경사도가 48도다. 스위스 산악 열차 중 가장 경사가 급하다. 이곳을 열차가 올라가는데 마치 무당벌레가 나무를 기어오르는 것 같다. 정상에는 호텔도 있고, 식당도 있다. 선탠 베드처럼 놓인 의자에서 관광객들이 일광욕을 하기도 한다. 동굴을 파서 만든 미술관도 있다. 동전을 넣고 생맥주도 마실 수 있다. 정상에서는 행글라이더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름다운 호수가 보이는 산정에는 산책로도 놓여 있다. 산 아래 절벽에는 교회당도 지어놓았다. 결혼식장으로 쓰인단다. 주변에는 들꽃을 심어 풍광이 아름답다. 열차 노선 반대편 산기슭에는 케이블카도 이어져 있다. 루체른은 스위스 관광의 핵심 코스 중 하나다.

루체른의 경제 규모는 연 15억 달러. 이 중 8억1천만 달러가 관광을 통해 창출된다. 당일치기 관광객은 연 4백50만~5백만 명. 숙박 관광객은 1백만 명이 넘는다. 루체른은 한때 스위스 수도로 베른과 경쟁했다. 역사적인 고도인 데다 스위스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이 몹시 강했다. 하지만 투표에서 베른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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