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제 나름의 인생이 있다: 예술, 패션의 메카 뉴욕 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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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08회 작성일 10-10-10 21:39![](https://bongkim.com/img/no_profile.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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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의 높은 천정,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여기 소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예술가가 부동산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람들의 그룹이라는 이야기다. 그 이유인 즉, 예술가가 어느 지역에 한번 정착하게 되면 예술가의 특성상 그 지역을 아름답게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밀집해 거주하게 되면 그 지역의 환경이 점차 바뀌게 되고, 일단 이렇게 환경미화가 시작되면 자금이 있는 부동산 투자자들은 아파트와 빌딩을 개조하고 쇼핑 거리를 조성해 외부인들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와 레스토랑이 하나둘 생겨나고 예술과 문화생활에 투자하기 즐겨하는 돈 있는 사업가들은 앞다투어 이곳을 찾아와 이곳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예술가거리의 분위기를 즐긴다. 결국 이 지역은 예술과 유흥의 거리가 되고 수요가 증가해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다. 부동산업자들은 지역을 예술적으로 미화시키는 재주가 있는 예술가들이 지역을 꾸미고 돈 있는 사업가들은 그곳에 돈을 퍼부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세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들어 익숙한 소호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은 미국의 경제 호황기였던 1920년대까지 맨해튼 소재 제조업 위주 기업들의 공장 창고로 지어진 건물들이 빽빽이 자리잡은 활발한 경제 활동지역이었다. 그러나 경제대공황을 맞으면서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이 지역은 폐허로 변해갔다. 폐허로 버려진 소호가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한 것은 창고로 지어진 주철 건물들의 높은 천정과 넓은 공간을 작업실로 사용하려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 이곳을 찾으면서부터다. 예술가들의 주거가 늘어나면서 주변 환경은 점차 쾌적하고도 예술이 살아 있는 거리로 변해 갔고,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상점과 갤러리,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돈 있는 사업가들은 예술·문화소비를 위해 이곳을 찾기 시작했고 예술가의 거리에는 활기찬 소비문화가 생성되었다.
맨해튼의 거대한 쇼핑 천국으로 변해버린 소호
아직도 19세기 주철 건물들과 코블스톤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소호에는 현재 해마다 200개에 달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숍들이 새롭게 문을 열고 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톱 디자이너들이 소호로 찾아든다. 예술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조차도 수천 개의 갤러리가 밀집해 있는 이곳 소호의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소호로 가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비디오아트로 유명한 백남준 씨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예술가들이 소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뉴요커는 물론이고 관광객들이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소호는 점점 더 거대한 맨해튼의 쇼핑 천국으로 변해간다. 이탈리아 의상점 내셔널 코스튬(National Costume)이 소호에 개장했을 때는, 상점 오픈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점 첫 날 모든 상품이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져 다음날 《뉴욕타임즈》가 이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럭비 노스 아메리카(Rugby North America)가 소호에 개점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제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수많은 대규모 비즈니스들이 이곳으로 들어오기 위해 렌트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오르는 렌트비를 감당할 수 없는 예술가들은 이곳을 떠나 다른 값싼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많은 갤러리들이 소호보다 서쪽에 위치한 첼시(Chelsea)로 자리를 옮겼고 허드슨 강을 사이에 끼고 맨해튼을 마주하고 있는 브루클린(Brooklyn) 쪽으로 값싼 렌트를 찾아 떠나는 예술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DUMBO(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라는 다소 소외되고 황폐했던 지역이 값비싼 맨해튼의 렌트비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 들어오는 예술가들로 인해 예술가의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렇게 다수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뉴욕의 다른 장소로 이동함에 따라 베네통이나 갭과 같은 대형 체인 숍들이 소호의 거리를 메워간다. 거리 상인들도 자리 다툼을 하며 값싼 보석이나 작품을 파는 데 여념이 없다.
예술가들의 창작 거점에서 점차 밀려나
소호는 이렇게 변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더 많은 의상점들이 오늘도 새롭게 문을 열고, 더 많은 여행객과 쇼핑객들이 매일 매일 이곳을 찾는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하고, 지난 날 작은 숍과 갤러리로 주를 이루던 예술가의 거리 소호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소호가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 거점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작품이나 디자인 상품들을 세계시장에 내어놓고 거래하는 장으로서 톡톡한 몫을 하고 있다. 또 이러한 소호의 역할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예술과 패션의 메카로 그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 현 시점이다. 사람의 인생에도 굴곡이 있듯이, 소호의 역사도 그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소호의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모르지만 21세기 예술과 패션의 메카로서의 명성이 아마도 소호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한 때가 아닐까 싶다. ●
미니 인터뷰
예술가들이 큰 스튜디오를 찾아오기 시작 지금은 쇼핑과 레스토랑 찾아다니며 즐겨요!
뉴욕 태생으로 외국에서 지낸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을 뉴요커로 살아온 Susan. 뉴욕에서 보낸 세월이 30년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소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개발되기 이전 소호에 가 본 적이 있는가?
Susan: 17년 전 처음 소호에 가보았다. 나의 언니 가족이 그곳으로 이사를 갔었다. 그들이 이사한 곳은 소호 지역에서 가장 먼저 재개발된 아파트다. 당시 그 주변은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었고, 레스토랑이나 숍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이 창고나 공장이었고 이미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주변 환경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그 지역에 가기를 꺼려했었다.
폐허 지역이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소호의 변천사를 모두 지켜보았을 텐데,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Susan: 공장으로 쓰였던 건물들이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큰 스튜디오를 찾아 이사오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제일 처음 찾아들었고 그 다음 갤러리들이 생겨났다. 점점 팬시하게 변해가더니 이제는 렌트비가 너무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소호를 좋아하는데, 뉴욕에 살면서 어떻게 소호를 즐기는가?
Susan: 요즈음은 소호에 쇼핑을 하러 가고,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다닌다. 코블스톤 거리를 걸으며 쇼핑하는 기분은 참 좋다. 갤러리를 둘러보고 대형 브랜드 숍보다는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숍에서 주로 쇼핑을 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동양의 가구를 좋아한다. 몇몇 곳 즐겨찾는 가구 숍이 있는데 중국, 인도, 필리핀, 한국에서 온 가구들이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직도 소호에 가면 오래된 건물들을 둘러보는 것을 즐긴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갤러리도 셀 수 없이 많지만 소호에서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직접 자신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것도 쉽게 본다. 대형 브랜드보다 개인 숍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니 거리예술도 좋아할 것 같은데, 이러한 거리예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Susan: 거리예술가들은 많은데 개인적으로 그다지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멋적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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