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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겸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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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645회 작성일 15-07-1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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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평생공로상·감독상 받은 배우 겸 감독 "어린시절 방황은 인생의 자양분" "리스크없인 아무것도 못얻어"

아카데미 평생공로상·감독상 받은 배우 겸 감독
"어린시절 방황은 인생의 자양분" "리스크없인 아무것도 못얻어"
 
 "제 계획은 앞으로 계속 전진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붙잡고 그 기회들과 함께 움직이는 겁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정정했다. 1969년 미국 서부를 무대로 은행강도들의 활약을 담은 '내일을 향해 쏴라'로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인생의 심연을 건드리는 연출가이자, 세계 최고 독립영화제의 든든한 후원가.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76) 얘기다.
그는 자신이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 배역인 '선댄스 키드' 이름을 따서 1985년 선댄스영화제를 만들었다. 곡절이 있었지만 영화제는 채 20여 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독립영화제로 성장했다.
배우에서 연출자, 그리고 세계적인 영화제를 만든 공로로 2002년에는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기도 했다.
선댄스영화제 개막(19일)을 앞두고 레드포드를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영화제를 운영하는 선댄스재단 협회장이다. 영화제는 오는 19일 미국 유타의 파크시티에서 개막해 29일까지 열린다.
 
-- 선댄스 영화제를 개최한 목적은 무엇이었나.
▲선댄스영화제는 1980년대에 내가 시작한 일의 결과물이자 연장선이다. 이는 마치 독립영화를 위한 실험실을 만든 것과 같다. 우리는 아직 가다듬어 지지 않은 신인 독립영화인들이 각 부분에서의 최고 작가, 감독, 촬영 기사, 배우 등 조언자들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독립영화의 정신을 배양하고 그들이 자기 영화를 만들도록 돕고자 했다. 적어도 독립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독립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건 상영될 기회는 별로 없지만, 영화가 괜찮다는 거다. 즉,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들지만, 누구도 사는 사람이 없고 누구도 봐주는 사람이 없어 사장되곤 한다. 적어도 그들의 작업이 보이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우리가 영화제를 시작한 이유다.
-- 세계적으로 영화산업에 어떤 이바지를 했다고 자평하나.
▲독립영화 제작자의 모임을 만들고, 운이 좋다면 다른 이들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정말로 실현됐다. 관객들이 오기 시작한 거다. 주류에 편입하지 않으며, 다양한 콘텐츠를 볼 기회를 갖게 된 거다. 이런 현상들이 상업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확실히 관객이 늘게 되고서 우리는 또 다른 기회를 창출했다는 것을 느꼈다. 영화 제작자들의 작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 짧은 기간에 선댄스 독립 영화제가 약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댄스영화제가 독립영화만을 위한 유일한 영화제이기 때문에 그런 발전이 가능했다. 내가 이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 모두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울에 이벤트를 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과연 누가 이 기간에 영화를 보고자 여행을 할까'라는 의문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댄스는 오로지 독립영화만을 상영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영화제다. 우리는 주류와 독립영화를 같이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독립영화만 보여 주고 독립영화만을 발전시키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가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른 영화제도 우리를 따라 하고 있지만, 완전히 독립영화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가 주목을 받는 거다. 한마디로 독특하다.
레드포드는 뛰어난 감독으로도 정평이 났다. 30여 년 전 연출한 '보통사람들'로 1980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묵직한 메시지가 담긴 강렬한 영화들을 주로 선보였다. 브래드 피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흐르는 강물처럼'(1993)은 마치 서정시를 화폭에 옮긴 듯한 작품이었고, 존 터투로 주연의 '퀴즈 쇼'(1995)는 실화를 토대로 진실과 허위의 대결을 그린 영화였다. 작년 개봉한 '음모자'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배경으로 '법의 지배' 문제를 정조준한 묵직한 작품이었다.
-- 영화를 만들 때, 연기할 때 좋아하는 소재가 있나.
▲그렇다. 기준은 좋은 스토리에 있다. 이야기가 좋으면서 독특한 부분도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야기 구성이 잘 돼 있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영화가 재미를 위해 특수 효과에 기대고 있다. 보기에는 좋지만 나는 별로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어떤 영화 제작자들은 이야기보다 기술적인 면에 관심을 두지만 내게는 기술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
-- 연기와 연출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자신은 어느 쪽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 다 좋아하지만 연출하는 게 조금 더 어렵다. 사실 손이 더 많이 간다. 연출하는 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연기는 하나의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성공한 예술가지만 레드포드는 어린 시절은 어두운 기억의 조각들로 채워졌다. 19살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물건을 훔치기도 했고, 음주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오디션에서도 수없이 떨어졌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퀴즈 쇼'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할 정도였다.
-- 어린 시절의 방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린 시절 겪은 방황 때문에 고통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 배우로서의 고충도 있었을 듯하다.
▲처음에 뉴욕에 와서 고생도 했다.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트'(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에 들어갔는데,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 돈을 벌 수 어떤 것이면 어떤 일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퀴즈쇼에도 나갔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고생했다. 오디션에 떨어져 역할을 맡지 못한 때도 있었다. 가끔 맡게 됐는데, 그중에 한 작품이 '맨발의 산책'(Barefoot in the Park)이었다. 이 뮤지컬의 성공으로 영화에 도전할 수 있었다.
-- 연기 철학이 있다면.
▲배우에게 중요한 건 말하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기회들이 있으면 붙잡고 그 기회들과 함께 움직이는 거다. 당신도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설사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도록 노력해라. 선댄스영화제는 큰 위험부담이 있었다. 그에 대해 많은 사람이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 위험부담을 내 어려움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리스크'없이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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