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맛으로 산지 알아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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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755회 작성일 15-07-20 09:57본문
수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배우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아마도 어떤 와인 맛을 보고, 어느 지방, 몇 년도, 무슨 와인이라고 알아맞히는 정도의 경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히신 분이 있으시다면 먼저 그 허황된 꿈을 버리십시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루에 10개씩 테이스팅하고 그 맛을 외운다고 가정할 때, 1년이 지나면 3,650개 와인 맛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해가 바뀌어 또 다른 빈티지의 동일한 이름의 와인이 3,650개가 나오게 됩니다. 평생을 아무리 노력해도 3,650개 와인만 맛보다가 그르치게 됩니다. 보르도에는 샤또만 8,000여 개가 있습니다. 그러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한번 맛을 보고 무슨 와인 몇 년도 산이라고 맞히는 장면이 얼마나 허구인지 금방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상류층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빈티지까지 알아맞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007의 직업은 국가 공무원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 돈 안들이고 얼마든지 고급 와인의 맛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와인 중에서 아주 비싼 몇 가지만 연습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007은 영화의 한 장면 아닙니까? 못 알아맞힌 경우는 영화에 안나옵니다. 그러면 텔레비전에서 기가 막히게 잘 맞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때는 미리 그 범위를 정해주거나, 촬영하기 전에 미리 맛을 본 후 그것을 맞히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와인 감정 전문가라고 해도 와인이란 그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자기가 전문으로 감정하는 지방의 와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품종의 특성을 파악하고, 오래된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방별로 어떤 스타일인지 아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분식점에서 라면장사를 한다고 합시다. 어떤 라면을 사용할 것인가? 모든 사람이 맛있다는 라면을 구입해서 끓여주면 됩니다. 주인이 꼭 라면 맛을 보고 무슨 라면인지 알아맞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맛이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라면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 맛에 이 정도 가격이면 우리가 수입해도 되겠구나 혹은 레스토랑에서 아니면 우리 샵에서 손님에게 얼마든지 추천해도 좋겠다고 생각되는 와인을 선택해서 많이 팔면 됩니다.
이 와인에서 동물 냄새, 사과냄새, 블랙커런트 어쩌고저쩌고 … 알아서 뭐 하시려고? 전문가나 책자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그대로 나에게도 느껴진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감각이란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같이 이제 와인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익숙해지는 단계에 있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느낌이 안 느껴지니까 별 생각을 다하게 됩니다. "나는 테이스팅에 소질이 없나봐", " 언제 저 사람 수준이 되나" 열등감만 쌓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와인 맛 알아맞히기'는 와인 공부의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여러분! 맛을 알아맞힌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십시오. "맛있다", "맛없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셔도 그 능력이 충분합니다.
진짜 테이스팅이란 다음과 같이 합니다. 가장 초보적인 감정은 차이를 식별하는 것입니다. 우선 색깔이 비슷한 두 가지 와인을 준비하여 두 개는 같은 것, 하나는 다른 것으로 세 잔을 만들어 그 중 다른 것 하나를 알아맞히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이 때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데, 우연히 맞출 확률을 줄이기 위해 수회 반복하여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3점 검사에서 우연히 맞출 확률은 1/3입니다. 그러나 2회 다 맞출 확률은 1/9이며, 3회 맞출 확률은 1/27이 됩니다. 우연히 맞출 확률은 5% 이하로 해야 신뢰성 있는 데이터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3점 검사에서는 최소 3회 연속 정답이 나와야 하며, 반면 2점 검사에서는 5회 이상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어떤 대회에 나가서 맛을 알아맞혔다면 그 때 우연히 맞힐 확률이 얼마나 되나 자기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와인 두 종류를 놓고 구분을 한다고 했을 때 어린애를 데려다 놓고 해도 100명 중 50명은 정답이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차이를 식별하게 되면, 그 다음으로 느낀 점을 명확한 언어로 묘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초보자들이 처음부터 이 단계로 들어가 어색한 용어나 번역한 용어로 와인의 향과 맛을 표현하고 있으니, 제대로 그 뜻이 전달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테이스팅 실력도 제자리걸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단계에 익숙해지면 정량적 묘사분석으로서 향과 맛의 강도를 수치로 표현합니다. 즉 테이스팅이란 차이식별검사 → 묘사분석 → 정량적 묘사분석 순서로 단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테이스팅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고 훈련받은 패널 즉 여러 명이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데이터를 산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전문적인 테이스팅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이미 외국에서 전문가들이 이 단계를 거쳐서 와인을 평가하고 그것을 가격에 반영한 후에,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때문입니다. 와인 맛을 알아맞혀서 어떤 이득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나에게 맛있다, 맛없다고 느껴지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맛을 가격과 비교해서 구입을 할 것인지 결정해서, 잘 팔아치우든지 아니면 맛있게 마시면 더 이상 바랄게 뭐가 있겠습니까? 테이스팅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즐거움을 주는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와인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의 술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테이스팅이라는 가식에서 벗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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