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인은 몇 점 짜리인가요?" > 와인교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와인교실


 

"이 와인은 몇 점 짜리인가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설화 댓글 0건 조회 2,284회 작성일 12-05-09 11:50

본문

와인에 붙은 점수를 보신 적이 있나요?
슈퍼마켓 와인 매대에 진열된 와인들, 혹은 와인샵에서 파는 와인들 가운데 일부는 특별히 점수가 매겨져 있습니다.  주로 100점 만점의 점수입니다.  유명한 와인평론가 혹은 와인 전문잡지에서 부여한 점수를 받은 와인들은, 점수가 없는 와인들보다 판매될 확율이 높아집니다. 
무수히 많은 와인들 가운데 전문가들의 선택과 평가를 받은 와인들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지 못해서 점수가 없거나, 혹은 낮은 점수를 받아서 점수를 공개하기 어려운 와인들은 팔기가 어렵습니다.이 때문에 전세계의 와이너리들과 와인제조사들은 와인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를 씁니다. 
   
 
존재감이 없던 와인이 유명 평론가로부터 90점대 후반의 높은 점수를받기라도 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한순간에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됩니다.  반면, 잘 나가던 와인이라도 점수가 하락하게 되면, 매출이 뚝 끊깁니다.와인에 100점 만점의 점수를 매길 생각을 처음한 것은 미국의 저명한 와인평론가인 로버트 파커입니다.  미국 매릴랜드주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파커는 1977년 "와인 애드보커트"(Wine Advocate)라는 와인잡지를 창간하면서 와인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내놓는 점수에 전세계의 와인업계가 일희일비하게 된 것은 그의 투철한 직업윤리와 객관성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음대상 와인들을 협찬 받지 않고 자비로 구매하며, 와인생산자들로부터 일체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지 않으며, 1년에 1만종 이상의 와인들을 시음하면서 날카로운 평가를 내놓은지가 벌써 30년이 넘습니다.  파커의 유명세와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그와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와인평론가들이 도처에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많은 평론가들과 잡지들이 100점 만점의 평가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100점 만점의 와인평가체계야말로 편리하기 그지 없습니다.  동네 슈퍼마켓에조차도 수백종 이상이 진열된 와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와인을 사야할지 막막하다 못해 어지럽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너무나도 친절하게 "85점" 혹은 "94점" 등의 점수가 매겨져 있다면, 소비자는 와인을 고를 때 가격과 점수만을 고려하여 손쉽게 원하는 와인을 고를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물을 단순화시킬 때 저지르기 쉬운 "단순화의 오류" 또한 이 100점 만점의 와인 평가체계에도 숨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스타일을 가진 와인들을 과연 산술적인 점수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컨데, 99점을 받은 호주 시라즈가 87점을 받은 부르고뉴 피노누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제 입맛에는 부드럽고 가벼운 피노누아가 무겁고 뻑뻑한 시라즈보다 맛있다고 느낀다면요?점수로 와인을 평가하는 폐단은 또 있습니다. 
   
 
유명 평론가들이 매긴 점수가 와인의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많은 와인생산자들이 평론가들의 입맛에 맞는 스타일의 와인만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차 말씀 드렸듯이, 와인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다양성인데, 차츰 그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와인생산자들의 입장에서는 와인의 판매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 때 저도 평론가들의 점수에 얽매여서 100점짜리 와인들을 사모으기도 하고 마셔보기도 했습니다.  와인을 평가하는데 제 나름의 잣대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와인을 마시다 보니, 유명 평론가들의 입맛과 제 입맛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와인에 점수를 매기는 행위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드리는 소비자들의 인식입니다. 
평론가들이 부여한 점수를 맹신하지 마십시오.  점수는 참고만 하시고요.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와인의 참모습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와인이 바로 100점짜리 와인이니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