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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없는 질문 - 와인과 묵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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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아풀 댓글 0건 조회 2,209회 작성일 12-05-0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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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와인을 비싼 가격에 사놓고, 이걸 언제 마시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좀 묵혀놨다가 마시는게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와인셀러도 없는데, 빨리 마셔버려라’고 합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요?
황당하시겠지만, 한 때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 “그 때 그 때 달라요~”가 정답이지 싶습니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와인을 보관하는 여건에 따라, 그리고 와인을 드시는 분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니까요.
먼저 와인의 종류를 살펴 보시죠.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라는 와인이 있습니다.  가을에 수확한 가메이(Gamay) 품종의 포도를 1~2달 만에 병에 담아 판매합니다.  이 와인의 매력은 신선한 과일의 풍미입니다.  때문에, 가급적 생산된 해나 이듬해 중순 이전에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와인을 오래 두었다가는 좋아지기는 커녕, 신선한 과일 풍미가 사라진 밍밍한 음료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반면, 보르도 등지에서 생산되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품종으로 만든 고급와인들이나, 북부 이탈리아에서 네비올로 품종으로 생산되는 좋은 바롤로는 30년의 세월을 너끈히 버틸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 수록 부드러워지고, 복합적인 향과 맛을 더하게 됩니다.
 
   
   
1955년산 Chateau Mouton Rothschild의 병과 코르크
 
품종과 더불어, 양조 방법에 따라 장기보관할 와인인지, 또는 금방 마셔버려야 하는 와인인지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포도의 생산량을 줄여서 농밀한 와인을 만들고, 오크 숙성을 오랫동안 시킨 와인들은 병 속에 장기간 보관이 가능합니다.  반면, 대량 생산한 묽은 와인들은 빨리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복잡하게 양조 방법까지 확인하기가 귀찮으시면, 가격만 봐도 대략 답이 나옵니다.  즉, 가격이 비싸면 장기보관해야 하는 와인이고, 싸면 금방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와인을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언제 마실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병에 담긴 와인을 숙성시키는 이상적인 조건은, 섭씨 13도(화씨 55도)와 습도 70%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어두운 곳입니다.  유럽의 와이너리들에나 있는 지하동굴을 소유하지 않는 한, 이런 조건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시중에 팔리는 와인냉장고들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는 하지만, 습도까지 유지하는 기능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간혹 집에 있는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와인을 보관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 또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습도가 매우 낮아서, 코르크가 말라버리거든요.  코르크가 마르면, 병 속으로 공기가 유입되어서 와인이 상할 가능성이 큽니다.  차라리 집안에 햇빛이 안 드는 방의 장롱 속에다가 와인을 보관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 경우에도 6개월 이상 보관하기는 어렵고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언제 와인을 마실지가 정해집니다.  이럴 때 와인을 김치와 비유하여 생각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와인과 김치는 둘 다 발효식품이라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갓 담은 겉저리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저처럼 푹 익은 묵은지를 선호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혹은 중간 정도로, 적당히 익은 맛의 김치를 즐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좋거나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도의 차이이니까요.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성한 과일의 풍미와 떫은 타닌의 쌉쌀함을 즐기시는 분들은 어린 와인을 선호하실 것입니다.  혹은 쾌쾌한 가죽향이나 낙엽향이 베어 있는 올드 빈티지 와인들만 찾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느 단계의 숙성된 와인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언제 와인을 열어야 하는지가 결정됩니다.  문제는, 갖고 계신 와인이 언제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고, 어느 시점에서 장년기와 노년기를 맞는지를 미리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거나, 와인평론가들이 예측하는 시음적기를 참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선사하는 와인의 폭넓은 스팩트럼을 만끽해 보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보르도의 그랑크뤼 1등급 와인인 샤토 무통 로스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1955년 빈티지를 마셔보고는, 와인의 놀라운 생명력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와인은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기도 하지만, 한 와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또한 다양합니다.  와인 애호가들이 같은 와인의 서로 다른 빈티지를 한 자리에서 시음하는 버티컬 시음회를 여는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와인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겉저리만 계속 먹어본 사람이 김치를 논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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