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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로 양로원을 시작하게 된 것은 불쌍한 노인들을 돌보고자 한 자선심에 비롯 - 정남규 John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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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972회 작성일 14-05-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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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규는 1886년 5월 14일에 서울 玉洞(現 종로구 玉仁洞)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한일합방 후 義城郡守로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경성의 재무주임으로 있던 어느날 정남규는 뭬텔 주교로부터 관리 생활을 그만두고 교회일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에 그는 20년간의 일본 관리 생활을 청산하고 1923년 종현성당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財團설정을 위한 전국 각 교회의 조사를 시작하였다. 뭬털 주교가 경성교구를 재단으로 설립하고자 한 것은 경성교구의 교회 재산 대부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소송이 불가능해 일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구교구의 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는 뭬텔 주교와 생각이 달랐다. 대구교구의 교회재산은 새 법률에 따라 문서들이 작성되어 있었고 소유권도 외국인의 명의로 되어 있을 때 더욱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구교구의 재단법인 설립은 그만큼 늦어졌다(1938년 6월 18일 '대구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으로 설립). 경성교구는 1924년 10월 27일 '경성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으로 설립되었다. 교회 재산의 정리를 마친 후, 정남규는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양로사업은 블랑 주교의 제안으로 1885년 7월 2일 종로구 똥골에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시작되었는데 1893년 재정난으로 중단되었다. 정남규는 1924년 4월에 사고무친한 예순살 이상의 노인을 종현성당에 수용하여 보살피기 시작하였다. 그가 양로원을 시작하게 된 것은 불쌍한 노인들을 돌보고자 한 자선심에 비롯하였지만 3·1운동 후 천주교회에서도 사회적, 시대적 요청에 부흥하여 신자들에게 자선을 위한 조직을 강력히 권고하던 분위기에서 다분히 기인하였다.
 
1926년 11월 20일 정남규는 黃金(現 을지로 1가)에 19間 짜리집을 매수하여 무의탁 병자노인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양로원이란 이름도 붙이지 않고 그대로 몇 사람의 노인을 거두기 시작하였는데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사이에 양로원이 생겨 자기네의 여생을 맡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하루에도 두어 사람씩 찾아와서 애원하였다. 이에 적은 방과 경비로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기에 교회 측과 다시 절충하여 라리보 주교로부터 3,554원을 차용하고 약간의 私財까지 더하여 1930년 3월 23일 하왕십리 955번지에 가옥 25間을 매수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십여명의 노인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양로원에 수용되어 있는 노인들이 모두 육십 세 이상이라 일년에도 몇명씩 사망하였다. 일정한 묘지가 있는 것도, 장례 비용같은 것도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할 수 없이 공동묘지에 매장하였고 그 불편이 너무 심하여 사망한 노인들을 모시고자 山 하나를 구입하였다.
 
1936년 하왕십리의 집이 헐고 좁아 교회측과 다시 절충하여 의논한 결과 뚝섬 골프장 동쪽 솔밭 언덕 1,660평을 매수하여 건물 1동을 신축하여 양로원을 이전하였다. 당시 수용 노인수는 65세 이상의 할머니 24명으로 두 사람은 90세 이상이었다. 노인들에게 병이 나면 성모병원의 의사들이 돌보아 주었다.
 
정남규 회장이 시작한 양로원에 처음으로 무의탁 노인을 수용한 것은 1925년 12월 1일이었고 첫 수용자는 81세 된 할머니였다. 양로원은 처음에 교회 유지들에게서 애긍전을 받은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시일에 감에 따라 열이 식어 끝내는 정 회장의 개인 사업이 되다시피 하였다. 정남규와 경성측후소에 근무하던 아들 정태준, 소학교 교원이던 자부와 딸 은준이 양로원을 이끌어 갔다. 1950년 6월 까지 연 수용인원은 267명이었고 생존자는 27명이었다.
 
정남규 회장이 피납된 후 양로 사업은 원사가 파괴되어 중단되었다가 1951년 9·28수복 후 윤을수 신부가 재활을 위임받아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성당으로 원사를 이전하였다. 그 후 1958년 4월 1일 '재단법인 천주교 유지재단'에서 서울 성가수녀회로 이관되어 부천시 소사읍 조종리 188번지로 원사가 이전되었고 '성가 양로원'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1990년 6월 5일 부천시 남구 소사동에 연건평 1,312.09평의 원사가 신축되었는데 수용인원은 1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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