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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로 떠나는 날개옷, 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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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89회 작성일 11-03-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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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른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의는 특히 저승과 이승을 하나로 보는 긍정적인 내세관이 가장 깊숙이 담긴 물건이다. 장래에 입을 옷이라는 ‘장래옷’, 옷을 입고 내세에 문안 드리러 간다는 의미가 담긴 ‘문안옷’, 먼 곳으로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먼 옷’, 죽어서도 계속 입을 옷이라는 뜻의 ‘평생옷’까지 그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봐도 옛 어른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되짚을 수 있다.
수의는 자손이 미리 준비해두면 부모가 장수하는 것으로 여겨, 귀신의 감시 밖에 있다는 윤달이 든 해 윤달에 미리 지어놓았다. 우주의 어디론가로 돌아갈 때 입고 가는 옷을 마련한다는 뜻인데, 인간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려는 옛 어른들의 우주관이 담겨 있다. 지방에 따라 결혼 예식 때 입었던 내삼을 수의로 입기도 했고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평상복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골라 입혔다고도 한다.

수의는 재료나 제작, 보관 방법 등에 수많은 금기가 있다. 먼저 고양이 털이 들어가거나, 쥐로 인해 좀이 슬거나, 가족 중에서 임산부, 부정한 사람이 수의를 보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는데 부정한 것을 삼간다는 의미의 금기다. 모시는 자손의 머리가 모시처럼 하얗게 세고 눈이 하얗게 된다는 믿음 때문에, 명주는 땅에 묻히면 썩지 않고 뼈에 감기고 붙는다고 보아 어떤 지방에서는 모시나 명주로는 수의를 짓지 않는 금기도 있었다. 또 수의를 바느질할 때도 많은 금기가 있다. 수의 제작 방법에 관한 금기를 살펴보면 귀한 정성을 들여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생존에는 매듭을 매도 되지만 운명한 다음에는 매듭을 짓지 않고 뒷바느질도 안 하는데 이건 가끔 되살아날 때 회생하라는 의미였다. 발이 미끄러워 제사 때 다니기 어려우니 겉은 명주로 하더라도 안은 삼베로 하라는 것에는 죽은 후의 일까지도 염려하는 갸륵한 마음이 담겨 있다. 미리 필요한 양을 잘 생각해 정성껏 짓는다는 뜻에서 바느질하다 실이 짧으면 빼버리고 다시 실을 끼워서 바느질하는 것, 내세와 현세를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수의의 실을 길게 늘여뜨려두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미리 준비된 수의를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했는데 보관이 잘못돼 수의가 상하면 자손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알았다. 수의는 좀이 슬지 않는 오동나무에 보관하거나 좀약이나 잎담배를 창호지에 싸서 넣어 보관했다.

이제 아낙들이 둘러앉아 마을 어른의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모습도, 수의를 짓는 날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고 찰밥을 나누어 먹는 풍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그들에게 대량생산된 ‘기성복’을 입혀 보내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얼마 전 한복 연구가 김영석 씨는 어머니를 위해 명주에 꽃수를 놓은 수의를 미리 지어놓았다. 그 수의에는 어머니의 웰다잉을 비는 자식의 갸륵한 마음이 곱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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