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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자연주의는 음양오행설이 가미되어 풍수지리설로 체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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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챠이브 댓글 0건 조회 2,656회 작성일 11-09-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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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자연관

  자연을 보고 느끼고 말하는데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종교적 자연관, 예술적 자연관, 자연과학적 자연관이 그것인데, 이중 자연과학관은 자연을 본질과 원리를 설명하려는 측면에서의 자연접근방법이다.

  동양사람들은 자연의 본질과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의 기(氣)와 상(象)이 본성과 그 존재 또는 현상에 대하여 빛과 어둠의 힘과 땅의 본질을 상징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태극설(太極說)을 창조하였다. 이것은 직감적으로 자연의 氣的인 것의 力學에서 動과 靜을 착상하여 판단하고는 그것의 운행과 변화에 자연의 섭리, 곧 理的인 자연법칙을 찾게 된 것이다.

  곧 그들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해석을 붙여서 男과 女의 兩性의 관계, 柔와 剛, 上과 下, 東西의 方位와 溫冷 등으로 모든 자연계의 사물 을 대립 존재하는 패턴으로 파악했다. 또 그것의 순환하는 조화의 상태를 태극(太極)이라 불렀다. 이 음양이 합치면 상생(相生)하고 충동하면 상극(相極)하는 순환의 상태나 天地人 의 우주 관계가 상호작용 하는 유기적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맹자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만들어 喜·怒와, 哀·樂, 측은·수치심 등 감정상태 의 兩性을 논하며 性善을 말했으나, 순자는 이들의 대립으로 性惡을 말했다. 나중에 주자의 성리학에서는 모든 인간성에 자연 법칙적인 원리를 적용하여, 돌과 草木, 금수의 조직원리보 다 높은 차원의 존재양식을 가지 것으로 보고, 그리하여 인간 주체의 도의 관을 내세웠다. 이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자 철학과는 대립된 인간의 자기 발견의 규범철학이었다.

  동양의 자연관이 서양의 그것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점은 노장사상에서 주장하는 '스스로 되는 것'에 있다. 특히 왕충의 「논평」에서는 '천지의 기를 합하여 만물이 스스로 생성된 다'는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 크게 본다면 한국의 크게 본다면 한국의 자연관 역시 이 범주 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인은 거대한 규모의 자연 속에서 순응만 해서는 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연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중앙정부 지휘하에 대규모적인 공사를 필요로 했던 예를 통해서 자연에 응전하도록 한 중국의 수리조건을 읽을 수 있다.

  또 일본의 자연은 중국에 비해 소규모이기는 하나 국토가 고산과 깊은 계곡으로 세분되어 있고, 그 자연적인 단위지역에는 늘 자연으로부터의 혹 심한 도전이 있어 일본인들은 이에 맞서는 대결을 계속해 왔다.  한편, 한국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온건한 자리 조건과 변덕이 심한 기후의 변호에 맞추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이 풍토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세계관을 낳았다.  그래서 한국의 자연은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물로 동양적인 사상은 '천지의 기를 합하여 스스로 난다'라 하는 데서는 위의 두 나라와 같은 근 본 사상을 가지면서도 말이다. 또, 한국의 '불가지론'이라는 것도 이러한 풍토에 연유한다. 알 수 없는 자연의 변화, 하지만 그 변화를 지배하는 길은 변화에 어울리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이므로 무위자연의 심성으로 자연과 어울려 살면 되었다.

  이러한 한국적 자연주의는 음양오행설이 가미되어 풍수지리설로 체계화되었다. 음양오행설은 기(氣)의 변화패턴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도록 되어있다. 극심한 변화를 거듭하는 한국 특유의 기후와 강, 조수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이러한 기의 변화패턴이 적절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체계화된 풍수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미의식과 종교적 정열로 연결되었다. 객관적인 지식의 축적만이 아닌 보이는 대로 보면 된다는 여지가 만이 있었던 때문이다. 자연을 스스로의 뜻으로 판단케하는 자연관은 자연이 보는 대로 있는 것이라는 신념에 뒷받침되어 있으며, 나아가서는 무위자연의 심성을, 더 나아가서는 강한 주체의식을 낳았던 것이다.

  즉, 산수를 형식적으로 해석하는 것 외에 직관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선(禪)적인 훈련이 요구되면서도 자신의 타고난 직관을 스스로 믿을 수 있는 데에 강한 주관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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