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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병, 아픔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 - 테마별 부처님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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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030회 작성일 09-11-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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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아픔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 - 테마별 부처님가르침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있는 한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육신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병들지 않은 인간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인혹(人惑)과 물혹(物惑)의 병을 앓고 있다고 선(禪)은 설한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는 노년, 중년, 청년을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다. 지나친 속도로 가지를 많이 치는 문명의 피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심신의 안정을 해치는 장애가 많아졌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번 마음의 평정이 깨지고, 육신의 기능적 질환이 생기면 자기회복을 위한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순수한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마음의 미혹도, 육신의 병도 사실은 모두 그릇된 행위들이 쌓이고 쌓인 업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업력을 해소하고 평정과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얼마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그렇다면 경전이 설하는 심신의 건강이란 무엇이며 건강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경전이 그렇지만 진리의 말씀이라 불리우는 『법구경』은 부처님의 역사적인 원음을 담은 경전이라고 한다. 그 만큼 법구경의 말씀은 소박하고 진실하다. 너무 소박하고 진실하기에 온갖 허위에 오염된 우리의 귀는 부처님의 말씀을 자칫 흘려듣기 쉽다. 모든 일은 당해봐야 대책의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우리는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이 들고나서야 부처님의 가르침은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진리의 말씀이라고 때늦은 후회를 하기 마련인 것이다. 탐욕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고통의 강도도 따라서 높아진다.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모든 병과 고통은 바로 탐욕과 애착의 강도에 정비례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 파멸적인 공식을 깨닫고, 인생의 최고 이익이야말로 건강이며, 만족할 줄 아는 것은 가장 큰 재산이어서 우리를 신앙과 깨달음의 드높은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할 때인 것이다. 

깊은 믿음은 가히 무너뜨릴 수 없으니 일체제불을 공경공양하며
제불과 정법(正法), 성스러운 승가를 믿고 공경하는 까닭에 보리심을 발한다.
제불과 정법을 깊이 믿고 또한 보살이 행한 바 도를 믿어서 바른 믿음으로써 부처님의 보리를 향하게 하여 보살이 초발심하는 원인이 된다.
믿음(信)은 불도의 근본이며 모든 공덕의 어머니이다.
일체의 선법(善法)을 증장하고 일체의 의혹을 극복하여 위없는 진리를 개발하고 시현한다.
청정한 믿음은 묵은 때를 벗게 하고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여 교만을 제멸하는 공경의 근본이다.
『화엄경』 권6 「현수보살품」


『대지도론』은 설한다. “믿음은 손과 같다. 어떤 사람에게 손이 있다면 보배의 산에 들어가 자재하게 보물을 취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믿음이 있다면 이와 같이 불법의 보산(寶山)에 들어와 자재롭게 취할 수 있거니와 믿음이 없다면 손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손이 없이 보산에 들어가더라도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즉 자신의 밭을 갈지 않으면서 항상 먹을 것을 구걸하는 걸인과 같은 믿음을 갖지말고 자신의 손으로 믿음의 밭을 가꾸라는 이야기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불교는 신앙이라는 말보다는 신심(信心), 신해(信解)라는 표현을 더욱 자주 쓴다. 즉 불교도의 믿음은 어떤 절대화된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보다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대한 믿음, 부처님의 중생구원력에 대한 믿음, 인간은 바른 행위에 의해서만이 고(苦)에서 해탈한다는 믿음, 윤회와 업에 관한 윤리적 행위에 대한 믿음이다. 불자는 이 믿음에서 인간과 세계,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와 용기를 얻고 살아가는 것이다.
부처님은 출가 이후 6년 간 극심한 고행을 체험한다. 신체의 모든 뼈가 앙상히 드러난 고행상(苦行像)도 있거니와 부처님은 한때 그야말로 기진맥진하여 걷지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진한 때가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즉 이 육신을 사용해서 해탈의 도에 이르려면 바로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며 깨달음을 위해서는 이 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라는 흔한 말처럼 불교의 진리는 건강한 몸과 마음에 깃든다. 그것은 육신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닦고 깨닫고 실천해 나가기 위한 최초의 전제인 것이다. 
유마 거사는 “보살의 병은 큰 자비에서 생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불교의 따스함은 근본적으로 ‘아기의 병을 대신 앓을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엄마의 심정처럼, ‘대수고(代受苦)’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 불전에서는 부처님을 의사들의 왕[醫王, Vaidyaraja]이라고 부르며 초기불교의 사성제(四聖諦)도, 자비의 극한을 설하는 대승의 교법들도 중생이 앓는 병의 원인과 상태, 진단과 치료에 관한 원리를 바탕으로 삼는다. 그래서 불교는 중생의 병을 함께 앓는 보살의 한없이 따스한 자비와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한 얼음처럼 차가운 지혜의 칼을 함께 가진 종교인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결국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불교라는 종합병원의 임상보고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법화경』 「비유품」에서는 “삼계는 평안하지 않아서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모든 고통이 충만하여 가히 두렵나니 항상 생로병사의 불길이 쉬지 않고 타오른다.”라고 이 세상의 모습을 그려낸다. 하지만 오늘 이 세상의 비참함과 고통은 실로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수행자는 바로 비참한 세상, 소리 없는 고통의 절규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물러나지 않고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부디 사려깊고 건강하며 자비로워야 한다. 초기경전 『숫타니파타』가 전하는 이 말씀 또한 이 병들어 문드러져 가는 세상에서 불자가 살아가는 길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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