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이 서로 연관되서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 - 주제별 부처님가르침 > 인생매뉴얼 삶의지침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인생매뉴얼 삶의지침서


 

불경 모든것이 서로 연관되서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 - 주제별 부처님가르침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111회 작성일 09-11-24 14:34

본문

연기(緣起) - 모든것이 서로 연관되서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 - 주제별 부처님가르침

불교가 너무 난해한 사상과 고행을 설하는 종교라며 아예 관심조차 없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지금의 속도로 계속 늘어난다면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심원함은 이제 퇴색해 버린 이상주의자들의 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인간과 수행, 삶을 함께 아우르는 운동보다도 옛 영광을 찬미하며 고담준론을 일삼는 지금의 현상은 역설적으로 불교가 본래 지니고 있는 창조적인 열정과 탐구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가장 기본적인 교리를 하나하나 깊이 있게 공부하고 부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항해하는 어두운 고해에서 길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빛을 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불교의 인간 이해를 가장 깊이 있게 설하는 연기(緣起)의 교리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연기의 교법은 초기 경전에서 “연기를 보는 자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 연기를 본다(若見緣起者便見法 若見法者便見緣起).”라고 규정할 만큼 불교사상의 기초이며 그 교의적 전개가 아비달마, 화엄사상과 유식, 중관불교 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초기경전 『아함경』에서도 석존의 깨달음은 바로 연기의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설해질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는 교리이다.

비구들이여, 연기(緣起)의 법이란 무엇인가? 생(生)의 연(緣)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다. 이 법은 여래의 출세와 불출세와 상관없이 인간 존재의 영원한 법칙이자 확법이며, 여래는 연기의 법을 깨닫고 이를 설하고 교시하여 명료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보라. 생을 연하여 노사(老死)가 있고,… 이와 같이 진여성(眞如性)·불허망성·상의성(相依性)인 것을 연기의 교법이라고 한다.


남전 상응부,한역 『잡아함경』12

인연(因緣)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그러나 인연이란 무엇일까? 물론 인(因)이란 결과를 낳기 위한 직접 원인이고 연(緣)이란 외부적 조건이나 환경을 이루는 보조 원인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한다면 우리에게 인연이란 어감은 그저 선연(善緣)이건 악연(惡緣)이건 자신과 관계를 맺는 연줄, 연분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연기교법의 전제인 ‘인과 연으로 일어나는 것(因緣生起)’은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라는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인과·연기는 좀더 이와 같은 존재의 상의상관성에 대한 논리적 이해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내면에 담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답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거북이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단단한 껍질처럼 무거운 숙업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 번뇌하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먼저 여기에 12연기를 적어둔다. 무명(無明, avijja : 迷妄·근본적인 無知) - 행(行, sankhra : 잠재의지, 맹목적인 의지) - 식(識, vijnana : 분별의식, 六識) - 명색(名色, nama-rupa : 인식의 대상, 명칭과 형태) - 육입(六入, salayatana : 六根, 眼耳鼻舌身意) - 촉(觸, phassa : 접촉) - 수(受, vedana : 感受) - 애(愛, tanha : 愛執, 葛藤) - 취(取,upadana : 집착, 소유의지) - 유(有, bhava : 개체, 윤회의 생존) - 생(生, jati : 유한한 생명으로서 실존) - 노사(老死, jara-marana : 고뇌, 죽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행(行)이 생긴다. 행으로 말미암아 식(識)이 생긴다. 식으로 말미암아 명색(名色)이 생긴다. 명색으로 말미암아 육입(六入)이 생긴다. 육입으로 말미암아 촉(觸)이 생긴다. 촉으로 말미암아 수(受)가 생긴다. 수로 말미암아 애(愛)가 생긴다. 애로 말미암아 취(取)가 생긴다. 취로 말미암아 유(有)가 생긴다. 유로 말미암아 생(生)이 생긴다. 생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가 생기고 우수·슬픔·고통·우울·고뇌가 생긴다. 이 모든 고(苦)의 일어남은 이와 같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행(行)이 사라진다. 행이 사라지면 식(識)이 사라진다. 식이 사리지면 명색(名色)이 사라진다. 명색이 사라지면 육입(六入)이 사라진다. 육입이 사라지면 촉(觸)이 사라진다. 촉이 사라지면 수(受)가 사라진다. 수가 사라지면 애(愛)가 사라진다. 애가 사라지면 취(取)가 사라진다. 취가 사라지면 유(有)가 사라진다. 유가 사라지면 생(生)이 사라진다. 생이 사라지면 노사(老死)가 사라지고 우수·슬픔·고통·우울 ·고뇌가 사라진다. 이 모든 고(苦)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

*남전 『무문자설(無問自說 ; udana)』
 
성도 직후 붓다의 선정 속에서 밝혀진 연기교법은 그 실천수행면에서 순관연기(順觀緣起, ``~을 말미암아 ``~이 생기는 연기)와 역관(逆觀緣起, ~이 사라지면 ~이 사라지는 연기)라는 두 체계를 갖고 있다. 즉 순관연기란 무명에서 노사(老死)에 이르는 업·번뇌·생사의 진행 과정이며, 역관연기란 노사(老死)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지혜의 수련을 통해 무명의 지멸(止滅)에 이르는 해탈의 과정이다. 인간의 생존과 심리구조에 관한 이해를 반영하는 12연기의 교법은 초기불교 이후 전개되는 불교철학사에서 12연기의 순관과 역관, 무명과 해탈의 전환체계, 존재의 상의상관적 원리, 외도(外道)의 유물론과 유신론 비판, 선정수행(禪定修行)의 강조(獨一靜處 專精禪思)와 같은 교리적 특징을 전제로 전개된다.
우리는 연기(緣起)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생하므로 이것이 생한다. 저것이 없을 때 이것이 멸한다”라는 상의상관의 법칙을 논리 관계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의상관성의 논리 관계로만 연기(緣起)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재는 상의상관성의 연속적인 무한이라는 실재론적인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무한소급이란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한 가정(假定)이 또 다른 가정을 낳고 그 가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또 다른 가정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중론』에서는 아나바스타(anavastha, 無窮)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언어와 논리가 서로 엉켜서 희론(戱論, prapanca)이 끝나지 않는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게 될 위험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중론』에서는 존재의 법칙은 연기이며, 연기의 본질은 공(空)이며 중도(中道)라고 설하는 것이다. 이 점은 연기의 실천윤리, 행위의 자기책임 귀속문제, 즉 불교의 실천윤리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선남자여, 제불 세존에게는 세 가지 몸이 있다. 이르되 법신(法身)·수용신(受用身)·화신(化身)이다. 여래의 열반 후 만약 이 삼신(三身)에 공양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사리를 공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골사리(身骨舍利)이며 둘째는 법송사리(法頌舍利)이다. 법송사리는 곧 게송으로 설하여 가로되,
당(唐)의 의정(義淨, 635~713) 스님이 역출한 『욕불공덕경』에서는 연기교법을 설하고 있는 게송을 법송사리(法頌舍利)라고까지 정의한다〔같은 취지를 설하고 있는 『조상공덕경(造像功德經)』에서는 ‘법장(法藏)’이라고 한다〕. 즉 모든 불교교학의 넓이와 깊이를 20자의 게송으로 압축한 연기의 법송이야말로 불교사상의 진수이자 법의 사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송을 서사하여 탑 안에 안치해야 한다는 불교의례의 사상적 틀을 조명해준다. 저
「경주석장사지출토탑상문전명(慶州錫杖寺址出土塔像紋塼銘)」이 바로 이 게송이며 「서산보원사지오층탑사리갑명(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舍利匣銘」]에 각인된 게송도 바로 이 법송이다. 그들은 인간에 관한 불교의 근본적 통찰이 담겨 있는 연기의 게송을 서사하고 각인하여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희구하며 세웠던 탑 안에 봉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문화적 원형을 들여다 보면 연기를 삶의 준거로 삼았던 옛 불교인들의 지성(知性)과 신앙의 깊이가 읽혀진다. 신라와 백제, 고려의 경우처럼 불교가 그 시대의 정신으로 선택되고 삶의 드높은 준거가 되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를 제시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