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하나 바라보고 정성을 바쳤는데 지금 와서 딸이 푸대접 집까지 뺏기고 쫓겨난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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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2,734회 작성일 11-03-04 11:17본문
중년이 넘어선 듯한 낯선 목소리다. "'행복을 그려가는 여성' 상담사례집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이에요. 정말 억울해서 못살겠어요."하며 끝까지 말을 맺지 못하고 목이 메여 울기 시작했다. 젊어서 홀로되어 딸 하나를 키웠다. 남의 집 종업원부터 시작해서 야채가게, 식당, 이것저것 안 해본일이 없이 한 평생 고생하다가 마침내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벌어 딸을 유학 보내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힘겹게 생활비며 학비 등, 허리가 휘어지도록 뒷바라지를 했다.
그렇게 공부하던 딸은 미국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첫 아기를 낳았다. 하나 밖에 없는 딸 산후 조리 해 주려고 한국에서 하던 일을 다 팽개치고 미국으로 왔다. 며칠을 지내는 동안 딸 옆에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되어 한국에 있는 재산을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와서 그 돈으로 집을 사서 딸의 식구와 함께 살았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그들은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기가 일쑤였다. 결국 그녀는 방을 얻어 따로 살게 되었다.
딸 하나 바라보고 살아오면서 그 딸을 위해 온 정성을 바쳤는데 지금 와서 딸에게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억울할까? 그것도 자기 돈으로 집을 사놓고 그 집에서 살지도 못하고 쫓겨난 신세가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딸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 딸 역시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엄마, 아버지가 없어서 더욱 소중한 엄마, 그런 엄마와 웬만하면 샤핑도 함께 다니고 한 집에서 재미있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는 딸의 마음도 몹시 아플 것 같다. 아무래도 남편이 있으니 혼자인 엄마만큼 가슴이 아프지는 않겠지만 어찌되었거나 기분 좋을 일은 아니다.
세상에 어디 억울한 일이 이뿐이랴! 한 세상 살다보면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사랑하는 만큼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신을 다독이지 않으면 가는 곳마다 상처투성이다. "그 딸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좀 불편하더라도 참아주었으면 좋으련만, 혼자 고생해 온 엄마를...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건 엄마된 우리의 입장일 뿐. 딸은 나름대로 자기만의 사연이 또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나를 추슬리지 않으면, 오히려 엄마와의 나쁜 관계 때문에 가슴 아파할 딸을 위해 기도하며 지금까지 고생해 온 삶의 마무리가 아름답게 되도록 끝까지 인내할 밖에. 이제 나 위해 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모습을 찾을 때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이 살아온 삶이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우리는 파괴된 자아상을 바로잡고 자존감을 회복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자각하므로 여러 상황에 부딪칠 때 올바른 자신의 응답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누구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거나 불행해 지는 타인 의존적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한평생 불안한 삶을 살수밖에 없다. 세상은 나를 행복하게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분의 품안을 누리기 전에 우리는 억울한 삶을 면할 길이 없다. 시편기자는 "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 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 139: 16-18)." 라고 고백 했다.
그리고 중년의 위기를 아름답게 성화시켜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날로 새로워져가는 속사람으로 살아가야할 것이다. 육체가 쇠하여지는 만큼 가슴 속에 사랑이 더욱 피어나고 삶의 지혜가 더해가는 아름다운 황혼을 누리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조차 올바른 자아상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쓸쓸한 이 가을에 하나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공부하던 딸은 미국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첫 아기를 낳았다. 하나 밖에 없는 딸 산후 조리 해 주려고 한국에서 하던 일을 다 팽개치고 미국으로 왔다. 며칠을 지내는 동안 딸 옆에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되어 한국에 있는 재산을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와서 그 돈으로 집을 사서 딸의 식구와 함께 살았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그들은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기가 일쑤였다. 결국 그녀는 방을 얻어 따로 살게 되었다.
딸 하나 바라보고 살아오면서 그 딸을 위해 온 정성을 바쳤는데 지금 와서 딸에게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억울할까? 그것도 자기 돈으로 집을 사놓고 그 집에서 살지도 못하고 쫓겨난 신세가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딸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 딸 역시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엄마, 아버지가 없어서 더욱 소중한 엄마, 그런 엄마와 웬만하면 샤핑도 함께 다니고 한 집에서 재미있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는 딸의 마음도 몹시 아플 것 같다. 아무래도 남편이 있으니 혼자인 엄마만큼 가슴이 아프지는 않겠지만 어찌되었거나 기분 좋을 일은 아니다.
세상에 어디 억울한 일이 이뿐이랴! 한 세상 살다보면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사랑하는 만큼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신을 다독이지 않으면 가는 곳마다 상처투성이다. "그 딸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좀 불편하더라도 참아주었으면 좋으련만, 혼자 고생해 온 엄마를...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건 엄마된 우리의 입장일 뿐. 딸은 나름대로 자기만의 사연이 또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나를 추슬리지 않으면, 오히려 엄마와의 나쁜 관계 때문에 가슴 아파할 딸을 위해 기도하며 지금까지 고생해 온 삶의 마무리가 아름답게 되도록 끝까지 인내할 밖에. 이제 나 위해 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모습을 찾을 때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이 살아온 삶이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우리는 파괴된 자아상을 바로잡고 자존감을 회복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자각하므로 여러 상황에 부딪칠 때 올바른 자신의 응답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누구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거나 불행해 지는 타인 의존적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한평생 불안한 삶을 살수밖에 없다. 세상은 나를 행복하게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분의 품안을 누리기 전에 우리는 억울한 삶을 면할 길이 없다. 시편기자는 "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 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 139: 16-18)." 라고 고백 했다.
그리고 중년의 위기를 아름답게 성화시켜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날로 새로워져가는 속사람으로 살아가야할 것이다. 육체가 쇠하여지는 만큼 가슴 속에 사랑이 더욱 피어나고 삶의 지혜가 더해가는 아름다운 황혼을 누리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조차 올바른 자아상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쓸쓸한 이 가을에 하나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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