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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할수록 말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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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645회 작성일 10-11-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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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는 모순의 집적이다. 우선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가 다르다. 쉬운 예로, 겉보기에 거드름 피우고 잘난 체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무의식은 열등감으로 꽉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취약한 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다 보니 오히려 거만하게 구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게, 말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처음으로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눈 사람은 프로이트다. 그 후 그의 수많은 이론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보다도 더 경이로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트 이후에 우린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그는 인간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지를 밝혀냈다.
그와 같은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관계가 있다. 바로 인간관계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지레짐작의 오류’다. 예를 들어, 내가 상대방에게 진짜 원하는 것은 A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무의식에 숨어 있을 때는 내가 정말 A를 원하는지 잘 알 수 없다. 덕분에 난 A를 원하면서도 정작 B를 원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당연히 B를 주게 되어 있다. 그럴 때 우린 어떻게 반응하는가?  우습게도 마치 상대방이 나의 기대를 저버린 것처럼 여긴다. 
세상에 그런 모순이 없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이 내 맘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날 상처 입히려고 일부러 심술궂게 군다고 여길 때도 있다. 당연히 원망과 분노하는 마음이 뒤를 잇게 마련이다.
그런 일은 친밀한 사이에서 더 자주 벌어진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린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의존한다. 그리고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내가 원하는 기대치를 채워 줘야 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곧바로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으로 건너뛰곤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한테 사납게 닦달을 당한 남편이 우울한 얼굴로 집에 온다. 마침 그날따라 아내가 아직 저녁 식사 준비를 덜 끝내 놓고 있어서 그를 기다리게 했다고 하자. 그는 전에 없이 “여자가 대체 집에서 뭘 하느라 저녁밥도 제때 못 챙기느냐” 고 화를 낸다. 하지만 그는 사실은 저녁 식사가 늦어서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아내가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한 것이다. 자기 표정만 봐도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써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태평한 아내가 그것 하나 눈치 못 채고 둔감하게 군다고 생각하니 괘씸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의 숨은 마음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남편의 마음을 지레짐작한다.
“그깟 저녁밥 좀 늦기로서니 화부터 내고 난리람!  뭐야, 이 남자가 벌써 나한테 싫증을 느끼는 거야?  아니, 그럼 난 뭐 매일같이 꽃노래 부르고 싶은 줄 아나 보지, 흥!”
이쯤 되면 아내 역시 기분이 나빠진다. 한참 후 남편이 뭐라고 말을 건네자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대꾸가 튀어나온다. 아내의 퉁명스러움에 이번에는 남편이 놀라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군. 왜 자기가 화를 내는 거야?  내가 오늘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위로는 못할망정. 그래, 이 여잔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거야. 돈이나 왕창 가져다 주면 좋아하겠지.”
아마도 이 두 사람이 서로를 비난하며 진짜 싸움으로 돌입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상대방이 되어 보기 전에는 그가 직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 이상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린 한편으론 상대방이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까지 다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따라서 상대방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먼저 내가 그런 모순에 빠져 있지 않은지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상대방이 알아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는지, 상대방 역시 나한테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다.
되풀이 말하지만, 우린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명확하게 알 길이 없다. 주로 상대방이 보내는 모호한 신호에 의지해 짐작해 볼 뿐이다. 친밀한 사이에서는 한 가지가 더 덧붙는다. 상대방에 대한 거부 불안이 가세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의존하고 바라는 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멋대로 읽는 오류가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정신과 용어로 ‘지레짐작의 오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경우,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과 기대의 변형일 뿐. 그런데도 우린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을 다 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두 번째 오류를 범한다. 오류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 경우 서로를 오해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친밀감이 높을수록 거부에 대한 불안도 크게 마련이다. 그래서 작은 신호에도 그것을 쉽게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 곧바로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앞서 등장한 남편과 아내가 그 좋은 예이다).
그런 잘못된 해석은 때때로 자신의 문제로 인해 더 굳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몹시 민감하다. 그때 생겨나는 지레짐작의 오류는 주로 자신에게 불리하고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간다. 자아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탓에 긍정적인 면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또한 우울한 사람은 쉽게 자기를 비난하는 쪽으로 주의를 집중한다. 불안강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불안감 때문에 더욱 위험한 쪽으로 상상을 부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배려받지도 존중받지도 못한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을 더욱 원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지레짐작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바람직하기는 자아를 존중하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의적인 판단에 근거해 상대방의 마음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잘못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런 다음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당연히 상대방이 나한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때로 상대방을 위한다고 한 행동이 오히려 부담을 줄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것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내 방식대로 지레짐작해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이 그것을 거절하면 날 거부한다고 여겨 원망하고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레짐작의 오류에만 빠지지 않아도 우린 인간관계를 좀 더 잘해 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가당착과 모순에 빠지는 존재인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꼭 필요하다. 그런 이해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우린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을 훨씬 더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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