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영혼의 돋보기 2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철학 영혼의 돋보기


 

Total 50건 2 페이지
철학 영혼의 돋보기 목록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다 그에게는 그에게 중요한 과학적인 발견들을 하게했던 날카로운 눈과 빠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그의 생각들을 결코 출판하지 않았다.그는 동물들을 좋아하고, 전쟁을 경멸했던 친절한 채식 주의자이었다. 그래도 그는 선진이고 치명적인 무기들을 발명하기 위해 군 엔지니어로서 움직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화가들 중의 1명이었다 그래도 그는 소수의 완료되었던 그림들만을 남겼다. * 예술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다빈치는 1452-1519의 사이에서 살았던 이탈리아의 예…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09-12-20 17:08 조회 3074 더보기
괘테를 만나다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파우스트(Faust)』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Faust)』   1. 줄거리  제1부에서는 학문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려는 파우스트가 지식의 무기력함에 절망하여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09-12-20 17:07 조회 3186 더보기
플라톤을 만나다 플라톤 (Platon ; BC 429?~BC 347)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형이상학의 수립자로서 서양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이다. 논리학·인식론·형이상학 등에 걸친 광범위하고 심오한 철학체계를 전개했으며, 특히 그의 모든 사상의 발전에는 윤리적 동기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성이 인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라야 한다는 이성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 따라서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성주의적 윤리학이다.   플라톤은 BC 428년경 아테네의…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09-12-20 14:03 조회 2200 더보기
미켈란젤로를 만나다미켈란젤로 < Michelangelo Buonarroti > (1475.3.6~1564.2.18)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건축가,시인. 카프레세 출생. 어려서 부터 그림에 뛰어나, 양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세 때에 기를란다요(Ghirlandajo)에게 입문하였고, 이듬해 조각가 베르톨도(Bertoldo di Giovanni:1420?∼91)에게로 옮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배우면서, 메디치가(家)의 고대 조각을 연구하였다. 그 때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09-12-19 23:52 조회 2062 더보기
도올의 일인시위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11-10-26 08:44 조회 2124 더보기
중세 철학 4편에서 소개한 보에티우스, 미지의 필자 디오니시우스, 에리우게나와 같은 일련의 철학자들이 4세기에 걸친 망각과 암흑의 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러한 노력은 여러 역사적 사건들에 파묻혀 소실되었다. 찰스 1세의 학문 장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그의 사후 여러 소봉건 국가로 분할되었으며, 교황청은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능했거나 부패하였고, 수도원은 이미 지방의 교육과 학문의 선도적인 지위를 상실하였다. 또한 몽고와 사라센, 노르만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학문과 문화의 폐절은 끝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거의 …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51 조회 3004 더보기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전개된 철학은 인간의 도덕적 문제에 집중된 철학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그의 삶이 그러한 문제에 집착한 까닭이기도 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철학이 그에게 무의미와 다를 바 없는 까닭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도덕철학은 철학의 어떤 특별한, 따로 분리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만물은 결국 도덕성에 귀착되며 따라서 만물은 인간 행위의 목적인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밝혀 준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지론이었다. 그는 도덕에 관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면서 인간의 지식의 본질, 신의 본…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49 조회 2369 더보기
아우구스티누스 2편 전편에 중세철학 1편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을 간략히 소개했었다. 2편에서는 그의 인식론을 다룰 생각이며 3편에서는 그의 실천론을 다룰 생각이다. 그의 인식론은 그가 그렇게 붙잡으려 노력하였던 올바른 철학의 성립과 무관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인식론은 그가 한 때 의지하였던 “인간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는 진리란 없다”는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1) 회의주의의 극복 아우구스티누스는 전편에 기술한 바와 같이 한동안 회의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에게 인간에 …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47 조회 2406 더보기
중세 철학은 한 사람의 기이한 믿음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는 철학사의 한 편을 뒤적이며 그 명민하고 정교한 체계와 서술에 압도되어 천년의 육중한 카테고리를 쫒고 있지만 실제 중세 철학을 조성한 사람은 철학적 언어에 능통한, 혹은 철학적으로 토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식민지의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하층민이었을 뿐 아니라 지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대부분의 권리와 대부분의 욕망과 대부분의 인간적 기쁨을 체념해야 했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신의 살아 있는 이유와 그 목록들을 찾아내기 어려운 불행한…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45 조회 2152 더보기
기원후 1세기와 3세기에 이르는 동안 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과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시도하는 동시에 여러 사상들과 교의(敎義)가 다양한 철학과 종교와 절충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플로티누스(Plotinus 204 ~ 270 A.D.)는 시대의 특별한 관심사를 만족시켜 줄 만한 철학적 교의가 없는, 혹은 너무나 많은 시대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그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여러 교단이 혼재된 채 흐르는 가운데 철학적 희망을 붙잡으려는 최후의 선지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 철학은 플로티누스에 이르러 최후의…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44 조회 2520 더보기
오늘날 우리는 회의주의를 현실 규범과 의미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시각을 지닌 이들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주의의 어원인 ‘skepsis'는 약간 다른 의미, 즉 검사 혹은 탐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로마철학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회의주의에 입각한 회의주의자란 질서나 상태를 부정하게 응시하고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이보다 그것이 진리인가 거짓인가 의심하는 자들을 지칭했었다. 그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세계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제안을 의심하며,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42 조회 2454 더보기
철학의 한 학파로서 스토아 학파는 고대의 뛰어난 지성인들 가운데 몇 명을 포함하고 있다. 제논(Zenon BC 335~263)이 스토아(현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stoic도 같은 뜻을 의미한다)에 세운 이 학파의 철학적 운동은 아테네에 있는 지성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후에 키케로, 세네카, 에피크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로마의 지식 운동가들을 발굴하게 되었다.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청년 시절 윤리적인 가르침, 특히 소크라테스의 용기 있는 죽음에 감명을 받아 철학적 삶을 삶의 목표로 삼은 인물이며 그리스 철학의 한 지…
작성자파슬리 작성일 10-08-03 15:41 조회 2763 더보기
[ 철학의 전환 ] 철학의 전환 또는 새로운 흐름은 대부분 역사적인 조건에 의해 야기되거나 조성되곤 하였다. 그리스의 철학은 한 세대의 거대한 발화 이후 급격히 정연한 학문으로부터 이탈하여 역사적 상황에 몸을 맡긴 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는 몰락하였으며 이 몰락은 곧바로 그리스 문명의 쇠퇴를 가져와 그리스의 여러 도시의 분열과 공동체 의식의 해체 및 시민 개개인의 고양된 정서-자신들의 사회 및 정치적인 운명을 조정하고 완성할 능력과 신념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의 상실을 가져왔다. 그리스 …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40 조회 1834 더보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학」에서도 목적의 요소를 강조하였다. 자연은 국가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의 하나의 고유한 기능을 부여해 준다고 그는 믿었다. 이 두 가지의 개념을 결합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국가란 자연의 피조물이며 따라서 인간도 자연적으로 정치적인 동물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를 밀접히 연관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사회 속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 자족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욕구도 갖지 않은 사람은 동물이거나 신(神)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39 조회 1695 더보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론은 그의 신념, 즉 인간을 포함한 자연 안에 있는 만물에게 성취하려는 분명한 ‘목적’과 수행하려는 기능이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그는 이렇게 첫 장을 서하였다. “모든 예술과 모든 학문, 또한 모든 행동과 추구는 선(善)을 지향한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윤리학의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이 지향하는 ‘선(善)’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은, 인간이란 선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37 조회 1788 더보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위계 질서 속에 무기체 및 동식물과 구별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켰다. 그는 물리학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존재하는 사물들 중에 어떤 것은 본성적으로 존재하며, 어떤 것은 다른 원인들로부터 존재한다. 동물들과 동물의 신체 각 부분들은 '본성적으로' 존재한다. 식물들과 단순 물질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질서 속에는 우선 무엇보다도 단순 물질과 식물 및 동물들이 존재한다. 자연 속에서 그들이 갖는 의미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은 본성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 사물들과 다른 특징을 보여 주는데, 그것…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36 조회 1889 더보기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제목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른바 "제 1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은 본래적으로 앎을 갈망한다"는 명제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이 본유적 갈망은 단순히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 혹은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 알려고 하는 갈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실용적 동기들 이외에도 인간에게는 단순히 앎 그 자체를 위하여 어떤 종류의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려는 갈망이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감관(感官)들이 그 자체로 누리는 기쁨이 …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35 조회 1890 더보기
아리스토텔레스를 머리에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갖게되는 인상(印象)은 형이상학보다 자연과학, 특히 논리학에 대한 선명한 어조가 아닌가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식 논리학을 창안하였으며, 개별 과학들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을 최초로 구상하였던 인물이며, 논리학과 과학을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취급한 철학자였다. 그는 논리학을, 어떤 과학이 내포하는 문제를 분석할 때 그것들을 적절히 언표(言表)할 수 있는 도구(organon)라고 생각했던 듯 싶다. 물론 형식 논리는 인간의 사유 형식들과 관련되지만, 논리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34 조회 1945 더보기
아리스토텔레스는 트라키아의 복동 해변에 있는 스타게이라라는 작은 도시에서 기원전 384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의 전의(典醫)였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아스클레피오스의 가문들은 의학 및 해부의 기술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교육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스토텔레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며,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스토텔레스스토텔레스의 생물학과 과학 일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싹틀 수 있는 배양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아리스토텔레스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33 조회 1782 더보기
허무의 씨앗을 뿌린 이들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까지 아테네를 중심으로 출현했던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을 지식인이라 자처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 그리고 트라시마쿠스라는 이방인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각각 다른 장으로 구성하려 했으나 그들의 철학적 내용이라는 것을 서양철학사의 각 단편으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그들을 하나의 단편으로 묶어 함께 기술하게 되었다.    프로타고라스는 트라키아로부터, 고르기아스는 시실리로부터, 트라시마쿠스는 켈세돈으로부터 온 이방인이었…
작성자뽕킴 작성일 10-08-03 15:17 조회 1278 더보기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