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황제 알폰소 카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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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2,416회 작성일 10-09-07 11:17본문
알폰소 카포네
“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만든 이 세상의 유령일 뿐이다.”
1920~30년대 시카고의 갱스터 두목. 뺨에 흉터가 있어 스카페이스 Scarface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나폴리계로 뉴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소년 갱단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1920년 시카고로 옮겨 밀주, 밀수, 도박 등의 불법산업으로 순식간에 돈을 벌어 시카고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1인자가 되었다. 1929년 2월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 등 수많은 폭력·살인 사건을 배후에서 지휘하였다. 1932년 탈세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어 조용히 살다가 사망하였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밤의 황제”
오늘날까지도 그의 이름은 비윤리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성공적이며 대중적인 갱스터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카포네(Alphonso Capone, 1899~1947, 미국)는 시카고를 지하세계의 수도로 발전시켰으며, 모든 불법적인 방식을 동원해 미국에 많은 물품들을 밀반입했다.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마피아 두목인 그는 범죄 조직을 하나로 통합시켰다.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하여 FBI의 지명수배 명단에 올랐다. 그의 눈부신 전성기(1913~1931) 동안 카포네는 뉴욕에서 유명세를 타는 모든 경쟁자들을 살해하거나 제거했다. 그 중에는 덧치 슐츠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카포네는 수억 달러의 수익을, 그것도 현찰로 벌었지만 세금을 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공정한 것은 카포네는 그가 제거한 적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침대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오동통한 얼굴에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갱스터는 (금지된) 주류, 매춘 그리고 (금지된) 도박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면서 수입을 올렸다. 또한 부유한 상인들에게는 그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보호비’를 강요했다. 카포네는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쟁자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1929년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과 같은 참극이 벌어졌으며 그 와중에 7명의 동료를 기관총의 화염 속에서 잃기도 했다. 매혹적인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유명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당시 경찰과 사법당국은 알 카포네의 어떠한 살인 혐의도 증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31년 그는 탈세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 받았으며, 5년 동안 무시무시한 섬인 알카트래즈 감옥의 독방에 투옥되었다. 하지만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카포네는 출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28년부터 매독에 감염되었다. 그 당시에는 페니실린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라 그의 병은 완치될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려했던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다. 성병의 합병증으로 중풍에 걸린 것이다. 그것은 카포네의 모든 원동력과 지성을 앗아갔으며 그때까지 그가 누려왔던 즐거움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마이애미 플로리다의 화려한 대저택에서 카포네는 우울하게 마지막 말을 남기며 눈을 감았다.
“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만든 이 세상의 유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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