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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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368회 작성일 10-08-12 10:26본문
'세기의 로맨스'로 불렸던 영국 에드워드8세(윈저 공작) 전 국왕과 월리스 심슨 부인이 열애할 당시 영국 수사기관이 작성한 비밀 사찰 보고서들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영국 공문서관리소는 수사기관인 특수국(Special Branch)이 두 사람이 열애하던 1930년대 중반에 작성한 보고서들을 포함해 심슨 부인 관련 문서들의 비밀을 해제했다.
이에 따르면 에드워드 국왕은 미국인 이혼녀인 심슨 부인과의 사랑으로 왕위 포기 압력을 받게된 1936년 스탠리 볼드윈 당시 총리에게 "'귀천상혼'(貴賤相婚·morganatic marriage·결혼은 하되 신분은 결혼 전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하겠으니 왕위에 계속 남아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볼드윈 총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에드워드왕은 라디오연설을 통해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고백,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려 했다.
그러나 비밀 각료회의에서는 왕이 당시 반대 세력이었던 윈스턴 처칠 등 야당력의 지원을 얻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고, 볼드윈 총리는 왕의 라디오 연설도 반대, 무산시켰다.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대국민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였다.
공문서보관소의 자문위원인 수전 윌리엄스는 각료들은 윈스턴 처칠이 왕의 인기를 이용해 정당을 창당, 정부에 도전하지 않을까 겁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 2년간 자의반 타의반의 망명 생활을 한 에드워드 전 국왕은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동생 조지6세 국왕에게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조지6세는 "형이 돌아오면 헌법적 갈등이 생긴다. 만약 내 허락없이 돌아오면 생활비 지원을 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당시 수사국 요원들은 심슨 부인의 방탕한 행적 등 흠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심슨 부인을 나찌의 스파이, 유태인 등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도 여러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접촉 결과 보고서는 심슨 부인에 대해 "매우 성실" "스스로 일을 하려 하는 여인" 등 좋은 평판을 전하고 있다. 심슨 부인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심슨 부인을 알게 되면 에드워드 왕이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는지를 금방 알게 된다"고 말했다.
수사국 요원들은 심슨 부인의 전 남편인 어니스트 심슨도 만났다. 어니스트 심슨은 "에드워드 왕이 1936년초 아내와 사랑에 빠졌으며 결혼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충격을 받았지만 결국 이혼에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영국관리들에게 내 아내를 설득시켜서 에드워드 왕의 왕위를 지키는게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아내의 심리를 알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내 아내는 에드워드 왕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누군가 고위층이 아내를 만나 설득하면 넘어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에드워드 전 국왕은 36세때인 1930년 한 파티장에서 두 살 연하 유부녀인 심슨 부인을 만났다. 그는 1936년 왕위에 오른뒤 심슨부인의 남편에게 이혼을 요청하고 심슨 부인과 결혼하려 했다. 그러나 이혼을 금하고 있는 영국 성공회 수장으로서의 신분 때문에 영국의 헌법위기 논쟁이 발생했고, 결국 왕위에서 물러난 1937년 로이어밸리의 한 성에서 불과 16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심슨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1939년 잠깐 영국에 들어 올 수 있었으며 나머지 여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내다 1972년 세상을 떠났다. 조지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드워드8세가 세상을 떠나자 윈저 공작부인(심슨 부인)을 버킹엄궁으로 불러 살도록 허락했다.
이에 따르면 에드워드 국왕은 미국인 이혼녀인 심슨 부인과의 사랑으로 왕위 포기 압력을 받게된 1936년 스탠리 볼드윈 당시 총리에게 "'귀천상혼'(貴賤相婚·morganatic marriage·결혼은 하되 신분은 결혼 전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하겠으니 왕위에 계속 남아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볼드윈 총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에드워드왕은 라디오연설을 통해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고백,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려 했다.
그러나 비밀 각료회의에서는 왕이 당시 반대 세력이었던 윈스턴 처칠 등 야당력의 지원을 얻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고, 볼드윈 총리는 왕의 라디오 연설도 반대, 무산시켰다.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대국민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였다.
공문서보관소의 자문위원인 수전 윌리엄스는 각료들은 윈스턴 처칠이 왕의 인기를 이용해 정당을 창당, 정부에 도전하지 않을까 겁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 2년간 자의반 타의반의 망명 생활을 한 에드워드 전 국왕은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동생 조지6세 국왕에게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조지6세는 "형이 돌아오면 헌법적 갈등이 생긴다. 만약 내 허락없이 돌아오면 생활비 지원을 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당시 수사국 요원들은 심슨 부인의 방탕한 행적 등 흠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심슨 부인을 나찌의 스파이, 유태인 등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도 여러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접촉 결과 보고서는 심슨 부인에 대해 "매우 성실" "스스로 일을 하려 하는 여인" 등 좋은 평판을 전하고 있다. 심슨 부인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심슨 부인을 알게 되면 에드워드 왕이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는지를 금방 알게 된다"고 말했다.
수사국 요원들은 심슨 부인의 전 남편인 어니스트 심슨도 만났다. 어니스트 심슨은 "에드워드 왕이 1936년초 아내와 사랑에 빠졌으며 결혼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충격을 받았지만 결국 이혼에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영국관리들에게 내 아내를 설득시켜서 에드워드 왕의 왕위를 지키는게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아내의 심리를 알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내 아내는 에드워드 왕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누군가 고위층이 아내를 만나 설득하면 넘어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에드워드 전 국왕은 36세때인 1930년 한 파티장에서 두 살 연하 유부녀인 심슨 부인을 만났다. 그는 1936년 왕위에 오른뒤 심슨부인의 남편에게 이혼을 요청하고 심슨 부인과 결혼하려 했다. 그러나 이혼을 금하고 있는 영국 성공회 수장으로서의 신분 때문에 영국의 헌법위기 논쟁이 발생했고, 결국 왕위에서 물러난 1937년 로이어밸리의 한 성에서 불과 16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심슨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1939년 잠깐 영국에 들어 올 수 있었으며 나머지 여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내다 1972년 세상을 떠났다. 조지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드워드8세가 세상을 떠나자 윈저 공작부인(심슨 부인)을 버킹엄궁으로 불러 살도록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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