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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게 일군 할인마트 신화 칼 알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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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3,490회 작성일 10-09-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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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고의 부자는 어떤 사람일까. 독일의 대표 산업인 자동차나 전기전자 관련 인물을 떠올렸다면, 틀렸다. 미국 빌게이츠 같은 정보기술(IT)분야의 인물도, 인도나 우리나라처럼 재벌기업 총수도 아니다.

●독일의 제1갑부는 할인마트 체인 알디(Aldi)의 창업주 칼 알브레히트(90)다. 칼이 동생 테오 알브레히트(1922~2010)와 함께 세운 알디는 독일의'국민 할인마트'라고 보면 된다. 독일 만이 아니라 전 세계 20개국에 9,400여개 점포가 뻗어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35억달러(약 27조3,300억원). 세계 열 번째 부자다.

가격은 최저, 품질은 최고


칼과 테오는 에센에서 태어났다. 제빵사였던 아버지가 1913년 에센 외곽에 차린 작은 식료품점이 알디의 시작이다. 고급 식품가게에서 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칼은 테오와 함께 46년 가게를 물려받았다. 형제의 가게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았고, 60년에는 점포가 300개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이듬해 알디(Aldi)라는 상호를 내걸었다. 알브레히트 디스카운트(Albrecht Discount)의 줄임말이었다.

 
상호 작명에서 알 수 있듯 알디의 경쟁력은 초저가 전략이었다. "저렴한 가격이 알디의 광고다"고 칼이 말할 정도. 지금도 호밀빵 한 덩이가 1유로(약 1,520원)가 채 안되고 소고기 1파운드(453g)는 1.79유로(약 2,720원)다.

그렇다고 가격이 전부는 아니다. 알디가 모든 계층에서 폭넓게 사랑 받는 것은 품질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 독일 정부가 매달 발행하는 제품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알디 제품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 프록터앤갬블(P&G)이나 유니레버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싸고 훌륭한 상품이라는 이상적인 조화가 가능한 것은 전체 상품의 95%가 알디의 자체브랜드 상품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비용이 없고, 상품의 질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다. 알디는 상품에서 작은 의심만 생겨도 불시에 공급처를 방문해 경위를 파악할 정도로 상품 공급자를 까다롭게 관리하기로도 유명하다.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비용절감. 점포는 가능한 작게 만들고 직원도 최소 인원만 뽑는데다 광고도 하지 않는다. 매장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물건은 배달 온 상자 그대로 진열돼 있다. 미국 월마트는 상품 종류가 5만개에 달하지만 알디는 같은 품목은 2~3개 종류만 취급해 상품 수를 1,000여개로 유지한다.

물론 부작용도 따른다. 직원수가 적다 보니 초과 근무가 빈번해 직원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또 알디의 확장에 소규모 소매점들의 설 자리가 줄고, 낙농업자들은 우유 가격 급락으로 생존을 위협받는다. 제3세계에서 수입되는 싼 공산품들은 노동 착취의 결과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베일에 싸인 은둔형 경영자

매장에서 담배를 파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갈렸던 형제는 66년 회사를 둘로 분리했다. 독일 남부 지역은 칼의 알디 사우쓰(Aldi South)가, 북부 지역은 테오의 알디 노쓰(Aldi North)가 맡게 된 것. 70년대부터 시작한 해외 진출 때도 나라를 둘로 나눴다. 칼은 미국 스위스 호주 등지에, 테오는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등에 진출했다. 그렇다고 둘이 완전히 갈라선 건 아니었다. 법적으로는 알디 사우쓰와 노쓰가 완전히 분리돼 있지만, 운용 전략은 이사회에서 함께 짜고 물건도 함께 구매하고 있다.

하지만 알브레히트 형제는 그야말로 '꼭꼭' 숨어있다. 한 번도 언론 등 공식석상에 나타난 적이 없고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사진도 어록도 거의 없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이들처럼 철저히 숨어있는 기업가는 없다"고 평할 정도.

은둔에는 이유가 있다. 1950~60년대 형제가 부를 쌓아 점포를 늘릴 수 있었던 기반은 가난 덕분이었다. 2차 대전이후 터키나 이탈리아 등에서 서독으로 온 이주노동자 등 가난한 이들의 구매를 통해 부자가 됐던 것이다. 그래서 알베르히트 가족들은 알디가 세계적 할인마트 체인이 된 후에도 절대 부를 과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71년에는 테오가 납치돼 몸값 467만달러(약 54억원)를 치르고 17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는데 그 충격으로 형제의 은둔성향은 더 강해졌다고 한다.

지난 7월24일 동생 테오가 오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장례식도 그들다웠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 서른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복잡한 절차 없이 조용히 치렀고, 장례식이 다 끝난 후에야 회사측이 테오의 사망을 발표했다.

형제는 93년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이사회도 떠났다. 그들의 자녀 등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테오는 사망 전까지 그리고 칼은 아직도 고향인 에센에서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다. 형제는 장학사업과 암 연구에 거액을 지원해왔으며, CEO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는 등 억만장자 기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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