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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와 잔느 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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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4,197회 작성일 10-10-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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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시인의 수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줄 만한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샤를르 보들레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뿐만 아니라 '상징주의'라는 문예사조의 문을 열어 20세기 세계문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가 한 사랑은 어쩌면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보들레르는 자기를 끔찍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태어난 지 5년 10개월이 되었을 때 돌아가시자 큰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를 덧낸 것은 금방 재혼을 한 젊은 어머니였다. 보들레르는 고등학생이 되자 반항심이 생겨 걸핏하면 학교 규율을 어기는 문제아가 된다. 주변에는 친구 하나 없었고 관심을 가져 주는 선생님도 없었다. 비행청소년이 되어 밤거리를 헤매 다니다가 퇴학당하지만 독학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 법과대학에 들어간다.

그러나 의붓아버지의 기대는 계속 이어지지 못한다. 공부는 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자 의붓아버지는 정신을 차리라고 먼 인도로 보낸다. 배가 풍랑을 만나 들르게 된 섬에서 3주쯤 있다가 고집을 부려 프랑스로 되돌아오자 보들레르는 그때부터 '내놓은 자식'이 된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 등 모든 주변 사람이 그를 외면했다. 그에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탈출구는 바로 시였다.

이 무렵 보들레르는 극단에서 단역을 맡고 있는 잔느 뒤발이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그녀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태어난 흑백혼혈 여성으로, 알고 보니 밤거리 여인이었다. 보들레르는 육감적인 이 여인에게 완전히 반해 구애를 하지만 뒤발은 사랑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속만 끓게 한다. 그녀가 원한 것은 보들레르의 사랑이 아니라 돈이었다. 교묘한 방법으로 보들레르의 구애를 거절하면서 뒤발은 재산을 챙긴다.

보들레르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 10만 프랑 가운데 2년 사이 4만 4천 5백 프랑을 탕진하는데, 본인이 흥청망청 쓴 것도 많았지만 뒤발에게 상당액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었다. 의붓아버지와 어머니는 '저 녀석 저대로 두었다가는 유산을 몽땅 날려 버리겠다'는 불안감에 소송을 제기했고 그 바람에 보들레르는 한정치산자 선고를 받는다. 그 뒤로는 유산의 극히 일부분만을 쓸 수 있게 되어 보들레르는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살게 된다.

보들레르가 사랑했던 여인은 한두 명이 아니었지만 거의 평생을 지속한 사랑은 악마 같은 여인 잔느 뒤발이었다. 보들레르는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일컬어지던 사바티에 부인에게 구애의 편지를 계속 보내다가 부인이 감동하여 그의 사랑에 응하자 그 시점에서 절교해 버린다. 여배우 마리 도브룅과 사귀면서 시적 영감을 얻지만 연인 관계로는 발전하지 않는다. 뒤발에 대한 사랑만이 헌신적이었고 전폭적이었다.

30대에 중풍이 올 만큼 방탕한 생활을 하는 뒤발을 보들레르는 광적으로 사랑하며 구애의 시를 연이어 바친다. 마침내 40대에 들어 뒤발이 입원하게 되자 보들레르는 병원비를 대고 그녀를 돌볼 간병인까지 구해 준다. 보들레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는 어머니한테 쓴 편지가 증명하고 있다.

이 여인은 나의 유일한 위안이며 쾌락이고 친구입니다. 갖가지 파란을 겪으면서도 이별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물건이나 경치를 보면 그 여인을 연상하게 되어 제 스스로 놀라는 것입니다. 나는 왜 그녀와 함께 이 물건을 사지 못하고 저 경치를 그녀와 함께 보지 못하는가 한탄하는 것입니다.

뒤발은 보들레르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돈을 타내려 했기 때문에 시인은 한 시각도 예술가로서 마음의 안정을 누릴 수 없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사랑이었다.

어느 날 보들레르의 눈앞에서 사라진 뒤발이 중풍으로 더 고생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요양원 침대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파리에 떠돈다. 소문을 들은 바로 그 이후부터 보들레르의 시인으로서의 생명도 끝난다. 사랑하고 증오할 대상을 잃어버린 시인은 산책길에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고 실어증까지 와 병원에서 1년여를 고생하다 사망한다. 시인의 나이 겨우 46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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