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게이블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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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4,251회 작성일 10-10-19 16:46본문
자기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 하면 청혼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세계 영화사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을 맡았던 클라크 게이블은 할리우드에서 30년 동안이나 인기를 누렸던 명배우였다. 멋진 콧수염과 훤칠한 키, 여성을 유혹하는 능글맞은 성격, 눈빛 속에 숨어 있는 야망과 패기. 뭇 남성은 그를 부러워했고 뭇 여성은 그를 좋아했다. 서른세 살 나이에 찍은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여배우들과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염문도 많이 뿌렸지만 결혼식을 올릴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평생 할리우드의 미인들 곁에 둘러싸여 살다 간 행복한 인생이었을까?
광부인 아버지는 아내가 게이블을 낳은 지 7개월 만에 죽자 얼마 안 되어 재혼하였다. 아들이 걸음마를 막 시작한 두 살 때였다. 생모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게이블은 새엄마의 신경질도 지독한 가난도 지겹기만 했다. 그가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밴드부에서 나팔을 부는 데 낙을 붙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백화점 점원, 신문 보급소 사환, 전화 설치공 등을 했지만 배고픔조차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떠돌이가 되었다. 달리는 화물열차에 뛰어올라 마음 내키는 곳에 내려 타이어 공장 일이건 목재인부 일이건 며칠 하다가 훌쩍 기차를 타고…. 몇 년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
1923년 크리스마스였다. 기차가 삼림이 울창한 로키산맥을 달리는데 황혼이 지고 이윽고 밤이 왔다. 그 밤에 그와 친구가 지니고 있던 것은 콩 통조림 하나와 담배 두 개비가 전부였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데 우리 저녁 식사가 콩 통조림 하나라니 하느님도 무심하시네.”
친구의 말에 게이블은 이렇게 말한다.
“다 자업자득이지 뭐. 난 10년 뒤에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만찬을 즐길 거야. 두고 봐.”
이 말을 한 게이블은 친구한테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열차 틈새 바깥으로는 차가운 달빛 아래 나무들뿐. 그는 그때 굳게 결심한다. 내 이제부터는 인생을 이렇게 탕진하지 않으리라고.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리라고. 그 결심은 지방을 순회하는 작은 극단의 심부름꾼 노릇을 할 때도, 단역을 맡았을 때도,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시대의 배우들은 결혼을 여러 차례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게이블도 다섯 번이나 결혼한다. 극단에서 만난 배우 프랑스 드루프라는 게이블이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실망해 청혼을 거절한다. 여성 연출가 조세핀 딜론은 14세 연상으로, 게이블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선생이었는데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게이블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여성에게는 금방 마음을 주는 사나이였다. 17세 연상의 리어 랭험 부인은 사교계의 여왕으로서 무명의 게이블을 출세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녀가 게이블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유명감독의 영화 출연에도 다리 역할을 하자 게이블은 그만 마음이 흔들려 두번째 결혼을 한다. <바운티 호의 반란>이 대성공을 거두자 게이블 주변에는 여성들이 몰려든다. 물론 촬영장에서 파트너로 만나는 것이었지만 17세 연상의 아내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래서 다시 이혼.
인기 여배우 캐롤 롬바드와의 결혼은 3년 만에 끝난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겨 있던 게이블은 이를 이겨 내고자 제2차 대전 당시 공군에 입대하여 훈장을 받고 소령까지 진급한다. 전쟁이 끝난 뒤 할리우드로 돌아온 게이블은 <모감보>, <붉은 먼지> 등에서 원숙한 연기력을 보여 준다. 왕년의 대스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전 부인이었던 실러 아실레와의 네번째 결혼도 불행하게 끝나고 만다. 전혀 가정적이지 않은 아내는 늘 집 바깥에 있는 것이었다.
케이 스프렉스와의 결혼으로 비로소 평온한 가정의 행복을 만끽하게 되었으나 심장마비가 덮쳐 게이블은 예순을 맞기 직전에 세상을 뜬다. 유일한 아들 존 게이블이 그의 사망 4개월 후에 태어났으므로 그는 생전에 단 한 번도 자식을 안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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