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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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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313회 작성일 10-08-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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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가부장권의 붕괴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저녁 식사 때 아버지가 독상을 받고 자식들이 그 다음에 밥을 먹은 뒤 어머니는 부엌에서 남은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는 얘기는 이제 아득히 먼 옛날의 전설일 뿐이다. 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신문을 보는 동안 어머니가 아버지 발을 씻어주던 한여름의 풍경은 우리 기억 속에 박제처럼 남아 희미하게 퇴색되고 있다. 요즘 남편은 이사할 때 애완견을 품에 안고 이삿짐 트럭 앞자리에 잽싸게 앉는다는 우스개가 상징하듯 대부분의 남편이 집안에서 따돌림 당할 것을 걱정할 정도로 '참담한' 위치에 내몰려 있다. 이와 같은 가부장권의 추락에 대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울분을 터뜨리며 "아, 옛날이여~"를 되뇌지는 않을까. 그러려니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2004년 한국의 기혼 남성들은 과거 가부장권이 지배하던 시절의 아버지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가장은 '책임감만 많고 지위는 추락했다'는 불평 섞인 넋두리를 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가정에서 가장의 지위가 낮아짐과 동시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중압감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해방되어 실제로는 '해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는 [뉴스메이커]가 창간 12주년을 맞아 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2004년 한국가정 가부장권의 변화'에 대한 기혼 남녀들의 의식과 생활태도 조사에서 드러났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20세 이상 기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5월 19일부터 24일까지 설문조사를 해 분석한 결과다(95% 신뢰 수준에서 오차범위 ±3.1%포인트). 이에 따르면 우리 나라 가정에서 가장의 지위는 과거에 비해 낮아졌으며(70.7%) 가장의 책임도 적어진 것(54.7%)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응답자 절반 이상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가장의 지위가 낮아진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의견이 52.1%,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은 45.0%였으며, 책임감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란 평가가 56.9%로 41.3%의 반대 의견보다 우세했다. 20세 이상 기혼남녀 1,000명 대상 이런 변화는 남녀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우리나라 기혼남녀는 가부장권의 쇠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결과로 과거 성장기 자신의 아버지보다 지위가 낮아지고, 책임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한 38.8%의 응답자 중에서 아버지보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51.8%, 아버지보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25.4%로 행복하다는 응답이 2배를 넘었다. 이는 권위주의 문화가 퇴조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거 가부장권을 중심으로 유지되던 전통적인 가족문화가 사라지고, 가족 구성원이 평등하면서도 책임을 분담하는 새로운 가족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안병철 교수는 "가장의 지위와 책임이 변화하는 새로운 트렌드는 양성평등시대를 맞아 여성의 결정권 증대, 남녀 역할분담에 따른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이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기혼 남성들은 전통적 가부장권을 일부 잃는 대신 가정에서 어느 정도 짐을 벗고 행복을 찾았다"고 말했다.

'가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경제적 부양자'라는 대답이 47.0%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아버지 구실'이 35.5%였으며, 남편의 역할은 12.5%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도 남녀간에 차이가 없었는데, 남편 역할에 대해서만 여성의 15.3%가 기대한다고 대답한 반면, 남성은 9.5%만 중요하다고 응답하여 차이가 있었다. 이런 현상은 경제적 부양의무를 제외하고는 아버지의 의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며, 특히 가장으로서 가장 떳떳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37.6%가 "자녀의 교육과 진로에 도움을 주었을 때"라고 대답하여, "직장에서 승진이나 사업에 성공했을 때"라는 응답(25.5%)보다 12.1%포인트 많았다. 이런 결과는 남녀 모두 비슷해서 자녀 중심의 가정문화가 보편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가장의 역할은 경제적 부양 47.0% 또한 주부 취업과 관련한 설문에서도 주부의 취업을 바라지 않거나 퇴직을 바라는 이유로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드는 경우가 맞벌이 부부의 경우 39.3%, 전업 주부 가정의 경우 32.6%로 가장 많았다. 이를 조사한 현대리서치연구소 염동훈 이사(사회학 박사)는 "결국 우리 나라의 가족은 '가장의, 가장에 의한, 가장을 위한' 가부장 문화에서 자녀 중심의 문화로 변하고 있으며, 서구의 부부중심 문화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나라 남성들은 부인의 경제활동에 비교적 긍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483명의 남성 응답자 중 부인이 현재 취업중이라는 응답은 41.3%로 기혼 남성 10명 중 4명이 맞벌이 상태였다. 맞벌이 부부 중 아내가 계속 직장에 다니기 바라는 남성은 80.1%로 대부분이 아내의 직장생활에 긍정적이었다. 이는 현재 취업중인 기혼 여성의 80.7%가 자신의 취업에 남편이 긍정적일 것이라 응답하여 남녀간에 차이가 없었다. 또한 현재 전업주부의 남편들도 아내가 원할 경우 직장을 갖길 바란다는 응답이 59.8%로 10명 중 6명이 찬성하고 있었으며, 전업주부의 60.9%도 남편이 자신의 취업을 원할 것이라고 응답해 동일한 수준이었다.

또한 현재 맞벌이 상태의 남성들은 아내가 직장 일로 출장이나 야근을 할 경우에도 개의치 않고 아내가 "알아서 하게 한다"는 의견이 62.9%로 만류한다는 의견 29.2% 보다 훨씬 많았고, 현재 취업중인 여성들 55.5%도 남편이 "알아서 하게 할 것이다"라고 예상해 32.3%인 "가능한 한 만류할 것이다"라는 응답보다 많아 남녀간에 이견이 없었다. 직장의 회식에 대해 물었을 때는 긍정적인 대답이 더욱 많아 아내 직장의 회식 문제는 아내에게 일임한다는 응답이 76.8%였고 적극 권한다는 응답도 17.7%로 95%에 가까운 맞벌이 남편이 아내의 직장생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보다 승진이나 출세가 빠를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67.0%의 여성이 진심으로 축하해 줄 것이라 응답한 반면 남성은 80.8%가 진심으로 축하해 줄 것이라고 응답하였고, 자존심이 상할 것이라는 응답은 여성의 경우 28.7%였으나, 남성의 경우에는 19.2%로 차이가 컸다.

현대리서치연구소는 "남성은 실제 상황이 아니란 점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전제했을 것이고, 여성은 남편에 대한 예민한 감성을 전제했을 것이다"라며 "위의 모든 경우가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실제와는 차이가 있겠으나 아내의 직장 생활을 긍정적으로 봄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분담하려는 합리적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사 분담은 가족과 가까워질 수 있는 즐거운 일이다' 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아내의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찬성한다는 점에서 남성들의 가사 분담에 대한 의견과 실태를 묻는 질문에 483명의 남성 응답자 중 58.5%가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고 응답하여 가장 많았으며,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것 같다"는 수동적 자세는 30.1% 그리고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거부 의향자는 10.7%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실제 가사분담 정도를 측정한 질문에서 남성들의 가사분담 지수를 "전혀 하지 않는 경우"를 1점 "항상 하고 있는 경우"를 5점으로 해서 측정하니 평균 2.8점으로 추산되었고, 남성들이 가장 많이 분담하는 일은 "공과금 납부 및 관공서 민원관련 업무"로 3.1점이었으며, "장보기와 쇼핑" "재산증식 정보수집과 운영"이 각각 2.9점, "식사준비와 설거지"가 2.8점이며, "육아와 자녀 학습지도"는 2.4점으로 분담 6개 항목 중 가장 낮았다. 이에 대해 21세기가족문화연구소 이미선 소장(이학박사)은 "남편들의 가사분담은 의식과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며 "남편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할 때 취업주부라면 타당성이 있으나 전업주부는 타당성이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양성평등을 내세워 가사를 분담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족문화가 부권 중심에서 자녀 중심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휴일에 가장 우선하는 일로 "자녀나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응답한 남성이 절반 이상이었으며,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느낄 때는 "자녀의 교육과 진로에 도움을 주었을 때"라는 응답이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사업에 성공했을 때" 보다도 높았다. 이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우리 나라 가정도 세계의 가정문화 추세를 뒤쫓고 있음을 드러내는 결과다.

결국 우리 사회는 남성 위주의 권위적 사회로부터 양성 평등의 민주적 사회로 변화하고 있으며 가정문화도 과거 전통적인 가부장 중심의 문화로부터 가족 중심 문화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남성들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과거 자신의 아버지보다 행복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 형태가 전통적 확대가족으로부터 핵가족 혹은 다양한 유형의 가족으로 바뀌면서 전통적인 가부장 중심 문화는 쇠퇴하고 있으나, 아직 서구적인 부부중심의 실질적 핵가족 문화는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부 김순옥 교수(가정관리학회장)는 "자녀중심 가족문화는 가족내 평등의식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면서 한편으로는 "핵가족 시대의 현상으로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분가하여 독자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려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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