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브래디 전 백악관 대변인(73)이 4일(현지 시각)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때 머리에 총상을 입고 장애인이 됐다. 1964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1980년 미국 대선에서 레이건 후보 선대위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레이건 취임과 함께 백악관 대변인으로 입성했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 출범 80여일 만인 1981년 3월 30일 일어난 대통령 저격 사건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범인인 정신병자 존 힝클리가 발사한 총알이 브래디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심장에서 12㎝ 떨어진 부위에 총상을 입었으나 회복됐다. 그러나 브래디는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우뇌 손상을 입어 신체 왼쪽 기능이 마비되고, 일부 기억력·언어 장애까지 안게 됐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브래디는 부인 사라와 함께 법으로 총기 소지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며, 미국 내 총기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됐다. 1993년 11월 30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총기 판매 규정을 강화한 '브래디 법안(案)'에 서명할 때, 대통령 옆에는 휠체어에 앉은 그가 있었다. 브래디는 총기 반대 운동 외에도 전국 장애인 협회 회장, 두부(頭部) 손상 환자 재단 대변인 등을 맡아 장애인 권익 향상에 노력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당적(黨籍)에 관계없이 그를 극진히 예우했다. 총상을 입은 뒤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불가능했지만, 레이건 정부는 끝까지 그의 대변인직을 유지했다. 민주당 정부 때도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6년과 2000년 두 번이나 최고 권위 훈장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백악관 기자 브리핑 장소 이름도 '제임스 브래디 뉴스 브리핑룸'으로 바꿨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과 역대 백악관 대변인 11명은 이날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비극에 직면했음에도,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한 공복(公僕)을 잃었다"며 대선배를 기렸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