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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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744회 작성일 10-08-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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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고대 때부터 많은 종교와... 한때 기독교 세계의 학문과 사상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집트는 육백팔십년 아라비아 반도에서 쳐들어온 이슬람 군대에 정복당한 뒤로 지금까지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으며 전체 국민의 구십오 퍼센트 이상이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신자)이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집트에서는 성년이 되었는데도 혼인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은 매우 힘들다. 혼인 적령기에 달한 남자가 몸에 장애가 있거나 경제 능력이 없어 혼인하지 못하는 수는 있다. 그러나 특별한 까닭 없이 독신이 좋다고 해서 혼인하지 않고 사는 것을 이슬람교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한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외국인 독신자나 노총각, 잠시 식구들과 헤어져 있는 사람들 또한 주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힘들다.
꼭 해야만 하는 혼인
이슬람교는 남녀가 성년이 되면 반드시... 이집트에서 잘 알고 지냈던 어떤 한국 사람은 독신을 고집하는 오십대 중반의 신체가 건강한 이였다. 그이는 독신이라는 까닭으로 여러 차례 불편함과 곤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아파트를 구할 때 마음에 들어 곧 계약을 체결하려 하면 집주인이 "당신 혼인했느냐", "당신 혼자 살 것이냐"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혼인하지 않았다. 혼자 살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그때까지 웃던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 "당신과는 계약을 할 수 없으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이는 독신이란 까닭으로 집주인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집 계약도 여러 차례 거부당했다. 심지어 보증금까지 주고 계약서를 썼는데 하루나 이틀 뒤에 독신이라는 것을 안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국 그이는 자기가 살고 싶었던 구역을 벗어나 조금 먼 지역에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었다.
그이뿐만 아니라 직장일로 한국에 식구들을 두고 이집트에 파견 나와 일이 년 동안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상사 직원들이나 파견 공무원들도 혼인은 했으나 아내가 이집트에 없다는 까닭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고는 한다. 다행히 계약이 체결되어 집을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은 계약 기간 내내 주위의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혼인하라는 압력과 회유를 받아야 했다. "젊은 과부가 있다, 대단한 미녀다, 당신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산다, 수염이 없다" 들 하여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혼인을 권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혼인을 한 몸"이라고 완곡하게 거절하면 "아내를 하나 더 두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려 든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으므로 "일이 년 뒤면 나는 이집트를 떠나므로 혼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그때까지만 살고 떠날 때 이혼하면 된다. 아니, 그전이라도 만약 그 여자가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이혼해도 좋다"라고까지 말한다고 했다. 이집트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적극 혼인을 권유하는 까닭은 이슬람교 신자들이 신성시하고 절대 불가침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또는 코란)에 특별한 까닭 없이 혼인하지 않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신부는 목을 베어라
이집트의 젊은이들이 혼인을 위해 상대를 선택하는 방식은 우리와 너무 다른 점이 많다. 거개의 국민들이 여자의 정조와 정숙함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는 무슬림들이므로 이집트에서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연애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젊은 남녀가 있을 경우, 적어도 약혼한 사이 이상이라고 보면 대체로 맞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집트는 아직도 그런 분위기 속에 있는 것이다.
거개의 이집트 국민들은 여자들의 정조를... 이집트 젊은이들이 혼인하기 전에 어떤 형태의 이성교제를 가진다는 것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 해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면 혼인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거개의 이집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랑이 혼인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은 사랑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강요로 전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혼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신문의 사회면에는 가끔씩 경찰서에서 혼인식을 올린다는 기사가 등장하는데, 그 내막은 서로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양가의 반대에 부딪혀 혼인할 길이 막히자 경찰의 보호 아래 경찰서에서 혼인식을 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이들이 경찰서까지 찾아가 혼인을 했다 해도 그 뒤에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경찰서에서 혼인한 신혼부부들의 앞날은 십중팔구 어둡기 마련이다. 때로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까닭으로 신부 오빠의 손에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제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인기 있었던 한 이집트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시골에 사는 한 아가씨가 마을 보건소장에 새로 임명되어 카이로에서 파견되어온 젊은 의사와 사랑에 빠진다. 이 아가씨는 관습에 따라 친척 가운데 한 사람과 혼인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 아가씨는 한밤중에 그 젊은 의사와 도망갈 결심을 한다. 같은 날 세이크(종교 지도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 아가씨의 최근 행적을 보고받고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사실을 눈치채고 저녁이 되어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아가씨는 결국 세이크가 보낸 자객에게 마을 어귀에서 붙잡혀 목이 베인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를 본 뒤 어떻게 마을의 지도자가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할 수 있는지 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나의 질문을 받은 그 친구는 뜻밖에 그럴 경우 여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가문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마을의 관습을 어기고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을 사랑했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쁜 사촌 누이는 예쁜 내 아내
'남녀칠세부동석'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집트의 혼인 풍습 가운데 특이한 것은 사촌끼리의 혼인이다. 이 풍습은 요즈음 이집트에서 많이 느슨해졌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촌과 혼인하고 있다. 사촌끼리 혼인하는 까닭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혼인을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집트에서 자신들의 재산과 특권이 사촌들과의 혼인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집트에서 혼인할 나이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사촌 가운데 혼인할 상대자를 물색한다. 사촌이 없다거나 있어도 혼인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때(건강에 문제가 있다든지)에는 좀더 먼 친척 가운데에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사촌끼리의 혼인을 금기로 여기는 우리의 관념으로는 신기하고 한편 의아해 보이기도 한다. 내 친구는 카이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였는데 자기의 사촌 여동생과 혼인하여 살고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사촌끼리 혼인하는 것에 관한 나의 입장을 말해 보았다.
나는 우생학을 들먹이며 당신 같은 지식인이 어떻게 친척과 혼인을 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이의 대답은 뜻밖에 "친족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가 한 말은 사촌 사이에 특별한 까닭 없이 일 순위나 이 순위로 내정되어 있는 상대자와 혼인을 하지 않으면 가까웠던 두 집안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서로의 발길이 뜸해지다가 급기야는 친척 사이의 유대까지 깨진다는 것이었다.
사촌 사이의 혼인이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에 보편화된 일이라고 해서 이슬람교의 율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이슬람교의 어떤 교리도 사촌 사이의 혼인을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지역에 따른 특별한 혼인 관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아랍 국가라 해도 이집트보다는 페르시아 만 연안 국가들에서 사촌 간 혼인이 훨씬 보편화되어 있다.
환영받는 신붓감
이집트에서 신붓감으로 환영받는 이상형은 날씬한 몸매에 가슴은 풍만한 여자이다. 그런 까닭에 혼인 적령기에 이른 이집트 여자들은 한국 사람이 보아서는 큰 가슴인데도 이를 더욱 크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가운데 혼인을 앞둔 스무 살 정도의 아가씨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아가씨가 가슴을 열어 젖히더니 그 안에서 스펀지, 헝겊 따위를 꺼내 놓는 것이 아닌가! 이 광경을 본 아내가 의아해하면서 까닭을 물어보니 자기 어머니가 혼인을 잘하려면 가슴이 커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무더운 날씨에도 외출할 때는 가슴에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넣어 크게 하고 다니는데 자기 친구들도 거개가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아가씨의 "땀띠 나는" 노력 덕분인지 얼마 뒤 돈 잘 버는 남자와 혼인하게 되었다며 우리 집 일을 그만두었다.
이집트에서 환영받는 신붓감은 날씬한... 이집트에서 신붓감은 나이가 어릴수록 환영받는다. 오십, 육십 년 전만 해도 이집트 여자들은 나이 열두 살이나 열세 살에 혼인하는 일이 흔했다. 지금은 혼인 연령이 많이 늦춰졌다지만 거개의 여자들이 스무 살 안팎의 나이에 혼인하고 있다. 여자가 이처럼 어린 나이에 혼인하는 까닭은 아마도 열대지방이다 보니 성장이 빨라서 그런가 싶다. 반면, 이집트 남자들은 경제적인 까닭으로 삼십대 중반에 혼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녀의 혼인 적령기 차이 때문에 보통 부부가 열다섯 살 이상 차이 나는 일이 많아 이집트에서는 아주 늙어 보이는 남편과 손녀 같은 젊은 아내가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혼인 당사자들이 집 밖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직접 배우자를 고르는 일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므로 혼인 상대자를 결정하는 데(사촌 사이의 혼인도 포함) 부모의 구실이 매우 크다. 혼인할 나이에 있는 총각을 둔 부모들은 거개가 두세 명의 카티바라고 부르는 여자들을 고용하여 처녀가 있는 집을 여기저기 방문하게 한다. 카티바들은 처녀를 보고 돌아와 부모와 총각에게 보고하는데 거개가 "가젤과 같이 날렵하다, 예쁘고 우아하다, 나이가 어리다, 수염이 없다" 들의 찬사를 늘어놓는다. 혼인할 상대를 찾기 위해 카티바를 보내는 풍습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먼 곳으로 사자를 보냈다는 성경 창세기 이십사 장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 언니보다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지 않는 것도 성경(창세기 이십구 장 이십육 절)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 같다.
환영받는 이집트 신부를 묘사하는 말에서 "수염이 없다"는 말이 도대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같은 대학의 절친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집트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몸에 털이 있으면 냄새가 나므로 규칙적으로 털을 없애는데 자신도 오늘 학교에 오기 전에 겨드랑이 털을 깎고 왔다는 것이었다. 몸의 털을 없애는 풍습이 보편적이다 보니 얼굴에 솜털조차 없는 여자일수록 아름답고 청결한 여자로 여겨져 신붓감으로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집트 친구와 털에 관한 대화를 하다 보니 속으로 더욱 궁금해지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이집트에서는 처녀가 혼인 첫날밤 신랑에게 자신의 음모를 면도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지금껏 지켜온 정조를 바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질문을 하려니 매우 망설여졌다. 한참 뜸을 들이며 주저하다가 물어보니 그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다.
첫째, 이집트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머리털을 뺀 온몸의 털을 청결을 위해 없앤다. 머리털도 없애면 깨끗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니 그이는 머리털은 뜨거운 햇볕을 막아 우리 몸을 보호해 주지만 겨드랑이 털이나 음모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둘째, 혼인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의 음모를 없애는 것이 첫날밤의 신성한 의식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이다. 그러므로 내가 들었다는 그 이야기는 혹시 신부가 음모를 없애지 않아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서비스"를 베풀었을 가능성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혼인한 뒤에는 남편이 아내의 음모를 없애 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니 들은 이야기가 백 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한 가지, 곧 첫번째 대답에서는 정확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청결을 위해 음모를 정기적으로 없애는 풍습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아랍국가에서는 보편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의 유목민들 가운데는 계속해서 털이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아예 피부를 한풀 벗겨내기도 하는데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광경을 자신의 친구가 보았다는 것을 나에게 덧붙여 말해 주었다.
신붓감과 그 어머니와의 동시 데이트
마흐람이란 성숙한 여자가 함께 앉아... 옛날에는 하층 계급에 속하는 이들이 아니면 남자는 혼인해서야 비로소 아내의 얼굴을 보는 일이 많았다. 오늘날 이집트에서는 얼굴을 천으로 가리지 않으므로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서로 만나는 일만큼은 엄격히 제한되어 약혼을 한 사이라 해도 만날 때는 처녀의 집에서 부모가 보는 데서 만나야 한다. 바깥에서 만날 때에도 처녀의 동생이나 오빠가 꼭 따라다니므로 손 한번 잡아보기 힘들다.
독신을 고집했던 이집트의 그 한국 사람은 이집트 처녀와 국제 혼인을 할까 하여 데이트를 했는데 그 아가씨는 만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나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어머니를 달고 다니는 바람에 분위기를 망쳤고 나중에는 그렇게 얄밉게 보일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이로서는 상대방 어머니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며 결국 그 아가씨에게 자신과 어머니 둘 중 한 사람을 택하라고 "최후통첩"을 하였다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아가씨의 선택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렇게 만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이슬람교의 마흐람에 따른 것이다. 마흐람이란 성숙한 여자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허용될 정도로 가까운 친척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아들, 친오빠나 남동생, 할아버지, 삼촌, 조카와 같이 이슬람교 율법이 혼인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친척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 마흐람은 무슬림들의 가족과 사회생활을 눈에 보이지 않게 통제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리고 마흐람의 범위를 벗어나는 이성과의 만남은 철저히 규제되고 제한되는 것이 이슬람교 사회의 일반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중년의 한국 사람이 이집트의 혼인 풍습을 조금만 더 이해했었다면, 그리고 혼인하지 않은 여자가 마흐람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과 단둘이 만나는 것이 이집트 사회에서 얼마나 타락한 행동으로 여겨지는지를 이해했다면 자신이 질 것이 뻔한데도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밀고 당기는 약혼
마음에 드는 상대자가 생기면 처녀와 총각은 각각의 "와킬(대리인)"을 지명하는데 거개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 또는 외삼촌 같은 집안의 어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이 와킬이 마지막으로 혼인식이 이루어지기까지 필요한 모든 절차를 상대쪽 와킬과 협상하는 공식 창구가 된다. 와킬이 하는 일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마흐르"의 결정일 것이다. 지참금이라고도 하는 마흐르의 결정과정은 큰 인내심과 협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슬람교의 계율은 이집트를 비롯한... 이 지참금은 꾸란 사 장 이십오 절에도 나온 것이므로 아무리 적은 액수라 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참금이 없는 혼인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슬림끼리의 혼인에 지참금은 반드시 등장하게 된다. 지참금을 한국의 혼인 풍습에 견주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 보내는 함과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예물을 보내지만 이집트에서는 돈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참금을 결정하는 과정은 앞에서 말한 대로 매우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보통 신부 쪽에서는 이 지참금을 받아서 텔레비전, 세탁기, 가구 들(이것을 아랍 말로는 가하즈라고 한다)을 사는데 지참금을 많이 요구하는 신부 쪽과 깎아 달라고 사정하는 신랑 쪽 사이에 신경전이 자주 발생한다. 신부 쪽에서도 특히 신부의 어머니는 지참금을 한 푼이라도 많이 받아 내려고 하므로 거액의 지참금을 마련해야 하는 신랑은 가끔 신부의 어머니를 원망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 야릇한 싸움 때문에 혼례식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사위와 장모 사이에 늘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 한국에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있으나 이집트의 사위와 장모는 혼례식이 끝난 이후에 오랫동안 "견원지간"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양하는 친구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하는 데 잘 쓰이는 이집트 말 가운데에 "장모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견원지간인 장모님이 사위인 당신을 사랑할 정도인데 나는 당신을 얼마나 환대하겠는가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너무 사양하지 말고 드십시오" 정도가 된다.
지참금은 신랑 쪽의 사회 지위나 경제력에 따라 엄청난 금액에서부터 우리 돈 몇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자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시골이나 사막의 오지로 갈수록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지참금의 액수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잘 알고 지내는 이집트의 한 교수는 혼인할 때 지참금으로 약 팔백만 원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액수는 이집트 교수의 월급이 십오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꽤 많은 돈이었다. 언뜻 계산해 봐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사 년 육 개월을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지참금을 모으는 데 힘이 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그 교수는 자신은 부모님이 도와주었다면서 부모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혼인은 힘들다고 대답했다.
길고 지루한 협상을 통해 마흐르가 결정되면 약혼식을 한다. 이집트에서 약혼식을 생략하고 바로 혼인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약혼식 날이 되면 신랑은 서너 명의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 지참금을 들고 신부의 집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신랑 일행은 신부의 와킬과 그 일행의 영접을 받게 되며 이 자리에서 지참금을 내고 "아끄드 알니카흐", 곧 혼인 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서는 정부로부터 공인된 "마으준(일종의 혼인 법무사)"이 작성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 증언을 할 수 있는 세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으므로 문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교 율법에 따르면 와킬과 두 명의 증인이 있으면 문서와 같은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약혼식은 신부측 와킬과 신랑이 서로 악수를 한 채, 꾸란의 "개경" 장(꾸란 백십사 장의 첫번째 장으로 행사가 있을 때 흔히 낭송함)을 서로 낭송한다. 그리고 신부의 와킬이 "나는 당신에게 나의 딸을 혼인시키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신랑은 이 말을 받아 "나는 당신 딸과의 혼인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그이를 나의 보호 아래 두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때 서로 악수한 손 위에 손수건을 얹기도 한다.
약혼식에서 신랑 쪽은 지참금을 모두 주지 않고 보통 삼분의 이만 준다. 약혼식에서 주지 않은 나머지 금액은 신랑이 보관하고 있다가 혼인한 뒤 신랑이 사고로 죽거나 이혼할 때 아내에게 주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혼인하면 남자와 여자 재산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약혼식 때 모두 다 받는 것이 신부에게 유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무아카르 앗사다까트(후불 지참금)"라고 불리는 삼분의 일 금액은 오히려 신부 쪽에서 반드시 남겨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중에 이집트인 교수에게 물어보니 이 후불 지참금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제도로 이혼할 때 이 돈을 주지 않으면 남자는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남편은 혼인 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후불 지참금 때문에 백 번, 천 번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그것 때문에 하고 싶었던 이혼도 참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알고 나니 약혼식 때 지참금 일부를 후불 지참금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신부가 많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지참금을 주고 약혼이 끝나면 그때부터 혼인하기 전까지 짧게는 육 개월에서 길게는 이삼 년 동안의 약혼 기간이 계속된다.
이 기간 동안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약혼자라고 부르며 지내는데 아직 완전한 혼인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서로에게서 중대한 실수나 약점이 발견되면 약혼을 깨뜨릴 수도 있다.
유명무실한 일부다처제
여기서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이집트 사람들의 일부다처제이다. 이슬람 하면 일부다처제, 일부다처제 하면 이슬람이 떠오를 정도로 이 일부다처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 일부다처제 때문에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사회에서 여자는 남자의 성적 노리개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선입견일 뿐이며 많은 부분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회의 관습과 문화는 그 사회의 특수한... 보통 한 남자가 네 명의 아내까지 거느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 제도는 일부일처제를 법적, 도덕적 규범으로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실상 이 제도는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특히 터키, 튀니지, 모로코 들) 철폐되지 않았다 해도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과 제약이 따라 한 명 이상의 아내를 거느리기가 생각보다는 쉽지가 않다.
이집트에서 네 명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남자는 아주 시골이 아니고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경제 문제로 한 명의 여자와도 살지 못하는 노총각들이 뜻밖에 많다. 따라서 일부다처제는 이슬람 국가라면 어디든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제도가 아니며 오히려 각 이슬람 국가의 고유한 풍습에 따라 차별적으로 그리고 많은 제약을 두고 시행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꾸란 사 장 사 절은 사람이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네 명까지 혼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한 여자만을 총애하여 다른 여자들을 매달린 여자들(생계를 위해)처럼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고(꾸란 사 장 백삼십 절), 아예 공평하게 사랑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한 명의 여자와 혼인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꾸란 사 장 사 절).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계시된 이 구절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두 번의 큰 전투(바드르 전투와 우흐드 전투)가 발생하여 부족의 많은 남자들이 죽음으로써 과부와 고아들이 사회 문제가 되었을 때임을 감안해야 한다. 어떠한 종교도 그 발생지의 정치, 사회, 문화의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 없듯이, 꾸란이 말하고 있는 일부다처제가 특정한 지역에서, 특수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치라고 이해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요란스러운 밤의 혼인
이집트는 그리 부유한 나라가 못 되지만... 약혼식 뒤 얼마 동안의 약혼 기간이 지나면 혼인식을 치른다. 신부가 탄 차가 신랑의 집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혼인식은 보통 금요일에 거행한다. 우리와는 달리 이집트의 공휴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금요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신랑이 사는 동네의 골목은 온통 꼬마 전구가 반짝이고 많은 등불이 걸려 있는가 하면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색으로 된 깃발이 줄에 매달려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혼인식 날에 신부가 탈 차는 가난한 집이라 해도 가능한 메르세데스벤츠를 빌려 사용하며 경적을 울리며 거리와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신부가 탄 차에는 가까운 친구나 여동생들이 합승하여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지나가던 사람들도 기쁘게 "마브룩(축하합니다)"이란 인사를 하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제 새로 탄생한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하해 준다.
이집트는 일 인당 국민소득이 칠백 달러에 지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지만 이집트 사람들의 혼인식만큼은 어느 부유한 나라 못지않게 화려하고 요란스럽다. 혼인식 날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악단을 동원하여 연주를 하고 폭죽을 터뜨리며 수많은 하객들이 몰려와 먹고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을 여유롭게 갖기 위해 오후 늦게 혼인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요즈음 늘고 있는데 이집트에서는 오래 전부터 혼인식을 저녁에 올리고 있다. 아무래도 낮에는 더운 날씨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금요일 오후 나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나가보면 푸른 물과 상쾌한 바람이 부는 나일 강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신혼부부들이 많다. 상쾌한 바람에 하얀 드레스를 하늘거리며 수줍어하는 신부,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신랑, 붉게 물든 석양에 잠겨 멀리 바라보이는 피라미드,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집트 사람들의 혼인식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잔잔한 기쁨으로 남게 된다.
<샘이깊은물> 2000. 6
정 규영/글쓴이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카이로대학교 아랍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조선대학교 아랍어과 교수로 있다. <이집트와 이집트 문명의 이해>, <이집트에는 미라가 없다> 들의 책을 내기도 한 그이는 지금 한국이슬람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꼭 해야만 하는 혼인
이슬람교는 남녀가 성년이 되면 반드시... 이집트에서 잘 알고 지냈던 어떤 한국 사람은 독신을 고집하는 오십대 중반의 신체가 건강한 이였다. 그이는 독신이라는 까닭으로 여러 차례 불편함과 곤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아파트를 구할 때 마음에 들어 곧 계약을 체결하려 하면 집주인이 "당신 혼인했느냐", "당신 혼자 살 것이냐"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혼인하지 않았다. 혼자 살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그때까지 웃던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 "당신과는 계약을 할 수 없으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이는 독신이란 까닭으로 집주인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집 계약도 여러 차례 거부당했다. 심지어 보증금까지 주고 계약서를 썼는데 하루나 이틀 뒤에 독신이라는 것을 안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국 그이는 자기가 살고 싶었던 구역을 벗어나 조금 먼 지역에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었다.
그이뿐만 아니라 직장일로 한국에 식구들을 두고 이집트에 파견 나와 일이 년 동안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상사 직원들이나 파견 공무원들도 혼인은 했으나 아내가 이집트에 없다는 까닭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고는 한다. 다행히 계약이 체결되어 집을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은 계약 기간 내내 주위의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혼인하라는 압력과 회유를 받아야 했다. "젊은 과부가 있다, 대단한 미녀다, 당신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산다, 수염이 없다" 들 하여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혼인을 권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혼인을 한 몸"이라고 완곡하게 거절하면 "아내를 하나 더 두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려 든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으므로 "일이 년 뒤면 나는 이집트를 떠나므로 혼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그때까지만 살고 떠날 때 이혼하면 된다. 아니, 그전이라도 만약 그 여자가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이혼해도 좋다"라고까지 말한다고 했다. 이집트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적극 혼인을 권유하는 까닭은 이슬람교 신자들이 신성시하고 절대 불가침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또는 코란)에 특별한 까닭 없이 혼인하지 않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신부는 목을 베어라
이집트의 젊은이들이 혼인을 위해 상대를 선택하는 방식은 우리와 너무 다른 점이 많다. 거개의 국민들이 여자의 정조와 정숙함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는 무슬림들이므로 이집트에서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연애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젊은 남녀가 있을 경우, 적어도 약혼한 사이 이상이라고 보면 대체로 맞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집트는 아직도 그런 분위기 속에 있는 것이다.
거개의 이집트 국민들은 여자들의 정조를... 이집트 젊은이들이 혼인하기 전에 어떤 형태의 이성교제를 가진다는 것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 해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면 혼인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거개의 이집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랑이 혼인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은 사랑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강요로 전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혼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신문의 사회면에는 가끔씩 경찰서에서 혼인식을 올린다는 기사가 등장하는데, 그 내막은 서로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양가의 반대에 부딪혀 혼인할 길이 막히자 경찰의 보호 아래 경찰서에서 혼인식을 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이들이 경찰서까지 찾아가 혼인을 했다 해도 그 뒤에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경찰서에서 혼인한 신혼부부들의 앞날은 십중팔구 어둡기 마련이다. 때로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까닭으로 신부 오빠의 손에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제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인기 있었던 한 이집트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시골에 사는 한 아가씨가 마을 보건소장에 새로 임명되어 카이로에서 파견되어온 젊은 의사와 사랑에 빠진다. 이 아가씨는 관습에 따라 친척 가운데 한 사람과 혼인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 아가씨는 한밤중에 그 젊은 의사와 도망갈 결심을 한다. 같은 날 세이크(종교 지도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 아가씨의 최근 행적을 보고받고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사실을 눈치채고 저녁이 되어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아가씨는 결국 세이크가 보낸 자객에게 마을 어귀에서 붙잡혀 목이 베인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를 본 뒤 어떻게 마을의 지도자가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할 수 있는지 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나의 질문을 받은 그 친구는 뜻밖에 그럴 경우 여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가문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마을의 관습을 어기고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을 사랑했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쁜 사촌 누이는 예쁜 내 아내
'남녀칠세부동석'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집트의 혼인 풍습 가운데 특이한 것은 사촌끼리의 혼인이다. 이 풍습은 요즈음 이집트에서 많이 느슨해졌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촌과 혼인하고 있다. 사촌끼리 혼인하는 까닭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혼인을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집트에서 자신들의 재산과 특권이 사촌들과의 혼인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집트에서 혼인할 나이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사촌 가운데 혼인할 상대자를 물색한다. 사촌이 없다거나 있어도 혼인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때(건강에 문제가 있다든지)에는 좀더 먼 친척 가운데에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사촌끼리의 혼인을 금기로 여기는 우리의 관념으로는 신기하고 한편 의아해 보이기도 한다. 내 친구는 카이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였는데 자기의 사촌 여동생과 혼인하여 살고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사촌끼리 혼인하는 것에 관한 나의 입장을 말해 보았다.
나는 우생학을 들먹이며 당신 같은 지식인이 어떻게 친척과 혼인을 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이의 대답은 뜻밖에 "친족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가 한 말은 사촌 사이에 특별한 까닭 없이 일 순위나 이 순위로 내정되어 있는 상대자와 혼인을 하지 않으면 가까웠던 두 집안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서로의 발길이 뜸해지다가 급기야는 친척 사이의 유대까지 깨진다는 것이었다.
사촌 사이의 혼인이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에 보편화된 일이라고 해서 이슬람교의 율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이슬람교의 어떤 교리도 사촌 사이의 혼인을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지역에 따른 특별한 혼인 관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아랍 국가라 해도 이집트보다는 페르시아 만 연안 국가들에서 사촌 간 혼인이 훨씬 보편화되어 있다.
환영받는 신붓감
이집트에서 신붓감으로 환영받는 이상형은 날씬한 몸매에 가슴은 풍만한 여자이다. 그런 까닭에 혼인 적령기에 이른 이집트 여자들은 한국 사람이 보아서는 큰 가슴인데도 이를 더욱 크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가운데 혼인을 앞둔 스무 살 정도의 아가씨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아가씨가 가슴을 열어 젖히더니 그 안에서 스펀지, 헝겊 따위를 꺼내 놓는 것이 아닌가! 이 광경을 본 아내가 의아해하면서 까닭을 물어보니 자기 어머니가 혼인을 잘하려면 가슴이 커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무더운 날씨에도 외출할 때는 가슴에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넣어 크게 하고 다니는데 자기 친구들도 거개가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아가씨의 "땀띠 나는" 노력 덕분인지 얼마 뒤 돈 잘 버는 남자와 혼인하게 되었다며 우리 집 일을 그만두었다.
이집트에서 환영받는 신붓감은 날씬한... 이집트에서 신붓감은 나이가 어릴수록 환영받는다. 오십, 육십 년 전만 해도 이집트 여자들은 나이 열두 살이나 열세 살에 혼인하는 일이 흔했다. 지금은 혼인 연령이 많이 늦춰졌다지만 거개의 여자들이 스무 살 안팎의 나이에 혼인하고 있다. 여자가 이처럼 어린 나이에 혼인하는 까닭은 아마도 열대지방이다 보니 성장이 빨라서 그런가 싶다. 반면, 이집트 남자들은 경제적인 까닭으로 삼십대 중반에 혼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녀의 혼인 적령기 차이 때문에 보통 부부가 열다섯 살 이상 차이 나는 일이 많아 이집트에서는 아주 늙어 보이는 남편과 손녀 같은 젊은 아내가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혼인 당사자들이 집 밖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직접 배우자를 고르는 일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므로 혼인 상대자를 결정하는 데(사촌 사이의 혼인도 포함) 부모의 구실이 매우 크다. 혼인할 나이에 있는 총각을 둔 부모들은 거개가 두세 명의 카티바라고 부르는 여자들을 고용하여 처녀가 있는 집을 여기저기 방문하게 한다. 카티바들은 처녀를 보고 돌아와 부모와 총각에게 보고하는데 거개가 "가젤과 같이 날렵하다, 예쁘고 우아하다, 나이가 어리다, 수염이 없다" 들의 찬사를 늘어놓는다. 혼인할 상대를 찾기 위해 카티바를 보내는 풍습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먼 곳으로 사자를 보냈다는 성경 창세기 이십사 장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 언니보다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지 않는 것도 성경(창세기 이십구 장 이십육 절)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 같다.
환영받는 이집트 신부를 묘사하는 말에서 "수염이 없다"는 말이 도대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같은 대학의 절친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집트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몸에 털이 있으면 냄새가 나므로 규칙적으로 털을 없애는데 자신도 오늘 학교에 오기 전에 겨드랑이 털을 깎고 왔다는 것이었다. 몸의 털을 없애는 풍습이 보편적이다 보니 얼굴에 솜털조차 없는 여자일수록 아름답고 청결한 여자로 여겨져 신붓감으로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집트 친구와 털에 관한 대화를 하다 보니 속으로 더욱 궁금해지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이집트에서는 처녀가 혼인 첫날밤 신랑에게 자신의 음모를 면도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지금껏 지켜온 정조를 바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질문을 하려니 매우 망설여졌다. 한참 뜸을 들이며 주저하다가 물어보니 그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다.
첫째, 이집트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머리털을 뺀 온몸의 털을 청결을 위해 없앤다. 머리털도 없애면 깨끗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니 그이는 머리털은 뜨거운 햇볕을 막아 우리 몸을 보호해 주지만 겨드랑이 털이나 음모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둘째, 혼인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의 음모를 없애는 것이 첫날밤의 신성한 의식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이다. 그러므로 내가 들었다는 그 이야기는 혹시 신부가 음모를 없애지 않아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서비스"를 베풀었을 가능성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혼인한 뒤에는 남편이 아내의 음모를 없애 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니 들은 이야기가 백 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한 가지, 곧 첫번째 대답에서는 정확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청결을 위해 음모를 정기적으로 없애는 풍습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아랍국가에서는 보편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의 유목민들 가운데는 계속해서 털이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아예 피부를 한풀 벗겨내기도 하는데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광경을 자신의 친구가 보았다는 것을 나에게 덧붙여 말해 주었다.
신붓감과 그 어머니와의 동시 데이트
마흐람이란 성숙한 여자가 함께 앉아... 옛날에는 하층 계급에 속하는 이들이 아니면 남자는 혼인해서야 비로소 아내의 얼굴을 보는 일이 많았다. 오늘날 이집트에서는 얼굴을 천으로 가리지 않으므로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서로 만나는 일만큼은 엄격히 제한되어 약혼을 한 사이라 해도 만날 때는 처녀의 집에서 부모가 보는 데서 만나야 한다. 바깥에서 만날 때에도 처녀의 동생이나 오빠가 꼭 따라다니므로 손 한번 잡아보기 힘들다.
독신을 고집했던 이집트의 그 한국 사람은 이집트 처녀와 국제 혼인을 할까 하여 데이트를 했는데 그 아가씨는 만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나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어머니를 달고 다니는 바람에 분위기를 망쳤고 나중에는 그렇게 얄밉게 보일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이로서는 상대방 어머니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며 결국 그 아가씨에게 자신과 어머니 둘 중 한 사람을 택하라고 "최후통첩"을 하였다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아가씨의 선택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렇게 만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이슬람교의 마흐람에 따른 것이다. 마흐람이란 성숙한 여자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허용될 정도로 가까운 친척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아들, 친오빠나 남동생, 할아버지, 삼촌, 조카와 같이 이슬람교 율법이 혼인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친척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 마흐람은 무슬림들의 가족과 사회생활을 눈에 보이지 않게 통제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리고 마흐람의 범위를 벗어나는 이성과의 만남은 철저히 규제되고 제한되는 것이 이슬람교 사회의 일반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중년의 한국 사람이 이집트의 혼인 풍습을 조금만 더 이해했었다면, 그리고 혼인하지 않은 여자가 마흐람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과 단둘이 만나는 것이 이집트 사회에서 얼마나 타락한 행동으로 여겨지는지를 이해했다면 자신이 질 것이 뻔한데도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밀고 당기는 약혼
마음에 드는 상대자가 생기면 처녀와 총각은 각각의 "와킬(대리인)"을 지명하는데 거개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 또는 외삼촌 같은 집안의 어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이 와킬이 마지막으로 혼인식이 이루어지기까지 필요한 모든 절차를 상대쪽 와킬과 협상하는 공식 창구가 된다. 와킬이 하는 일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마흐르"의 결정일 것이다. 지참금이라고도 하는 마흐르의 결정과정은 큰 인내심과 협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슬람교의 계율은 이집트를 비롯한... 이 지참금은 꾸란 사 장 이십오 절에도 나온 것이므로 아무리 적은 액수라 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참금이 없는 혼인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슬림끼리의 혼인에 지참금은 반드시 등장하게 된다. 지참금을 한국의 혼인 풍습에 견주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 보내는 함과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예물을 보내지만 이집트에서는 돈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참금을 결정하는 과정은 앞에서 말한 대로 매우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보통 신부 쪽에서는 이 지참금을 받아서 텔레비전, 세탁기, 가구 들(이것을 아랍 말로는 가하즈라고 한다)을 사는데 지참금을 많이 요구하는 신부 쪽과 깎아 달라고 사정하는 신랑 쪽 사이에 신경전이 자주 발생한다. 신부 쪽에서도 특히 신부의 어머니는 지참금을 한 푼이라도 많이 받아 내려고 하므로 거액의 지참금을 마련해야 하는 신랑은 가끔 신부의 어머니를 원망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 야릇한 싸움 때문에 혼례식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사위와 장모 사이에 늘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 한국에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있으나 이집트의 사위와 장모는 혼례식이 끝난 이후에 오랫동안 "견원지간"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양하는 친구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하는 데 잘 쓰이는 이집트 말 가운데에 "장모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견원지간인 장모님이 사위인 당신을 사랑할 정도인데 나는 당신을 얼마나 환대하겠는가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너무 사양하지 말고 드십시오" 정도가 된다.
지참금은 신랑 쪽의 사회 지위나 경제력에 따라 엄청난 금액에서부터 우리 돈 몇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자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시골이나 사막의 오지로 갈수록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지참금의 액수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잘 알고 지내는 이집트의 한 교수는 혼인할 때 지참금으로 약 팔백만 원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액수는 이집트 교수의 월급이 십오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꽤 많은 돈이었다. 언뜻 계산해 봐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사 년 육 개월을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지참금을 모으는 데 힘이 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그 교수는 자신은 부모님이 도와주었다면서 부모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혼인은 힘들다고 대답했다.
길고 지루한 협상을 통해 마흐르가 결정되면 약혼식을 한다. 이집트에서 약혼식을 생략하고 바로 혼인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약혼식 날이 되면 신랑은 서너 명의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 지참금을 들고 신부의 집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신랑 일행은 신부의 와킬과 그 일행의 영접을 받게 되며 이 자리에서 지참금을 내고 "아끄드 알니카흐", 곧 혼인 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서는 정부로부터 공인된 "마으준(일종의 혼인 법무사)"이 작성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 증언을 할 수 있는 세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으므로 문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교 율법에 따르면 와킬과 두 명의 증인이 있으면 문서와 같은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약혼식은 신부측 와킬과 신랑이 서로 악수를 한 채, 꾸란의 "개경" 장(꾸란 백십사 장의 첫번째 장으로 행사가 있을 때 흔히 낭송함)을 서로 낭송한다. 그리고 신부의 와킬이 "나는 당신에게 나의 딸을 혼인시키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신랑은 이 말을 받아 "나는 당신 딸과의 혼인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그이를 나의 보호 아래 두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때 서로 악수한 손 위에 손수건을 얹기도 한다.
약혼식에서 신랑 쪽은 지참금을 모두 주지 않고 보통 삼분의 이만 준다. 약혼식에서 주지 않은 나머지 금액은 신랑이 보관하고 있다가 혼인한 뒤 신랑이 사고로 죽거나 이혼할 때 아내에게 주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혼인하면 남자와 여자 재산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약혼식 때 모두 다 받는 것이 신부에게 유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무아카르 앗사다까트(후불 지참금)"라고 불리는 삼분의 일 금액은 오히려 신부 쪽에서 반드시 남겨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중에 이집트인 교수에게 물어보니 이 후불 지참금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제도로 이혼할 때 이 돈을 주지 않으면 남자는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남편은 혼인 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후불 지참금 때문에 백 번, 천 번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그것 때문에 하고 싶었던 이혼도 참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알고 나니 약혼식 때 지참금 일부를 후불 지참금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신부가 많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지참금을 주고 약혼이 끝나면 그때부터 혼인하기 전까지 짧게는 육 개월에서 길게는 이삼 년 동안의 약혼 기간이 계속된다.
이 기간 동안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약혼자라고 부르며 지내는데 아직 완전한 혼인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서로에게서 중대한 실수나 약점이 발견되면 약혼을 깨뜨릴 수도 있다.
유명무실한 일부다처제
여기서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이집트 사람들의 일부다처제이다. 이슬람 하면 일부다처제, 일부다처제 하면 이슬람이 떠오를 정도로 이 일부다처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 일부다처제 때문에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사회에서 여자는 남자의 성적 노리개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선입견일 뿐이며 많은 부분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회의 관습과 문화는 그 사회의 특수한... 보통 한 남자가 네 명의 아내까지 거느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 제도는 일부일처제를 법적, 도덕적 규범으로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실상 이 제도는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특히 터키, 튀니지, 모로코 들) 철폐되지 않았다 해도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과 제약이 따라 한 명 이상의 아내를 거느리기가 생각보다는 쉽지가 않다.
이집트에서 네 명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남자는 아주 시골이 아니고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경제 문제로 한 명의 여자와도 살지 못하는 노총각들이 뜻밖에 많다. 따라서 일부다처제는 이슬람 국가라면 어디든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제도가 아니며 오히려 각 이슬람 국가의 고유한 풍습에 따라 차별적으로 그리고 많은 제약을 두고 시행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꾸란 사 장 사 절은 사람이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네 명까지 혼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한 여자만을 총애하여 다른 여자들을 매달린 여자들(생계를 위해)처럼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고(꾸란 사 장 백삼십 절), 아예 공평하게 사랑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한 명의 여자와 혼인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꾸란 사 장 사 절).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계시된 이 구절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두 번의 큰 전투(바드르 전투와 우흐드 전투)가 발생하여 부족의 많은 남자들이 죽음으로써 과부와 고아들이 사회 문제가 되었을 때임을 감안해야 한다. 어떠한 종교도 그 발생지의 정치, 사회, 문화의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 없듯이, 꾸란이 말하고 있는 일부다처제가 특정한 지역에서, 특수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치라고 이해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요란스러운 밤의 혼인
이집트는 그리 부유한 나라가 못 되지만... 약혼식 뒤 얼마 동안의 약혼 기간이 지나면 혼인식을 치른다. 신부가 탄 차가 신랑의 집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혼인식은 보통 금요일에 거행한다. 우리와는 달리 이집트의 공휴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금요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신랑이 사는 동네의 골목은 온통 꼬마 전구가 반짝이고 많은 등불이 걸려 있는가 하면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색으로 된 깃발이 줄에 매달려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혼인식 날에 신부가 탈 차는 가난한 집이라 해도 가능한 메르세데스벤츠를 빌려 사용하며 경적을 울리며 거리와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신부가 탄 차에는 가까운 친구나 여동생들이 합승하여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지나가던 사람들도 기쁘게 "마브룩(축하합니다)"이란 인사를 하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제 새로 탄생한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하해 준다.
이집트는 일 인당 국민소득이 칠백 달러에 지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지만 이집트 사람들의 혼인식만큼은 어느 부유한 나라 못지않게 화려하고 요란스럽다. 혼인식 날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악단을 동원하여 연주를 하고 폭죽을 터뜨리며 수많은 하객들이 몰려와 먹고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을 여유롭게 갖기 위해 오후 늦게 혼인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요즈음 늘고 있는데 이집트에서는 오래 전부터 혼인식을 저녁에 올리고 있다. 아무래도 낮에는 더운 날씨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금요일 오후 나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나가보면 푸른 물과 상쾌한 바람이 부는 나일 강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신혼부부들이 많다. 상쾌한 바람에 하얀 드레스를 하늘거리며 수줍어하는 신부,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신랑, 붉게 물든 석양에 잠겨 멀리 바라보이는 피라미드,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집트 사람들의 혼인식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잔잔한 기쁨으로 남게 된다.
<샘이깊은물> 2000. 6
정 규영/글쓴이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카이로대학교 아랍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조선대학교 아랍어과 교수로 있다. <이집트와 이집트 문명의 이해>, <이집트에는 미라가 없다> 들의 책을 내기도 한 그이는 지금 한국이슬람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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