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국으로 성공한 바이킹의 후예 아이슬란드 > 인생수첩 엿보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인생수첩 엿보기


 

경제대국으로 성공한 바이킹의 후예 아이슬란드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449회 작성일 10-08-07 09:56

본문

1387∼1918년까지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아이슬란드는 자국의 문화재인 레기우스 필사본(게르만족 전설에 관한 서사시)을 덴마크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수십 년의 노력 끝에 아이슬란드는 1971년, 이를 돌려받는 데 성공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자국의 소중한 권리와 문화를 되찾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한 작은 거인 아이슬란드. 현재 경제협력개발계획(OECD)의 창설국가 중 하나이자 진취적인 기상으로 세계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는 아이슬란드는 선진국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 알짜배기 국가이다.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사이 북대서양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이다. 극지방과 가까운 푸른 바다를 가진 아이슬란드에는 빙하와 화산이 공존한다. 강수량이 많고 해안선이 완만하여 아름다운 석호와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남부 지역에는 유럽 대륙의 모든 빙하를 합친 넓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바트나 빙하가 자리잡고 있다. 북부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춥고 건조한 기후가 펼쳐지지만, 대신 해안선이 꼬불꼬불한 협만으로 되어 있어 멋진 항구들을 개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는 200여 개의 화산이 있어 약 250개의 온천이 발달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도 근처의 지열 온천에서 파이프로 공급되는 뜨거운 물을 이용해 난방을 한다.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인들이 추가로 이주해 옴에 따라 930년에 세계 최초로 의회가 결성되어 아이슬란드 연방이 탄생했다. 여기에 아일랜드인과 스코틀랜드인 등 인근 유럽인들이 가세해 인구가 점차 늘어났다. 그러다가 10세기부터 아이슬란드 정복을 꿈꾸던 노르웨이에 의해 13세기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후 덴마크가 노르웨이와 통합되자, 아이슬란드의 통치권은 덴마크에 이양됐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아이슬란드에서는 독립 의지가 고취되었고, 1904년에 이르러 현재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완전한 독립을 성취하지 못한 채 영국과 미국에 점령당한 아이슬란드는 1944년이 되어서야 실질적인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국가가 국민의 편의를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 역시 잘 발달되어 있다. 국민들은 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보건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병원 진료는 모두 무료로 제공되며 다른 의료 서비스의 비용도 낮은 편이다. 실직 보험, 노령·장애 연금, 가족·질병 수당 등도 지급되어 국민들은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게다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거의 모든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맹률 역시 매우 낮다.
이처럼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국가 성향이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슬란드를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발맞추어 이자율 및 외환 통제 완화, 국가 소유 기업의 사유화, 경쟁력 강화, 외국 투자 유치, 유럽에 편중된 교역대상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수산분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여타 산업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전체 수출품의 대부분이 수산물이며, 어업은 국민총생산(GN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경제 기반이다. 반면 전체 국토의 6% 정도만 농·목축업으로 이용되고 그 수출량 역시 양고기와 양모로 국한되어 있을 정도로 육지산업은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업을 제외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원은 수력발전과 온천 파이프를 땅 밑으로 연결하는 지열자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