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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옛것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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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278회 작성일 10-08-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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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무원으로 국가의 혜택을 크게 입어 아내와 두 애들과 함께 외국에 처음 나가 2년 넘게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살다 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전에 출장길에 런던에 4, 5일 머무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영국행이었다. 사시사철 초록색 잔디와 빨간 장미 넝쿨과 나무에 둘러싸인 주택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원의 양 떼들, 낡았지만 잘 정돈된 도로, 친절한 비앤드비(영국식 개인 집 여관, 유명한 영국식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아줌마, 늘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 2년여의 영국 생활의 인상은 우리 식구에게 깊이 남아 있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늘 영국을 그리워한다.
영국에 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지만 특히 그이들의 검소함, 검박함, 실질적이고 경험적인 생활 태도 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좀 배웠다 하는 한국 사람들도 영국 하면 이제는 못 사는 나라,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의 원조, 우리나라 회사들이 공장 세워 유럽수출의 전진기지화하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사실 수수한 옷차림과 오래 되고 낡은 건물들, 도시 내에 방치된 공장지대의 폐허 들로 인해 영국 생활 초기에는 내가 느낀 첫인상도 그러하였다. 겉으로 보기에 영국은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살지 못했다. 그러나 공부를 마치고 영국을 떠날 무렵에는 영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이들의 검박한 생활 태도에 대한 낯설음과 선진국에 대한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1996년 당시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9,000달러, 우리나라는 1만 달러(지금은 8,500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도 구제금융 위기 초기인 1998년에는 6,200달러 정도였다)로 우리보다 두 배나 더 높은데, 사는 모습은 우리가 영국보다 두 배는 더 잘 사는 것 같았다. 옷차림이나 건물 외관, 거리의 네온사인 같은 단순한 겉모습만 견준다면 우리는 그네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처럼 보인다.

 장관도 수상도 오너 드라이버

국회의사당과 수상 관저를 비롯한 외무부, 재무부 같은 주요 정부부처 건물이 들어서 있는 다우닝 가. 다우닝 가 10번지에는 수상실과 수상 관저가 있고 11번지에는 재무장관 관저, 12번지에는 여당 수석 총무 관저가 자리잡고 있다. 
영국 텔레비전은 다우닝 가의 아침 모습을 곧잘 보여 준다. 노동당 정부의 사회부 장관이 수상 관저인 다우닝 가 10번지를 걸어나와 자신의 자동차 운전석에 타면서 안전띠를 매는 모습이라든지 장관 서열 세 번째인 재무부장관이 자기 차 운전석에서 기자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이 그것인데 이런 풍경이 나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각료들이 직접 운전하는 모습도 그랬고 그이들의 차량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그랬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관, 차관, 시장, 군수 같은 기관장은 5년이 지나면 차량을 바꾸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고 적어도 1,800시시 이상 3,000시시 정도의 차를 타는 것을 볼 때 한 번쯤 우리의 자동차 문화와 자동차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영국 사람은 시간만 나면 자기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닦고 기름 치고 수리하고 세차한다. 자동차도 소형이다. 거개의 여자들은 1,000시시 정도의 차를 운전한다. 또한 잘 사는 사람도 기사를 거의 두지 않는다. 런던이나 먼 도시로 장거리 여행을 할 때에는 아예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나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보통 5년에서 10년 된 자동차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중개 매매하는 중고차 시장이 유럽에서 매우 발달해 있고 거래도 매우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차도 5년 정도면 폐차시키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자원 낭비이다.

영국에서는 집에서 자동차를 닦고 수리하기 때문에 차고에는(거개의 집에는 차고가 있다) 연장이 정말 많다. 공구상을 연상시키는 차고도 많다. 버밍엄대학교 경제학과 과장 집에 갔을 때에도 차고 한 칸이 공구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영국에서 산 차는 1989년 11월에 출고된 차였고 1995년 당시만 해도 중고차에서는 새 차에 속했다. 5년 동안 7만 8,000마일(12만 5,000킬로미터)을 달린 차인데도 외부에 흠이 없음은 물론 성능도 매우 좋았다. 물론 도로가 거의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차를 오래 쓸 수도 있겠지만 보통 자기 차는 스스로 고치고 정비하여 오래 유지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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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는 누가 입을까?

영국은 버버리, 닥스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런던에서는 세계적인 패션쇼도 많이 열린다. 해마다 3월에는 "런던 패션축제 주간"이 있어 기발한 의상들이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에 멋쟁이가 많다지만 정작 영국 신사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거개의 영국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옷을 수수하게 입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버버리 제품을 영국 사람들은 거의 입지 않는다.
런던 근교에 있는 버버리 공장 가게(팩토리 숍이라고 해서 조금 흠이 있는 물건이나 재고품을 파는 가게) 손님의 50퍼센트 이상이 한국 사람이고 판매액의 60퍼센트에서 70퍼센트가 한국 사람이 사 간 것이란다. 버버리 공장 가게 진열대에 가면 한국 사람이 거개여서 한국의 어느 매장에 온 기분이 든다. 그 동안 한국 사람이 사간 버버리 머플러(정품은 보통 80파운드로 우리나라 돈으로 16만 원 정도)가 한국 사람 1인당 한 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영국에 있을 때 사귄 영국 사람은 블루칼라 근로자부터 버킹엄 궁전 홀 마룻바닥을 시공한 건설회사 회장까지 다양한 계층이었는데 버버리 제품을 걸친 이는 드물었다. "품질이 좋고 값이 싼 물건이면 오케이"라는 말을 그네로부터 들었을 때 버버리 공장 가게에 북적대는 한국 사람들을 떠올리고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공부했던 대학원의 지도교수는 40대 후반의 지방자치를 전공한 분으로 대학원의 부학장을 맡고 있었는데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항상 청바지와 운동복 차림이었다.
어느 날, 학교 길가에서 점심시간 무렵 만났는데 손에는 사과 한 개와 샌드위치가 든 비닐 봉지를 들고 나를 보고 "헬로"라고 외치면서 비닐 봉지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보통 점심은 사과 한 개와 샌드위치, 차 한 잔이 전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1년 내내 그렇단다. 많은 교수들이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와서 점심을 해결한다. 옷차림 또한 아주 검소하다.
한 번은 학과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였다. 내 지도교수는 여느 때의 청바지 차림과 달리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단정한 콤비차림이었다. 그런데 웬 "아줌마"들이 몇 명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 눈에는 교수로 보이지 않는 허름한 차림이었고 얼굴에 화장기도 전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지도교수 보다도 한 단계가 높은 부교수이거나 정교수였다. 좀 심한 게 아닌가도 몇 번 생각해 보았다. 정말 이해하기 힘들였다. 내 지도교수가 매일 두들겨대는 컴퓨터, 그리고 연결된 프린터는 상당히 오래 된 것으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고무줄로 묶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교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쓰고 책을 낸다. 쉴새없이 연구하고 가르치고 세미나에 참석하는데 옷치장, 몸치장할 틈이 있겠는가. 1996년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세계에서 1년에 책을 가장 많이 발간하는 나라는 영국이라고 한다.
대학생들의 옷차림은 더욱 가관이다. 대부분 청바지에 튼튼한 가방, 낡은 구두 차림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부모가 돈을 대주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본래 생활 패턴이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종강파티나 주말에 열리는 파티에는 학교 안에 옷 빌려 주는 곳이 있어 여학생은 검은색 드레스, 남학생은 검은 예복을 화려하게 입는다. 우리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 특히 여학생의 옷차림은 그이들에 견주어 너무 화려한 편이다. 영국인 대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여대생을 보고 매일 파티 가느냐고 물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알만하지 않은가. 하긴 지금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 내의 여학생들 얼굴 화장이나 옷차림을 생각해 보면 공부하는 학생차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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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지 않는 너무 검소한 영국 여자들

여자들의 모습에서도 영국 사람의 검소함을 느낄 수 있다. 영국 여자들은 보통 화장을 하지 않는다. 퍼머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 거개가 머리를 뒤로 묶어 일하기 편하게 하고 다닌다. 영국에서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은 패션모델이나 거리의 여자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 여자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할머니들은 퍼머에 화장도 곱게 한다. 은발의 영국 할머니들이 곱게 단장하고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그러나 할머니들을 빼고는 영국에 있는 동안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여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엠에프가 터지자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의 입술이 더욱 진해지고 어두워지면서 한국의 경제가 어두워졌다는 소리를 했다. 정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여자들의 입술 색이 너무 진해지고 어두워졌다. 심지어는 아주 빨갛거나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의 음습한 색을 띠는 경우도 봤는데 그게 내게는 아무래도 좋게 보이지가 않는다. 이제 한국의 여자들도 화장품으로 덧칠한 입술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진하게 화장하는 것은 얼마 전부터의 일로, 일본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에도 기생들이나 진한 화장을 했지 양반규수들은 "화장"이 아닌 "단장"을 했다. 곧, 예의에 벗어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자신의 모습을 가꾸었다는 것이다.
요즈음 일본에서도 진한 화장을 기피하는 풍조가 일고 있다고 한다. 아마 화장품 원료도 외국에서 연간 몇 억 달러 넘게 수입할 텐데, 경제위기시대에 우리나라 여자들도 화장 옅게 하기 운동이나 국산 화장품 이용하기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주거생활에서도 그이들은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영국 어느 지역이나 실내 온도는 18도 정도로 유지되는데 잘 사는 집이나 못 사는 집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영국 할머니들이 실내에서도 어깨에 숄을 두르고, 책을 볼 때는 무릎에 조그마한 담요를 덮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영국 사람들은 춥게 살아야 건강하다고 말하곤 한다. 스코틀랜드 북해에서 석유가 많이 나기 때문에 산유국이나, 그이들은 석유 값을 매우 높게 유지하고 있다. 각종 관련 세금을 많이 부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10월 무렵 1리터에 62펜스(우리나라 돈으로 당시 900원 정도)였으니 그 당시 우리나라보다 기름 값이 비싼 편이었다.
어떤 한국 사람이 런던의 한 호텔에 묵었는데, 너무 추워서 지배인을 불러 방을 따뜻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담요를 한 장 더 가져다 주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영국에서 돌아와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지나치게 난방을 해 주어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지낼 정도였다. 중앙집중식 난방이라 우리 집에서 조절할 수가 없는 상태인 데다 온도를 낮추어 달라고 이야기하면 다른 집에서 춥다며 난리가 난다고 하면서 아내가 관리실에 이야기하지 말란다. 다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말은 많이 하면서 우리의 실제 생활은 산유국 보다 더 기름을 낭비한다.
영국 건물은 외양이 화려하지 않다. 집들은 보통 빨간 벽돌로 지어 수수하게 보인다. 그러나 집안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깔끔하고 우아하다. 거의 모든 집 화장실과 욕실 바닥에도 카펫을 깐다. 밖에는 반드시 잔디밭이 있고 뒤에는 잔디 정원이 있다. 외양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민족이 영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옛것이 대접받는 나라이다. 오래 된 것일수록 값이 나간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무슨 물건이든 쉽게 버리지 않고 고장나면 고쳐 쓰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낡은 것이라도 갈고 닦으면 제 값을 받는다. 주말에 마을 공터에서 열리는 중고품 시장인 카부트 세일뿐만 아니라 상설 중고품점이 많다. 여기서 갖가지 생활용품을 구입해 자기 취향에 맞게 수리해 사용한다.
영국에서 처음 세를 들어간 집은 월 500파운드였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방기구와 가구가 모두 갖추어 진 집(퍼니처드 하우스라고 한다)이었다. 세탁기, 냉장고, 전기 오븐, 식기, 조리기구 들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전기 오븐은 새것이었으나 그 밖에는 상당히 오래 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세탁기, 냉장고가 문제였다. 몇 번 세탁을 했더니 바닥으로 물이 새고 잘 돌아가지 않는 들 하여 말썽이었다. 이탈리아제였는데 두 번째 수리를 받았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수리공이 세탁기가 너무 오래 되어서 더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집주인에게 몇 번 이야기했더니 며칠 뒤 다른 세탁기가 왔는데 핫 포인트라는 영국제품이었다. 수리공에게 물어 보니 전에 있던 것은 15년쯤 된 것으로 매우 오래 되었는데 이번 바꾼 것은 7년 정도 된 것이니 새것이나 다름없단다. 그이는 "베리 뉴"를 연발했다. 7년 된 제품이 새것이나 다름없다니!
냉장고도 너무 낡아 성에가 잔뜩 끼어서 수리점에 부탁했더니 고장난 것이 아니고 몇 달에 한 번씩 녹여서 쓰면 된다고 했다. 아마 20, 30년은 된 제품 같았다. 아내는 이런 냉장고는 한국에서 거저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텔레비전은 집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109파운드를 주고 중고를 하나 샀다. 핀란드제로 10년쯤 되었는데도 성능이 매우 좋았다. 처음 6개월은 보증수리제도라 하여 고장이 나면 무상 수리를 해 주고 그 뒤는 비용을 더 내면 계속 수리해 준다. 보증수리제도가 있어 사실 거의 모든 가전제품은 계속 수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영국 가정부인들은 정말 알뜰하고 검소하다. 오래 된 가구와 접시, 이 빠진 그릇들까지도 대물려 사용한다. 우리는 이 빠진 그릇은 버리거나 화분 받침으로 이용하지만 그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쓴다. 컵도 물론이다.
그러나 그이들의 설거지하는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먼저 싱크대에 물을 가득 받은 뒤, 세제를 푼 물로 그릇을 씻고 다시 깨끗한 물에 헹구지 않고 그대로 마른행주로 닦으면 설거지는 끝이다. 우리 식구가 캠핑을 가서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세제 푼 물에 씻은 뒤 다시 깨끗한 물로 헹구니까 옆에서 설거지하던 영국인들이 의아해 했다. 왜 그럴까? 다른 것은 "위생, 청결"을 지독히 따지면서 설거지만은 대강대강 이렇게 하는 것을 아내와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영국 사람들은 차나 커피 마실 때 주로 머그잔을 사용한다. 특별히 초대한 손님이 아니면 예쁜 커피잔이 아닌 머그잔에 가득 차를 준다. 찻숟가락도 우리같이 화려하고 예쁜 것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손님을 초대할 때 설거지나 음식 접대는 남자들의 몫이다. 우리 식구가 버밍엄 시 바로 옆 조그만 도시에 사는 에디 할아버지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도 일흔 살이 넘은 에디 할아버지가 일일이 음식을 덜어 주고, 설거지도 자기 몫이라며 다른 사람이 거들지 못하게 했다. 그이의 아내인 조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음식 주문을 하고, 우리와 이야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것을 보며 영국에서는 남녀 평등이 가정에서 생활화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있어 옷이 여러 종류가 있어야 하는 우리와 다르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너무 검소하다.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다. 거개의 가정 부인들은 여름 몇 달을 빼고는 모자 달린 점퍼와 진 바지 두어 벌, 굽 없는 구두 또는 운동화만 있으면 충분하다. 내 아내만 해도 여름이라도 추우면 점퍼 입고 다녀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 너무 편했단다. 특별히 초대받았을 때, 음악회 갈 때를 제외하면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나라, 남이 뭘 입든지 상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내는 2년 내내 이렇게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영국에서처럼 옷을 입고 나들이 다니고 친구 만나고 했더니, 다들 쳐다보고 어떤 사람은 생활이 그렇게 궁핍하냐고 묻기도 했단다.
 
영국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은 지역마다 또는 골목마다 토요일, 일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 또는 알뜰시장에서도 볼 수 있다. 집안에서 쓰는 물건을 가까운 공터에 가지고 나와 파는 알뜰시장을 많이 가 보았는데 중고가구, 골동품, 헌 옷, 레코드판, 책 같은 온갖 잡동사니는 다 모이는 것 같았다. 꼬마들도 자기가 쓰던 장난감들을 가지고 나와 판다.
물론, 이러한 물품만 전문으로 파는 상인들이 많이 끼어 있었지만 여기에서 그이들의 검약한 생활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시골 장처럼 값을 깎기 위한 흥정도 벌어지는데 보통 1파운드에서 3파운드(2,000원에서 6,000원)면 괜찮은 중고제품을 살 수 있다(가구는 20파운드에서 50파운드 정도). 영국 전 지역에서 토요일, 일요일이면 매주 어김없이 열리는 알뜰시장은 그이들의 근검절약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곳이었다.
19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맨체스터 시청 바로 앞에 펼쳐진 간이시장은 이방인의 눈에 퍽 이색적으로 보였다. 어느 시청 앞에나 있는 광장에 주말과 휴일에는 영세 상인을 위한 가판대가 설치되어 주로 야채, 과일, 의류들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유럽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니까 유럽 어느 나라나 시청 앞 광장이나 교회 앞뜰을 이용하여 알뜰 주말시장이 열리는 점은 같았다.
내 눈에 비친 영국 사람들의 검약생활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우스갯소리로 영국 경제가 내리막을 걷는 것은 자동차,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모든 내구성 제품을 너무 오래 써서 신제품 개발이 안 되고, 또한 팔리지 않아 생산할 필요가 없어 공장이 문을 닫고 경제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영국 경제가 1970년대 파탄에 직면하여 1976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연간 3퍼센트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1979년 이래 보수당정부의 개혁이 성공한 측면이 가장 큰 요인이겠으나 이렇게 근검절약하는 영국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결국 국가 경제 회생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이제 거품을 빼야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잘 사는 사람이나 더 배운 사람부터 주변 생활을 돌아보고 근검절약하는 우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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