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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뎅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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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432회 작성일 10-08-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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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창안했고,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멸했고,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사랑했던 차가 바로 폴크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 일명 풍뎅이 차다.
흔히 '버그'라고도 불리는 이 폴크스바겐 비틀(풍뎅이차)의 역사는, 격동의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몸소 겪은 사람들이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아이러니한 요소들로 혼재되어 있다. 비틀은 나치 시절 '국민차'로 시작한 초창기부터 현재까지도 한 성공적인 마케팅 회사의 그럴듯한 포장에 싸여 '심플함의 효율성'을 갖는 자동차의 대명사 자리를 굳히고 있다. 기자이자 자칭 문화역사가인 필 패톤(Phil Patton)는 신간 '버그'를 통해 수십 년에 걸친 비틀의 순탄치 않던 역사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디자이너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비뚤어진 창작물로서의 비틀의 탄생이 비틀 역사의 아이러니 중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수치스러운 부분이다.
패톤은 회사의 주요 제품 배후의 실력자가 20세기 대량학살의 중심 인물 중 하나라면, 홍보 측면에서는 어려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패톤은 폴크스바겐사가 비록 전쟁 당시의 징용노동자 중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기념관도 설립했지만, 줄곧 이 역사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꺼려해 왔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히틀러 치하 당시 독일의 거물급들과 포르쉐와의 초기 만남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히틀러가 직접 1934년 그린 원형 비틀의 스케치도 들어 있다.
패톤은 독자들에게 비틀의 정교하고 내구성 강한 엔진과 독특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물론, 유명한 쿠벨바겐을 비롯해 비틀을 변형한 군용 차량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으며, 전쟁 기간 동안 볼프스부르크(Wolfsburg) 공장에 대한 나치 친위대의 혹독한 통치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작은 차 비틀은 항상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전후, 비틀은 독일 주요 수출품이 되었고, 선전(propaganda)의 한 도구가 되었다. "독일 분단과 함께 냉전 당시 갑자기 폴크스바겐사는 경제적, 선전적 도구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이 명확해졌고, 그 경계선은 볼프스부르크에 매우 근접한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폴크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효율성은 서독에서 채택한 자본주의의 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고, 이는 낡은 트라반트와 싸구려 자동차들이 가득 찬 동독과 대조적인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도 또다른 아이러니가 있긴 하지만, 비틀의 인기에 가장 큰 공헌자는 유대인이 설립한 DDB(Doyle Dane Bernbach)사가 진행한 비틀의 전설적인 광고 캠페인이라 할 수 있다. '작은 것을 생각하세요(Think Small)'과 '레몬(Lemon)'의 지면 광고와 더불어, 유머와 현명함이라는 메시지 전달에서 성공한 TV 광고들로 인해 비틀은 신뢰감, 검소함, 깜찍함이라는 이미지를 모두 얻었고, 1970년대에 그 판매량이 급증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 세계 전역에서 비틀의 수가 줄어들고, '골프(Golf)'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탑 디자이너 J 메이즈(J Mays)에 의해 신형 비틀이 제작되었다. 신형 비틀의 생산으로 폴크스바겐사는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
훌륭한 차는 반드시 두각을 나타내는 법인 것 같다며, 이는 아마도 비틀이 단순한 차 이상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패톤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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