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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도요타와 싸움, 한인 주부의 외로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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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435회 작성일 10-06-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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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했던 최씨 가족에게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건 달리던 자동차의 뒷바퀴가 빠져 나오고 에어백이 터지면서 최 씨의 목을 친 순간부터였다.
1997년 보스턴의 매스 턴파이크(Mass Tunpike) 도로 위를 달리던 도요타 코롤라 차량이 뒷바퀴가 빠지는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차량은 구입한 지 1년째. 뒷좌석에는 3살, 5살의 두 아이가 타고 있었고, 운전석에는 유학생의 아내 최혜현씨가 있었다.
최혜현 씨는 당시의 사고로 목을 다쳐 그 때 이후에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됐다.
사고가 난 지 벌써 13년째. 최혜현 씨는 아직도 거대기업 도요타와 끝없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사고 이후 도요타 측은 차량결함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사고 원인을 운전자 과실로 몰기 위해 증거까지 인멸했다.
도요타, 100만달러 합의금 제시
도요타 측으로부터 백만 달러의 합의금이 들어왔다. 줄곧 차량결함을 부정하던 회사측에서 내민 돈 치고는 상당한 액수였다.
그러나 최씨는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진실이 밝혀질 것을 확신했기에 가족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합의금을 받지 않고 진실공방을 위한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최씨의 남편인 최형철씨는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 동 대학원, 일리노이 TAM을 졸업한 엔지니어였다.
사고 이후 남편 최씨는 수백 장의 사진 및 각종 자료를 조사하고 사고차량과 동일모델을 구입해 사고재현 실험을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가운데 차량결함으로 인한 사고임을 확신했다.
특히 사고 당시 최혜현 씨의 목은 뒤에서 오는 충격으로만 오는 상처임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 이는 에어백이 강하게 최혜현 씨의 목을 가격했기 때문에 생긴 반작용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차체 결함임을 확신하고 있던 중에 사고현장에서 여자 경찰이 찍은 사진 속에서 중요한 단서가 발견됐고, 이것은 브레이크 드럼이 뒤로 밀려난 모습이었다. 정상차량이라면 결코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다시 차량 검증에 들어간 남편 최형철 씨는 사고차량이 토잉회사로 옮겨간 후 달라진 것을 알게 됐다. 사고현장에서 찍은 사진에는 스트라우트 바가 떨어졌음을 확인했는데 토잉회사로 옮겨진 이후 스트라우트 바가 제자리에 붙어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최혜현 씨는 누군가 다시 붙여놓은 것이라고 확신했고, 의자 또한 정상적으로 되돌려있었다. 이는 분명한 증거인멸을 위한 행위라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변호사였다. 당시 최씨 가족을 변호하던 변호사는 이를 믿지 못했다고 한다. 또 변호사는 증거가 바뀌고, 일부는 인멸됐음에도 법정에서 이를 진술하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사고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여순경이 사건현장에 대한 정황을 자세히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의 불신으로 패소하게 됐다.
최혜현 씨는 변호사 없이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도요타 측이 선수를 쳐 남편 최형철 씨가 법정에서 과학적인 부분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남편이 배심원과 판사 앞에서 차체 결함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아버린 것이다.
최형철 씨의 전공은 ‘파괴역학’이었다. 그는 학회지에 이와 관련한 논문을 실을 정도의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였다. 도요타측은 무엇이 두려워 그가 법정에서 과학적인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을까. 심증은 확실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는 그 날까지 밝혀질 수 없는 질문이다.
최혜현 씨가 몸이 불편해진 이후 가장 감사한 사람은 남편 최형철 씨다.
최형철 씨는 매일 5시에 하루를 시작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점심시간에 귀가해 최혜현 씨를 돌본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퇴근 후에는 세 명의 아이들과 아내의 저녁을 준비하고 집 안의 모든 가사일을 도맡아 온 지 벌써 13년 째다.
최혜현씨는 남편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싸울 힘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골프를 즐기던 남편은 김치 세일에 더 관심이 많은 주부로 변했고, 당시 사고차량에 함께 타고 있었던 5살짜리 큰 딸은 벌써 장성하여 예일대를 졸업했다.
중학교부터 엄마를 돌봐왔던 큰 딸,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머리를 감겨주는 아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든 자신의 양치질을 도맡아 온 막내아들은 최혜현 씨에게 사랑의 대상이자 미안과 든든함의 존재였다.
이 모든 가족애가 13년 동안 도요타라는 대 기업과 싸운 의지의 근원이고 힘이었다.
최혜현 씨는 “사고 이후 혼자 많이 울었고, 왜 나에게 이런 삶이 오는가에 대해 자괴감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한 엄마들처럼 잔소리도 하면서 기죽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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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
도요타와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법정공방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금전적 손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래도 최혜현 씨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굳게 자신을 다잡는다. 이 싸움이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자신의 사고가 많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인 인터넷에 글쓰기다.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어 손목에 의지한 볼펜 하나로 자음과 모음을 쳐야 했다. 그러나 이젠 이 조차 많이 늘어 스스로의 타자실력을 신기하게 느낄 정도가 됐다.
최혜현 씨는 집안에 쌓인 먼지들 마저도 가사일의 일부로 보여지기보다 도요타와 싸워온 세월의 흔적이라 여긴다. 
대기업과의 싸움에 힘에 부칠 때가 있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를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최혜현 씨는 자신의 아픔을 자신만의 것으로 남겨놓을 수는 없었다. 언제 누구에게 닥칠 지 모르는 아픔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불거진 도요타 리콜 사태를 바라보며 “자고 나니 신데렐라 같은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고 표현하는 최혜현 씨는 “도요타의 횡포로 더 이상 많은 이들이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혜현 씨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제 ABC뉴스에서는 작년 LA 사고 당시 도요타 미국사장이 나와 LA가족참사에 대해 차에 결함이 없다고 너무도 점잖게 해명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거짓말을 너무도 점잖게 하는 모습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리고 아나운서가 도요타에서 LA 참사에 대해 드라이버 error라 했었다는 말을 들으니 지난 법정에서 수 없이 나의 실수로 몰아갔던 재판 일들이 생각난다.
13년간 오고간 서류에 무수히 써있는 Mrs.Choi 드라이버 fault, 그것도 모자라 내가 소설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그들, 재판시 과학적인 것을 잘 모르는 배심원들을 향해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 토요타 변호사와 엑스포트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문제되는 것은 고쳐갔다면 오늘의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13년 동안 나에게 던진 도요타의 많은 위협과 거짓말은 오늘의 사태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도요타 리콜 사태를 보며 인과응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루 종일 LA렉서스 사고차량 가족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그들의 영면을 위하여 기도를 올린다.”
말이 쉬워 13년이지, 영겁의 시간만큼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겪었을 최혜현 씨와 그 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그녀는 더욱 강해졌다. 거대기업 도요타와 싸움을 치르며 더 강하고 단단해지는 최혜현 씨, 그녀의 투쟁이 하루 속히 승리를 거둬 강함보다 더 강한 ‘평안함’이 그녀를 웃음짓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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