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계의 돈키호테 야후의 변신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494회 작성일 10-08-03 14:02
본문
돈벌이가 잘 돼 행복했던 1990년대말 야후는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향해 경솔하게 뛰어드는 인터넷계의 돈키호테 같은 존재였다. 직원들이 길 안내 서비스나 온라인 게임을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면 회사는 기꺼이 그 기능들을 무료로 사이트에 추가했다.
오늘날‘제품 평가위원회’라고 명명된 야후의 한 간부 그룹은 지난해 수십개의 아이디어가 올려졌지만 몇가지 제안만이 실행에 옮겨졌다. 야후는 닷컴기업의 거품을 상징하는 대표적 기업이었고 야후 로고 뒤의 느낌표는 당시의 태평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주식시장에서 야후의 가치가 디즈니를 앞섰을 정도였다. 오늘날 야후의 가치는 당시의 8% 정도 수준으로 낮아졌고 로고의 느낌표도 훨씬 더 겸손하면서도 안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마침표로 교체됐다.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통신업체들과 연계해서 일하며, 검색 페이지상의‘명당자리’에 특별 유료 광고를 실어주게 되면서 야후는 닷컴기업들이 앞으로‘진짜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지난달 야후는 3분기째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했던 주인공은 바로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테리 시멜(59)이다. 상당 기간 워너 브러더스의 영화·음악 담당 책임자로 근무했던 그는 2년전 할리우드를 떠나 실리콘 밸리로 자리를 옮겼다. 야후에 영입된 그는 한번에‘대박’을 노리는 대신 작은 것들을 여러개 성공시킴으로써 결국에는‘대박’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예컨대 e메일 저장용량 추가제공 서비스, 야후에 게재된 모든‘Personals’(친구나 애인을 만들기 위해 개인들이 올려 놓은 등록물) 목록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권한 등을 유료로 제공하는 한편 인건비를 줄이는 등 긴축살림을 하자는 것이었다.
야후의 설립자 제리 양(34)이 시멜을 영입한 것은 닷컴기업들의 몰락으로 4억달러에 이르던 광고수입이 갑자기 증발하면서 야후가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시멜이 인계받은 야후는 배너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한가지 재주만 부릴 줄 아는 망아지’와 같았다.
그는 4백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전망이 별로 좋지 않던 HotJobs.com이라는 취업 안내 사이트를 인수했다. 이 사이트는 고용불안이 만연한 현시점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통신업체 SBC 커뮤니케이션스의 사용자가 모뎀 서비스와 광대역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항상 첫페이지로 야후가 뜨도록 하는 계약도 맺었다.
또한 시멜은 야후가 그동안 가장 유망한 수익사업 분야인 ‘검색’ 기능을 간과해 왔다는 점을 간파하게 된다. 야후의 설립자인 양과 데이비드 필로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웹상에 있는 정보를 찾는 것을 쉽게 만들 목적으로 1992년 야후를 만들었다. 그후 이들은‘웹 포털 사이트’로 거듭나기 위해 주력하면서 직원들이 직접 정리해 운영하던 야후의 디렉토리들을 늘리기 위해 컴퓨터로 운용되는 다른 검색엔진 회사들과 계약을 맺었었다.
그러나 구글처럼 컴퓨터로 운용되는 검색엔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디지털 정보를 분류하는 데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시멜은 구글의 주요 경쟁사인 잉크토미를 2억3천5백만달러에 매입함으로써 컴퓨터 운용 검색엔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야후는 또 1년전부터 검색 페이지의 공간을 광고주들에게 판매하면서 현재까지 7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오늘날‘제품 평가위원회’라고 명명된 야후의 한 간부 그룹은 지난해 수십개의 아이디어가 올려졌지만 몇가지 제안만이 실행에 옮겨졌다. 야후는 닷컴기업의 거품을 상징하는 대표적 기업이었고 야후 로고 뒤의 느낌표는 당시의 태평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주식시장에서 야후의 가치가 디즈니를 앞섰을 정도였다. 오늘날 야후의 가치는 당시의 8% 정도 수준으로 낮아졌고 로고의 느낌표도 훨씬 더 겸손하면서도 안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마침표로 교체됐다.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통신업체들과 연계해서 일하며, 검색 페이지상의‘명당자리’에 특별 유료 광고를 실어주게 되면서 야후는 닷컴기업들이 앞으로‘진짜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지난달 야후는 3분기째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했던 주인공은 바로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테리 시멜(59)이다. 상당 기간 워너 브러더스의 영화·음악 담당 책임자로 근무했던 그는 2년전 할리우드를 떠나 실리콘 밸리로 자리를 옮겼다. 야후에 영입된 그는 한번에‘대박’을 노리는 대신 작은 것들을 여러개 성공시킴으로써 결국에는‘대박’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예컨대 e메일 저장용량 추가제공 서비스, 야후에 게재된 모든‘Personals’(친구나 애인을 만들기 위해 개인들이 올려 놓은 등록물) 목록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권한 등을 유료로 제공하는 한편 인건비를 줄이는 등 긴축살림을 하자는 것이었다.
야후의 설립자 제리 양(34)이 시멜을 영입한 것은 닷컴기업들의 몰락으로 4억달러에 이르던 광고수입이 갑자기 증발하면서 야후가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시멜이 인계받은 야후는 배너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한가지 재주만 부릴 줄 아는 망아지’와 같았다.
그는 4백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전망이 별로 좋지 않던 HotJobs.com이라는 취업 안내 사이트를 인수했다. 이 사이트는 고용불안이 만연한 현시점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통신업체 SBC 커뮤니케이션스의 사용자가 모뎀 서비스와 광대역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항상 첫페이지로 야후가 뜨도록 하는 계약도 맺었다.
또한 시멜은 야후가 그동안 가장 유망한 수익사업 분야인 ‘검색’ 기능을 간과해 왔다는 점을 간파하게 된다. 야후의 설립자인 양과 데이비드 필로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웹상에 있는 정보를 찾는 것을 쉽게 만들 목적으로 1992년 야후를 만들었다. 그후 이들은‘웹 포털 사이트’로 거듭나기 위해 주력하면서 직원들이 직접 정리해 운영하던 야후의 디렉토리들을 늘리기 위해 컴퓨터로 운용되는 다른 검색엔진 회사들과 계약을 맺었었다.
그러나 구글처럼 컴퓨터로 운용되는 검색엔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디지털 정보를 분류하는 데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시멜은 구글의 주요 경쟁사인 잉크토미를 2억3천5백만달러에 매입함으로써 컴퓨터 운용 검색엔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야후는 또 1년전부터 검색 페이지의 공간을 광고주들에게 판매하면서 현재까지 7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