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 퍼스트레이디’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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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356회 작성일 10-08-0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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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화전문채널 HBO는 지난 8월 원로 여성 언론인 헬렌 토머스(88)에 대한 다큐멘터리 ‘Thank You, Mr. President: Helen Thomas at the White House(감사합니다, 대통령: 백악관의 헬렌 토머스)’를 방영했다. 생존한 현역 기자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워싱턴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그리디론클럽’ 연례 만찬에서 헬렌 토머스의 손을 잡고 ‘이별의 노래’를 부른 뒤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으로 만찬을 마무리했다.
헬렌 토머스의 이름 앞에는 늘 ‘legendary(전설적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 언론계에 입문해 66년째 일선에서 뛰는 기자, 존 F 케네디부터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미국 대통령 9명을 취재한 기자, 미국 언론계에서 ‘주변인’에 불과하던 여성 기자의 지위를 남성과 동등하게 끌어올린 인물…. 이것이 그가 ‘미국 언론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이유들이다.
백악관 기자실 ‘금녀의 벽’ 깨
토머스는 1920년 켄터키 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시리아계 이민자였다. 성장기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그는 고등학생 때 교지에 자신의 기명 기사가 실린 것을 계기로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시간 주 웨인대(현 웨인주립대)를 졸업한 토머스는 1943년 UPI통신에 입사하면서 저널리스트의 길에 들어선다. 당시 주급은 24달러였다.
토머스는 이때부터 수많은 ‘여기자 최초·유일’의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여성 백악관 출입기자, 최초의 여성 그리디론클럽 회원은 물론 닉슨이 1972년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나섰을 때 동행 취재한 유일한 여성 인쇄매체기자이기도 했다. 76년에는 세계 연감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 명단에도 올랐다.
‘영원한 UPI 우먼’을 자임하던 토머스는 입사 57년 만인 2000년 5월 UPI와 결별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소유인 ‘뉴스 월드 커뮤니케이션’이 UPI를 인수한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천직’이니만큼 오래 쉬지는 못했다. 두 달도 채 지니지 않아 허스트 신문사에 합류, 국내 문제와 백악관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
토머스는 부시 현 대통령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일컬을 만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온 언론인으로 꼽힌다. 이라크 침공 등 부시의 대외 정책에 대한 불신이 주된 원인이다. 토머스는 2006년 3월 부시의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라크를 침공한 대통령의 결정은 수많은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희생을 낳았습니다. 공개적으로 밝혀온 침공 사유는 모두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석유 때문도 아니고, 이스라엘 때문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도대체 뭡니까?”
“대통령에 다가간다고 진실 얻지 못해”
토머스는 지난달 HBO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대통령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진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앉아 브리핑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는 ‘권력’을 누렸지만, 드러난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더욱 내밀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닉슨을 사임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이들이 백악관 출입기자가 아니라 워싱턴포스트의 사건기자 2명(칼 번스타인·밥 우드워드)인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또 자신이 취재한 9명의 대통령 중 케네디와의 인연이 각별했다고 회고하면서 “케네디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게 안타까워 서둘러 ‘생큐,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인사하며 회견을 끝낸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토머스는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다. 지난 5월에는 위장 질환을 앓아 일을 손에서 놓기도 했다. 하지만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열정이 남아 있는 한 역사의 현장을 지킬 것 같다. 토머스는 고교 시절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백악관을 취재하는 기자가 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화재 사건이 아니라 항상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녀 시절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그는 묻고 또 묻고, 쓰고 또 쓸 것이다. 지난해 리모델링한 백악관 브리핑룸의 좌석 중 토머스의 자리에는 유일하게 동판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워싱턴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그리디론클럽’ 연례 만찬에서 헬렌 토머스의 손을 잡고 ‘이별의 노래’를 부른 뒤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으로 만찬을 마무리했다.
헬렌 토머스의 이름 앞에는 늘 ‘legendary(전설적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 언론계에 입문해 66년째 일선에서 뛰는 기자, 존 F 케네디부터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미국 대통령 9명을 취재한 기자, 미국 언론계에서 ‘주변인’에 불과하던 여성 기자의 지위를 남성과 동등하게 끌어올린 인물…. 이것이 그가 ‘미국 언론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이유들이다.
백악관 기자실 ‘금녀의 벽’ 깨
토머스는 1920년 켄터키 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시리아계 이민자였다. 성장기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그는 고등학생 때 교지에 자신의 기명 기사가 실린 것을 계기로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시간 주 웨인대(현 웨인주립대)를 졸업한 토머스는 1943년 UPI통신에 입사하면서 저널리스트의 길에 들어선다. 당시 주급은 24달러였다.
토머스는 이때부터 수많은 ‘여기자 최초·유일’의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여성 백악관 출입기자, 최초의 여성 그리디론클럽 회원은 물론 닉슨이 1972년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나섰을 때 동행 취재한 유일한 여성 인쇄매체기자이기도 했다. 76년에는 세계 연감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 명단에도 올랐다.
‘영원한 UPI 우먼’을 자임하던 토머스는 입사 57년 만인 2000년 5월 UPI와 결별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소유인 ‘뉴스 월드 커뮤니케이션’이 UPI를 인수한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천직’이니만큼 오래 쉬지는 못했다. 두 달도 채 지니지 않아 허스트 신문사에 합류, 국내 문제와 백악관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
토머스는 부시 현 대통령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일컬을 만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온 언론인으로 꼽힌다. 이라크 침공 등 부시의 대외 정책에 대한 불신이 주된 원인이다. 토머스는 2006년 3월 부시의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라크를 침공한 대통령의 결정은 수많은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희생을 낳았습니다. 공개적으로 밝혀온 침공 사유는 모두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석유 때문도 아니고, 이스라엘 때문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도대체 뭡니까?”
“대통령에 다가간다고 진실 얻지 못해”
토머스는 지난달 HBO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대통령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진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앉아 브리핑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는 ‘권력’을 누렸지만, 드러난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더욱 내밀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닉슨을 사임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이들이 백악관 출입기자가 아니라 워싱턴포스트의 사건기자 2명(칼 번스타인·밥 우드워드)인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또 자신이 취재한 9명의 대통령 중 케네디와의 인연이 각별했다고 회고하면서 “케네디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게 안타까워 서둘러 ‘생큐,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인사하며 회견을 끝낸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토머스는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다. 지난 5월에는 위장 질환을 앓아 일을 손에서 놓기도 했다. 하지만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열정이 남아 있는 한 역사의 현장을 지킬 것 같다. 토머스는 고교 시절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백악관을 취재하는 기자가 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화재 사건이 아니라 항상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녀 시절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그는 묻고 또 묻고, 쓰고 또 쓸 것이다. 지난해 리모델링한 백악관 브리핑룸의 좌석 중 토머스의 자리에는 유일하게 동판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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