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10주년 맞춰 흑인·라틴계 동원 ‘테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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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931회 작성일 15-07-24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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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9·11테러 10주년을 맞는 올 9월을 전후로 미국을 겨냥한 초대형 테러를 준비중이었으며, 미국정보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랍계 무슬림 대신 흑인이나 라틴계를 알카에다 테러요원으로 집중적으로 영입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이 빈 라덴 자택에서 입수한 일기와 각종 컴퓨터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테러 계획과 그의 일상생활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빈 라덴의 9·11 10주년 기념 테러 구상과 조직운용술 = 워싱턴포스트는 12일 미 정보당국자의 발언을 인용, "미군 특수부대가 아보타바드 저택에서 노획한 빈 라덴의 일기 및 컴퓨터 저장문서 등을 확인한 결과 그가 10년 전 9·11 테러와 같이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공격을 재현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빈 라덴은 특히 조직원들에게 "미국에서 억압받은 비(非) 이슬람교도들을 찾으라"고 주문, 9·11 테러 10주년 기념 공격을 위해 흑인이나 라틴계 채용을 계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당국자는 특히 "빈 라덴은 '미국과 서방국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다른 조직원들은 빈 라덴이 예멘, 소말리아, 알제리와 같은 비교적 쉬운 목표물을 제쳐놓은 채 미국에만 집착하는 데 대해 짜증을 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빈 라덴은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알카에다에 대한 세부적인 작전지시보다는 더욱 큰 그림에서 전략적인 지시를 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옥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죄조직의 보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 당국자는 "빈 라덴은 게으르고 자기만족에 빠졌다"면서 "그는 만일의 공격을 피해 탈출하거나 자료들을 없애기 위한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정보당국 분석 결과 빈 라덴은 연락책을 통해 전 조직책들에게 e메일 지침을 내리는 형식으로 조직을 관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아보타바드 은신처엔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았으나 빈 라덴은 테러구상 및 지침을 컴퓨터에 입력한 뒤 플래시 드라이브에 옮겨담아 연락책에게 줬고 연락책은 아보타바드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인터넷 카페에서 이 메시지를 복사, e메일로 조직책에게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연락책은 또한 e메일로 들어온 조직책들의 보고를 플래시 드라이브에 담아 빈 라덴에게 전달했다.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아보타바드 저택에서 100개의 플래시 메모리 드라이브를 압수했다.
◆ 빈 라덴의 최후 행적 =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태어난 빈 라덴은 22세때인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를 조직한 이후 지난 5월2일 미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될 때까지 삶의 대부분을 아프간에서 보냈다. 1994년부터 수단에서 건설업을 했는데 1996년 테러관여 사실이 발각되면서 추방됐고, 이후 1996년 5월 아프간 잘랄라바드로 이동했다. 이후 빈 라덴은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머물다가 2001년 10월7일 미군이 9·11 테러에 대한 보복공격을 시작하자 수도 카불로 피신한 뒤 미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11월13일 아프간 북서부 산악지대인 토라보라 동굴로 갔다.
미군의 12월 토라보라 공습때 빈 라덴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다. 미 당국은 이후 빈 라덴이 토라보라 공습으로 인해 조직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아프간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잠행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2001년 12월 체포돼 후에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송된 측근 아와르 귤의 최근 진술에 따르면 빈 라덴은 토라보라 공습 이후 잘랄라바드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빈 라덴은 최종 은신처인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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