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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vs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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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11회 작성일 10-11-2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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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가수 조영남보다 세 살쯤 많다. 모두 50대 후반이고 사는 방법이나 하는 일이 다르다. 취향이나 사고방식도 워낙 달라 우연히 부딪쳐도 서로 멀뚱멀뚱할 것 같은 사람들이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보도를 통해서 두 사람에 관한 일을 접할 때 직업병처럼 떠오르는 공통적인 단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 용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에 의하면 ‘콤플렉스’란 ‘우리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거나 화를 내게 하거나 또는 목을 메게하는 마음속의 어떤 것’이다.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린 흔히 “아픈 곳을 찔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콤플렉스란 바로 그 아픈 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의 덩어리다. 오늘날에는 콤플렉스란 말이 열등감과 같은 뜻으로 일상 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자기 내면보다는 타인들의 평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타인이 자신을 비춰 주는 거울인 셈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그들의 평가와 기대에 자신을 끊임없이 맞추다보면 상대적인 열등감이 발동한다. 열등감이란 객관적일 수 없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감정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주관적인 경험을 근거로 많든 적든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폐소공포증으로 동굴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무실의 규모도 엄청나게 크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대부호 하워드 휴즈(공교롭게도 이건희 회장의 별명 역시 ‘하워드 휴즈’다)는 극단적 결벽증과 세균공포증같은 강박증 증상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 거의 은둔자처럼 일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대부’로 유명한 배우 알 파치노는 자신의 작은 키에 심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젊은 아가씨들도 꺼릴 정도로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고 한다.

개인적 콤플렉스는 인간의 심리적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은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의 순서로 심리적인 발달을 하며 성장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도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소아적 의존성을 가진 미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항문기적 성향인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강박적인 삶을 사는데, 그들은 세상을 경쟁의 원리에 따라 바라본다.

그에 반해 남근기적 성향인 사람은 즐거움 자체를 추구한다. 그들에게 경쟁과 완벽은 의미없는 논리가 된다.

이렇게 분류할 때 두 남자, 이건희 회장과 조영남씨는 어디에 속할까.
나는 이건희 회장은 전형적인 항문기적 성향의 소유자고, 가수 조영남은 그것을 뛰어넘은 남근기적 성향의 사람으로 본다.

이건희 회장은 왜 항문기적 성향에 머물고 있으며 조영남씨는 또 어떤 이유로 그것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남근기적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의 내면세계 분석을 통해 정신의학의 중요한 코드 중 하나인 ‘콤플렉스’의 실체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 살펴 보자.

황제의 열등감?!

이건희는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일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가장 큰 삼성그룹의 총수다.
이제는 비단 삼성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조차도 그의 행동하나 말 한마디를 관심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가 암진단을 받고 치료를 할 때 많은 사람이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지금은 완치가 되어 이건희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하며 활발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가 암치료를 위해 미국에 머물러 있을 당시 일각에서는 ‘포스트 이건희’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기도 했다.

내가 이건희에 관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그때다. 이건희라는 인물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글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경영활동을 비판하거나 그의 인간적 특성을 자극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건희의 특이한 카리스마와 관련된 심리적 메커니즘을 정신과적 영역에서 살펴보고자 함이다.

이건희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경제적,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같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건희라는 인물이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 정신과 의사가 이건희를 보는, ‘또다른’ 관점 정도로 받아들여 졌으면 한다.

이건희는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황태자’를 거쳐 ‘황제’가 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가 한 다이어트를 ‘황제다이어트’ 라 칭하고, 그가 사람들에게 베푼 정을 가리켜 ‘황제의 정’이라는 희안한 단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나는 이건희를 볼 때마다 정상에 선 사람의 고독감보다는 ‘황제의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건희에게 ‘열등감’이란 단어는 가당치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인간 이건희’의 일생을 찬찬히 관찰하다 보면 열등감이란 키워드만큼 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생긴다.

그의 인생을 그림에 비유할 때, 그림의 바탕색을 결정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바로 열등감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열등감이 인간 이건희에게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가 오너로 있는 삼성그룹에는 어떤 형태로 스며들어 있을까.

'삼성은 기필코 달라야 합니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카피가 있었다. 오만할 만큼 당당한 자신감의 발로였고, ‘역시 삼성’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을 보이기까지 그들이 쏟아 부었을 노력에 대해서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처절할만큼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게 바로 삼성의 일등 자존심이고 기업문화다.

그런 자존심이나 기업문화가 좋거나 나쁘다는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그 이면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살펴보자는 말이다.

IMF를 거치면서 삼성의 일등주의는 현실세계에서 구체적으로 그 위력을 보이고 있다. 2001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그룹이 자산 기준으로 현대그룹을 물리치고 재계 1위 기업이 됐다고 발표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삼성그룹은 국내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 고가주에다 블루칩 대접을 받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2000년) 12월 결산 상장업체들이 일년동안 거둔 수익 중에서 삼성전자 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69%나 되었는데,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만 6조 1000억에 달해 법인세만 1조원을 넘게 납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과 기타 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라는 말이 나돌만큼 삼성의 독주는 발군이며, 일등주의에 대한 삼성의 자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한 교수는 “삼성의 강점인 ‘일등주의’는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등에 대한 집착은 끊임없는 내적 열등감의 발로인 측면이 있다.

정신분석학자 애들러는 자신의 실패나 무력(無力)을 변명한다든지 합리화한다든지 하는 의식적인 작용을 ‘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자기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엄두도 못 낼 만큼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말더듬이였다가 지하실에 틀어박혀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 훗날 웅변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린 그리이스의 데모스테네스는 ‘열등 콤플렉스’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삼성은 다분히 ‘강박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조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엄두도 못낼만큼 엄청난 노력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처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삼성만의 독특한 OJT(현장실무교육)나 돌다리도 열번 이상 두들기고 건넌다는 의사결정 방식 등이 삼성의 강박적 기업문화를 증거하는 하나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강박적 기업문화를 기반으로 삼성은 국내외 시장에서 수많은 일등제품을 가지고 있는데 치밀하고 섬세한 강박적 문화의 순기능이 가장 도드라진 대표적 분야는 반도체일 것이다.

내 개인적 생각에 반발심이 생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강박적 기업문화’와 관련된 사례들과 그 의미들에 대하여 더 얘기하고 싶지만, 이 글의 목적은 삼성의 기업문화를 진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건희라고 하는 한 인물을 살펴보자는 데 있으므로 그의 개인적 성향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자.

인간 이건희의 내면을 분석하다 보면 삼성의 기업문화가 ‘강박적’이라는 내 개인적 진단이 설득력을 얻는, 의외의 소득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이건희에겐 시비도 걸지 마라

이건희의 성격을 정신의학적으로 규정해보면 ‘강박적 성향’에 해당한다. 이 성향의 심리적 축은 열등의식이다.

강박적인 성격의 특징을 한번 살펴 보자.

첫째, 그들은 감정기능이 빈약하다. 감정표현이 아주 드물며 감정대신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사고(思考)이고 원칙이다.

이건희는 취미가 ‘연구와 생각’이라고 할 정도로 감정보다는 사고(思考)가 비대한 사람이다. 그의 방은 한 벽에는 침대, 한 벽에는 책, 또 한 벽에는 대형 TV, VTR, 오디오가 있다고 한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엔 책상과 의자가 있는데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 이건희는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몇 시간이고 꼼짝앉고 그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퇴근 후에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기 방에 들어가 한번 앉아버리면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도 2-3일에 한번씩 아빠방에 와서 ‘아빠’소리 한번하고 겨우 5분정도 이야기 하는 게 고작이었단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가족끼리 외식한 횟수도 2-3번이 전부이고 부인과 맞선을 볼 때도 인사만 하고는 한마디도 묻지 않은 채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몇 마디 주고 받았을 뿐이었다고 한다.

좀 극단적인 진단이긴 하지만 이건희는 인간관계에서 감정적 교류가 거의 불가능한 사람처럼 보인다.

강박적 성향의 소유자는 타인과의 감정적, 정서적 접촉을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에는 권위에 대한 공포가 내재화돼 있고 그와 함께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강한 분노와 적개심이 혹시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기때문이다.

1997년 10월에 발간된 독일의 경영전문 월간지 ‘매니저’에는 삼성그룹을 분석한 특집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를 보면 한국에서 이건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치명적인지를 한 독일 최고경영자가 서울에서 겪은 일을 소개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독일의 최고경영자는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커 두번이나 항의해도 통하지 않자 세 번째 항의차 옆집으로 갔다. 그러자 관리인은 그 집이 이건희 일가가 살고 있는 저택이라고 말하면서 독일인이 세든 집도 이미 이건희 소유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건희가 항의 소식을 듣고 옆집을 매입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인 문제를 만나면 아예 그 해결 과정을 피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적이던 선친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삼성의 무노조 정책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아닐까.

삼성은 노조를 봉쇄하는 대신 타사와는 전혀 다른 사원복지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의 일반직원용 기숙사는 이례적으로 1인 1실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수많은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불평을 들으면서 심신이 지친 사람은 저녁시간만이라도 혼자서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데, 그런 사람의 본성을 고려한 방배치란다. 그런 복지정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삼성은 사람에 대해 그만큼 치밀하다는 말이다.

재택근무를 즐기는 이건희는 24시간을 거의 개와 함께 지낸다고 한다. 개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을 정도로 개를 좋아하는 데, 그는 그 이유를 “개는 거짓말 안하고 배신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생을 ‘황태자’와 ‘황제’의 위치에서 직원들의 충성을 받아온 사람이 이건희다. 배신을 많이 당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란 것이 그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고 사람과의 교감이란 그에겐 그토록 위험한 일인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비소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두번째 특징은 원리원칙을 따지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할 때 ‘일하는 것 자체’가 방해받을 정도로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방식 그대로 정확히 복종하지 않으면 비난하고 같이 일하길 꺼려한다.

이건희는 삼성직원들에게 신경영을 전수하면서 “내 말을 적어도 50번 이상 반복해서 테이프를 통해 들어라. 자꾸 들어 외울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몸에 배게되고 실천이 가능해진다”면서 자신의 방식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삶의 철학이란 것이 반복해서 듣고 보는 것만으로 체득되는 것인가.
강박적 성향의 사람은 매우 사변(思辨)적이어서 이론이나 개념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면 끝도 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거의 배제되어있기 때문에 논쟁을 하다보면 지루하고 공허하다.

말은 맞는데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중앙일보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이건희는 “나보다 일본에 대해서 더 아는 사람있으면 나와봐라. 나는 일본의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짜리 비디오테이프 45개를 수십번씩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원들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되어야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육아전서를 최소한 30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도 그는 아이와의 정서적 교류보다 공부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건희는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하며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발로 런던, 동경, 오사카등을 돌며 해외 현지회의를 주재했는데 밤낮없이 8시간에서 최장 16시간까지 이어지는 마라톤식 회의로 화제가 되었다.

이때 이건희는 “더러 24시간 잠을 안자며 구상할 때도 있었지만 48시간 꼬박 안 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주위사람들은 그의 집착을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문제가 있을 때 그 메카니즘이 머리속에서 풀리는 순간 문제는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하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가 기계에 열광하고 자동차를 수도 없이 분해조립했다는 것도 이런 성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는 인간관계도 그러한 원칙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눈치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삼성 안에서 국회의원에 나와도 떨어질‘ 정도로 사람 이름을 못 외는 데 천재적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그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자기의 안으로만 집중되기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사변적이고 강박적이며 상상이나 공상의 세상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삼성을 우리나라 일등기업으로 성장시킨 탁월한 경영인 이건희가 삼성자동차같은 무리수를 둔 것도 그런 증상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기계에 열광하고 페라리 자동차 수집가인 이건희 회장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삼성마크의 자동차를 갖는 데 집착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오너의 취미가 부른 참극’이라는 소리까지 들은 삼성차는 모두 4조원 이상이 투입되었지만 프랑스 르노사에 3000억원에 매각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삼성차의 후유증때문이었는지 그는 오랫동안 예전보다 더 자폐적인 생활을 해오다가 99년말,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는 천문학적 액수인 150억원을 기부하면서 다시 경영활동에 복귀했다.

독립군정신이 곧 기업정신?!

강박적 성격의 세 번째 특징은 도덕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도덕적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반듯하고 금욕적으로 살던 남자에게 어느날 숨겨둔 여자와 아이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처럼 지나친 도덕적 무장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은 그만큼 일탈의 욕망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의범절이나 에티켓 같은 것을 지나칠 정도로 중시하는데, 이것을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적개심을 감추는 가면으로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이들은 어릴 때 권위적인 부모밑에서 성장하며 그 권위에 압도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위에 굴복하면서 자기의 욕구들은 무의식 저 밑바닥에 숨겨 놓은 채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생활을 추구한다.

또 자기가 한때 저항했던 그 권위를 스스로 내면화해 나가며 자신도 권위적인 사람이 되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신의 욕구가 억압당한 데 따른 분노, 적개심을 숨기고 있다.

이건희도 성격적으로 이러한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건희는 자신이 추구하는 경영철학을 “기업이란 이윤추구 집단이 아니라 높은 도덕성과 강한 동지애로 뭉쳐 최고의 효율을 통하여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모임”이라고 정의한다.

일제치하의 독립군에게나 요구함직한 덕목을 절대적인 이윤추구 집단인 기업에 적용하려 하는 것이다. 허황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기업이나 종교단체, 학교, 사회단체 등은 지역사회나 개인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각기 담당해야할 나름의 몫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기업의 오너이면서 완전한 도덕성을 꿈꾸는 이건희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요새 과학으로는 밥 안 먹고도 살게 되어있다. 난 밥을 안 먹고, 하루종일 생선 몇조각과 야채만 집어 먹고있다. 금욕, 권력욕, 식욕. 이 세가지가 사람을 버린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없애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 총재가 패배한 가장 결정적 원인은 그가 줄기차게 강조한 ‘도덕성‘때문일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덕성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울만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의 아들이 병역기피 혐의를 받자 그의 존재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이다.

도덕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한점 부끄러움이 살 수 있을 만한 사람은 타계한 테레사 수녀 정도의 몇몇 성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언행이 일치하는 완벽한 도덕적 존재가 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건희는 ’도덕경영‘을 부르짖으면서 거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완벽주의는 강박성향의 한 표현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의 내적 기준과 원칙에 엄격하고 특히나 도덕이라는 절대선을 자기의 푯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삶에 잔소리가 많아지고 사소한 부분까지 침해하게 된다.

영자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96년 9월에 한국 재벌 총수들의 위압적인 자세를 꼬집는 기사를 실었는데, 특히 이건희 회장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직원들에게 취침시간까지 가르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한다면서 구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초일류 사원은 인간적인 면에서도 초일류가 되야 한다. 업무의 질은 인간의 질, 나아가서 삶의 질과 이어져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삼성맨은 직장인으로서뿐 아니라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올바른 도덕심을 갖춘 교양인, 국제적 감각과 매너의 소유자, 신뢰받는 동료애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질’로 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건희가 주장하는 초일류주의, 질경영, 도덕경영을 다른 말로 하면 ‘강박 경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강박적 성향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양심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정신적인 건강함이나 성숙함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소한 문제에는 지나치게 양심적이다가도 정작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 잣대와 전혀 반대의 행동을 보이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그의 아들 이재용씨의 경영승계문제와 관련된 잡음들이 그것이다. 이건희의 도덕추구 성향은 마치 수천만원짜리 밍크코트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시장에서 콩나물 값 100원을 깎으며 스스로를 알뜰하고 절약하는 주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성냥팔이 소녀,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다

그렇다면 그의 도덕경영은 어디서 연유된 것인가.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그의 도덕적 강박관념은 비현실적인 내적 공포심에서 생긴 것이다.

이건희의 내적 공포심의 대상은 그의 아버지, 이병철 선대 회장이다. 이병철 회장은 새끼를 벼랑밑으로 떨어뜨려서 살아남은 새끼만을 키우는 사자를 예로들면서 강한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도 ‘어설픈 정’(?)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유태인은 자식에게 ‘부모라도 믿지말라, 의지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태인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건희는 늘 혼자였고 ‘혼자의 삶’에 익숙해졌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가 없었다는 그의 담담한 얘기를 듣다보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는 골프를 쳐도 비디오를 보면서 철저히 원리를 연구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며, 또 필드에서 골프를 즐기기 보다는 연습장에서 각종 샷을 날려보고 그 탄도와 정확성을 따져보는 게 더 즐겁다고 말한다.

취미생활도 승마, 스포츠카 타기, 기계 조립하기처럼 주로 혼자서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 세상과 사업을 대하는 그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건희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향의 친할머니밑에서 자랐다. 사업하는 아버지 뒷바라지 때문에 대구에 나가 있던 엄마 품에 처음 안겨본 것이 네살 때였고 그때 엄마를 처음 보았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엄마’라 부르면서 살았던 것이다.

특정 대상과 가까이 있으려 하고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되는 유아들의 성향을 “애착(Attachment)”이라고 한다.

사람은 초기 발달과정에서 부모와의 따뜻한 애착관계에 결핍이 생기면 성장 과정 중에 대인공포증이나 불안장애 등의 여러 가지 정서적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건희는 인생 초기의 기본적인 애착관계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계속 그런 구조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일본을 배워라’는 아버지의 엄명으로 연락선을 타고 혼자 일본으로 건너간 게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그 당시 일본에선 한국이란 나라를 ‘전쟁과 가난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일본 아이들이 소년 이건희를 어떻게 상대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와 관련된 이건희의 말을 들어보자.

“가장 민감한 때에 인종차별, 분노, 객지에서의 외로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런 모든 걸 다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에게라면 뭐든지 지고 싶지 않아요. 상품은 물론이고 레슬링, 탁구, 뭐든지 일본에게만 이기면 즐거워요”

어린시절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소년 이건희는 또다시 일본이라는 유학지에서 엄청난 열등감을 경험하며 영화 속에 빠져 든다.

초등학교 3년간 그가 본 영화가 1000편이 넘는다고 하니, 그가 영화 속에서 홀로 보낸 공상의 시간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혹한속에 내던져진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불 속에서 따뜻한 난로와 엄마를 보듯이 소년 이건희에게 영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과 같은 유일하고 안락한 안식처였던 것이다.

그런 경험때문인지 그는 지금도 가끔 뭔가 꽉 막히면 며칠씩 자기 방에 파묻혀 비디오를 보며 소일하다가 무언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영화적인 결론, 영감의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때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던가요?”
“나면서부터 떨어져사는 게 버릇이 돼서요. 저희 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다 모인 게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모두 모이게 돼서 사진관에 연락해 사진을 찍은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혼자있고 떨어져 있고 하는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게 보통인 것 같아요”

정상적인 가족 개념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입장에선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 고백이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에 지나치게 엄격했던 아버지에 대한 공포의 감정이 내재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그만큼의 분노의 감정도 존재할 것이다.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는 어린 시절에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에 대한 ‘공포와 분노’,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에 대한 ‘복종과 반항’사이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며 불안정한 양가(兩價)감정을 내면화하게 된다.

분노와 반항은 무의식 속으로 억압한 채 의식의 수면위로는 복종만을 내보인다. 권위에 대한 공포심때문에 복종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나 반항은 때를 만나면 언제라도 다듬어지지않은 상태로 불쑥 불쑥 그들의 삶을 위협한다.

삼성의 울타리 안에서는 분노를 터뜨리고 반말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이건희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텔리비젼 뉴스에 등장하는 이건희를 보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표정이나 태도가 당당하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양가감정의 두 얼굴이 아닐까 싶다.

찬바람은 옷섶을 열지 못한다

이건희처럼 강박적 경향이 있는 사람은 내적인 규율이나 원칙이 엄격하고 이상주의적이어서 스스로나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고통을 주지만 타인에게는 득을 주는 경우도 있다.

삼성이 지향하는 초일류주의는 그러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초일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겪는 이건희와 삼성 사람들의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들은 그 열매를 달게 즐기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겠지만 삼성은 우리에게 ‘고객’과 ‘서비스’라는 개념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 거의 최초의 기업이다.

경제전문가들에 의하면 삼성은 시스템 그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한다. 삼성의 한 임원은 “이건희 회장이 전횡을 한다는 말은 삼성의 실체를 모르는 얘기이며 회장은 단지 큰 방향만 지시한다”고 말한다.

이건희 회장은 실무적인 일을 직접 챙기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 넣는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완벽주의적 문화는 이건희라는 인물의 개인적 성향으로 부터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라는 조직 자체가 가지고 있는 놀랄만한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자는 게 아니고 아직까지는 그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 기자의 다음과 같은 평가도 그러한 현실상황의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합리성을 강조하는 삼성에서 유독 오너 문제만 나오면 일반인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아주 오래전에 “제발 나를 비판해달라. 비서실에 2백명이 있지만 아직까지 나한테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회장 이러시오. 저러시오’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개탄했던 사람이다.

슈퍼엘리트 집단인 ‘인재의 삼성‘에 예스맨만 즐비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건희는 분노와 은둔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인데, 그의 분노나 적개심은 적절한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인다. 주위 사람들은 그걸 두려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사람의 분노는 주위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법이다. 비만아가 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황제에게도 공포심과 열등감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황제의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정신적 빈혈은 더 은밀하고 치명적으로 진행되어 본인과 주위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건희도 개인적으로 보면 인격적으로 여러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다.

이건희식 사고방식을 한번 그대로 차용해 보자.
“어떤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는 순간 문제해결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건희 자신과 삼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인간 이건희와 삼성의 울타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여유있는 ‘남근기적 삶’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로서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은 이건희의 고통스런 개인적 삶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도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도 좋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이 세상의 히트곡이 나의 히트곡

이번에는 가수 조영남에 대해서 살펴 보자.

1970년대 초반, 조영남이 지금의 H.O.T나 조성모 급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화여대강당에서 조영남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 몇 시간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는데 수업을 끝낸 이대생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서 공짜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그 숫자가 수백명에 이르게 되었는데 구경꾼(그것도 여자들)을 의식한 조영남은 확실하게 오버하며 열창을 했다. 너무 불러제끼는 통에 진짜 공연 때는 목이 거의 잠겨 그 공연을 망쳐버리고 말았단다. 아마 지금 그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그는 여전히 오버할 것이다.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예쁜 여자를 보고도 설교를 계속할 자신이 없어서 목사되기를 포기했다는 사람이 바로 조영남이기 때문이다.

“왜 노래를 부르냐구요? 더 예쁜 여자, 더 좋은 여자를 얻어 멋지게 살기 위해서죠”
데뷔 2년째인 1968년, 한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못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일부러 큰 안경을 끼고 다닌다는 그가 그렇게 여자를 중요시(?) 하면서도 그로 인한 열등감에 발목이 잡혀 있지 않고 언제나 ‘여복이 많다’고 자랑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가수, 화가, MC, 글쟁이, 뮤지컬 배우, 연애쟁이’
그가 밝히는 자신의 다채로운 이력이다. 근자에 그가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은 그림이다. 20여 년간 십수번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는데 요즘은 그의 그림값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못생긴 얼굴에다 ‘화개장터’ 외에는 변변한 자기노래 하나 없는 그가 평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지금은 미술계에서도 무시못할 존재로 살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는 가수입니다.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입니다”
언젠가 신문에 기고한 그의 칼럼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데뷔 초창기의 이문세가 가수로서보다 모창을 잘하는 재치있는 MC로 활동하고 있을 때, 이종환씨가 그에게 늘 히트곡도 없는 가수가 무슨 가수냐고 방송에 나올 때마다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이문세에게는 그 말이 엄청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그후 그는 피나는 노래연습과 좋은 곡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최정상급 가수가 됐다.
그러나 조영남은 30년 넘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꿋꿋하기 그지 없다. 오히려 그걸 자기의 무기로 삼고 인기의 원천으로 활용한다.

1968년에 조영남이 “쇼쇼쇼”라는 무대를 통해 가요계에 데뷔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릴 무렵, 최희준은 몇 년째 가수왕을 독식하면서 가요계를 평정하고 있었다. 조영남의 데뷔 당시를 회고하는 최희준의 고백이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놈이 나왔으니 정말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얼마 후에 미국으로 건너 가버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영남은 그런 가수였다. 그는 지금까지 늘 팬들로 꽉 찬 수백차례의 개인 콘서트를 열었고 100여 장의 음반을 냈다. ‘이 세상에 있는 히트곡이 바로 나의 히트곡’이라는 그의 배짱이나 당당함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유쾌하게 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천성적으로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클래식을 아무리 파야 대학교수 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쉽게 유명해 지고 돈도 벌 수 있는 ‘경음악’을 선택했다.

와우아파트를 건설한 서울시장 앞에서 신고산 타령을 개사한 ‘와우아파트는 우르르......’를 불러 꽤씸죄로 군대에 끌려 갔고, 군 시절에는 부대를 방문한 박정희 전대통령 앞에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를 열창해 ‘심기경호’를 부르짖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죄로 인생을 마감할뻔 하기도 했다. 그게 조영남이란 사람이다.

"너무 예쁘고 똑똑해서 그래"

그는 얼마전부터 도올 김용옥에 심취한 모양이다. 나는 도올에 대한 그의 얘기를 들으면 ‘아 저 얘기는 조영남이란 사람이 김용옥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도올에 관한 조영남의 얘기는 결국 조영남의 자신의 속마음에 다름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말하는 도올의 모습, 도올의 장점이란 결국 그 자신의 모습, 그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그는 ‘이자식 저자식 개새끼 소새끼‘ 하면서 목핏줄터지는 도올의 TV강의를 들으며 매번 강의마다 ‘아, 나의 살아있는 스승이여!’를 되뇌였다고 한다. 그는 도올을 ‘이 시대의 마지막 스승’ 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의 중국식 검정 복장, 민머리, 일그러지는 얼굴표정, 핏발튀는 탁한 목청의 하이톤, 칠판 위를 유창하게 달리는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 단어들. 그가 골라쓰는 난폭한 어휘, 하버드의 철학박사 학위를 손톱만큼도 의심할 수 없는 방대한 학문세계, 거기서 걸러져 나오는 우리네의 고질적 환부를 향한 예리한 비판과 통렬한 지적 등. 이런 요소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극 ‘왕과 비’를 방불케 한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찬사를 도올에게 바친다. 비단 도올뿐이 아니라 조영남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

조영남은 자신도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 달란트가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그런 희망사항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부당하게 대접받거나 곤경에 처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그들을 두둔한다. 그게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투사(projection)’다.

예전에 그는 불법 운전면허 문제로 재판을 받고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탤런트 이승연을 두둔하는 컬럼을 썼다가 심한 비난을 받은적이 있다. 그의 두둔 이유를 들어보자.

“불법 면허증 정도는 흔히 있던 일 아니냐. 초범이고 나름대로 방송을 통해서 국민을 위하여 그간 헌신도 했으니 관대히 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걸 뭘 꼭 끌어다가 정식 재판까지 치뤄야 했느냐? 승연아! 어쨌거나 너는 큰일을 해냈다. 국민들에게 운전면허 불법 취득이 그토록 무서운 죄라는 걸 원없이 각성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왜 너한테 시선이 따거운 줄 아니? 네가 너무 이쁘고 똑똑해서 그런 거란다“

간혹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비호하려는 충동을 느낀다. 그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와 같다. 도올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노자를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자랑이나 하고 앉았다니. 그런 유치찬란한 구조를 모를 김용옥이 아니다. 짬짬이 자화자찬으로 들려지는 대목들은 면밀히 계산된 그만의 풍자이며 해학이다. 멍청한 상대방의 뇌신경을 찌르는 경각의 침술이며 상대방의 침술을 끌어당기는 고도의 테크닉일 뿐이다”

놀랄 만큼 조영남의 속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도올은 ‘면밀히 계산된 풍자와 해학’의 소유자가 아니다. 노자와 김용옥이라는 단어만 없애면 그건 그대로 조영남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자기를 망가뜨리면서고 절대 망가지지 않는 사람

사람들한테 ‘오버’한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과장된 몸짓과 말투는 조영남의 트레이드 마크다. 예전에 쟈니윤 쇼에서 보조 MC로 나왔던 그를 기억한다. 턱을 괴고 앉아서 웃다가 팔꿈치가 무릎에서 미끄러져 옆으로 넘어지고, 게스트가 우스개소리를 할 때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다가 바닥에 쭈그려 앉기도 했다.

30년을 넘게 대중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의 유치함의 구조를 모를리 없다. 의도적인 ‘오버’가 지나쳐 1994년에는 ‘무의미한 감탄사의 습관적 사용, 불필요한 발어사 및 비표준 발음문제’로 방송위원회에서 개선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조영남이란 인물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익숙한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조영남은 자기를 망가뜨려 가면서도 절대 망가지지 않는 사람이다. 못생겼다는 자신의 얼굴이나 두 번의 이혼경력,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 등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킨다.

그쯤되면 그의 약점은 이미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품가치를 적절하게 높일 수 있는 하나의 훌륭한 도구인 것이다. 그는 열등감을 훌쩍 뛰어넘어서 진화시킨다.

균형감각까지 보태진 풍자와 해학은 김용옥을 능가한다. 2000년 4.13총선에 출마한 개그맨 김형곤에게 보낸 충고의 글을 한번 보자.

“형곤아! 선배의 마지막 부탁이다. 어디가서 네 입으로 너 자신을 ’정치권의 가시같은 존재‘(김형곤은 자신이 정치풍자 개그를 했기에 정치권에서 자신을 그렇게 본다고 했다)라는 표현을 쓰지마라. 너무 오버였다. 그쪽도 다 바쁜 사람들이다. 장담하건대 아무도 너를 미워하지 않고 가시같이 여기지도 않는다”

절묘한 대중감각을 바탕으로 한 풍자와 해학의 백미다. 그런 풍자와 해학을 무기로 그는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일급 컬럼니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그의 글은 재미있다. 문장이 쉽고 직설적이어서도 그렇지만 일단 유명한 사람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글의 문맥상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대중이 알만한 사람들의 실명을 하나하나 거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도 금방 알게 된다.

“내가 멤버들을 소개하면 내 말뜻을 여러분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저쪽 끝자리부터 필립 모리스 담배를 파는 아저씨 민병휘, 국민회의 부총재 정대철, 연극배우 노처녀 정경순, 역시 연극배우 출신이자 전직 환경부장관 손숙, 내옆으로 조순 전 서울시장의 홍보비서였던 앵커우먼 정미홍, 천하의 국민 아나운서 김동건, 그리고 맨 끝자리에 명지대학 이사장 유영구.....”
그가 소개하는 사람들 앞에는 늘 그들의 직책이 길게 따라 붙는다.

“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도 30년 가까이나 형 동생으로 사귀어왔고, 내 친구 문화관광부 장관 김한길이도 어쩌구 저쩌구....”
“내가 친하게 지내는 김연주는 서울 강남에 있는 영동여고의 학생회장 출신이고....”

그의 속을 다 알 수야 없지만 정치권에 진입할 수도 있는 훗날을 위해서 인맥 인프라를 구축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인간관계 자체를 즐기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유명인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관심을 보이는데 그는 그런 심리를 자기 글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천재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

연애도 인생도 봄바람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그는 결혼 두번, 이혼 두번에 지금은 자유로운 싱글이다. 이젠 세상의 히트곡처럼 세상의 여자가 온통 그의 연애 대상이 되었다.

그가 두번째 이혼을 하자 한 개그맨은 “딸가진 부모님들 조심하십시오. 조영남이 이혼을 했답니다”라며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하늘이 내린 예술적 재능과 비상한 머리를 이용해 자신의 자유로운 삶과 대중의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키면서 ‘풍요로운 예술가‘로 살아간다. 그러한 자유로움의 심리적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내고향 충청도’라는 그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조영남은 ‘내고향 충청도’를 TV가 아닌 일반 무대에서 부를 땐 가사를 바꾼다. ‘어머니는 밭에 나가시고, 아버지는 장에 가시고’라는 가사대신에 ‘어머니는 예배당 가시고 아버지는 술집에 가시고’ 로 바꾸어 부른다.

사연은 이렇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평생 술독에 빠져 지내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식구들을 예배당으로 내몰고 정작 당신은 장터에서 술에 절어 지내곤 하던 아버지였다.

13년을 발치에 오줌깡통 놓고 사시다 세상을 뜬 아버지였지만 그는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늘 좋았단다. 고등학교를 서울 누이 집에서 다녔던 그가 방학 때 고향집으로 달려와 “아버지, 저 왔어요” 하면 아버지는 너무 반가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는데,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는 설레임과 벅찬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건희 회장의 부자 아버지와는 달리 무능했지만 아들과 정서적인 끈을 놓지 않아 행복했을 조영남의 아버지. 조영남은 어린 자신에게 화투 ‘육백’을 가르치던 한량기 많던 아버지(사실 그 기질을 그가 물려받기도 했을 것이다)를 조금의 찜찜함이나 부끄럼없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어쩌면 그의 당당함이나 거침없음은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부터 비롯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50대 중반이 넘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조영남, 앞으로 그가 펼쳐 나갈 또 다른 방식의 새로운 삶에 호기심이 생긴다.

자막 좀 비뚤어지면 어때!

열등감이란 인간이 좌절을 겪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인간은 생로병사라는 근원적인 좌절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모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우린 보통 가진 것이 없을 때 좌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좌절로 인해서 스스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감정적인 풍성함속에서 좌절을 피해가는 못생긴 조영남보다 부모의 냉정함 앞에서 애정에 대한 엄청난 좌절을 맛본 황제 이건희 회장이 가진 것이 더 없다고 느낄 가능성이 많고, 이건희의 열등감은 조영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TV광고를 연출하는 감독으로부터 재미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CF 감독에게 가장 피가 마르는 순간은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시사회를 할 때라고 한다.

시사회장에서 CF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나 제스쳐, 하다못해 기침소리까지에도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독은 가끔 시사회장에서 장난(?)을 친단다.

그 회사의 이름이나 브랜드명을 표시하는 자막을 일부러 약간 삐딱하게 집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사회장에 있던 열명 중의 열명 모두가 그 삐딱한 자막에 신경이 쓰여 다른 부분에 제대로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사 로고체 자막만 똑바로 하면 좋을 거 같네요’ 자막을 교체하는 정도의 작업은 일도 아니란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열등감의 심리적 구조도 그와 비슷할지 모른다. 문제의 본질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지엽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삐뚤어진 자막때문에 정작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면 이것보다 더한 어리석음이 없다. 그러나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그 필터를 통해서만 인식되기 때문에 삶의 태도나 가치관, 대인관계 등이 모두 그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남한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내게는 너무나 심각한 일인 경우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열등감이란 감정은 마치 변종 아메바처럼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열등감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실상은 ‘마음의 자막’을 하나 갈아 끼우는 간단한 작업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죽을 듯 괴로워한다. 아마도 그게 우리의 삶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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