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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고백의 미덕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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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47회 작성일 10-11-2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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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의원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도중 하차했다. 군사독재 시절 모진 고문에도 무릎 꿇지 않았던 김근태가 눈물을 흩뿌리며 후보 사퇴를 선언하는 모습은 눈물겹다. 사퇴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제주․울산 경선에서 얻은 ‘지지율 1.5%’라는 저조한 득표율 때문이며 그것은 김근태의 ‘불법 정치자금 양심선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당내 경선에 돌입할 즈음 일곱 명의 경선 주자 중 네 번째였던 그의 지지도는 양심고백을 한 순간부터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느 기자의 말처럼 ‘고해성사는 빛을 잃고 단죄의 돌만 난무한’ 결과랄까.

나는 그 참담한 광경을 보면서 ‘자기고백’의 의미를 되새김질 한다. 정신과에선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자에게는 자기고백적인 심리치료를 하지 않는다. 자기고백적인 심리치료가 정신질환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평상시에 사람은 무의식의 욕구나 충동들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이것이 자아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자아의 기능이 매우 약하다. 만일 이들에게 ‘누구를 죽이고 싶을 만큼의 격렬한 증오심’을 자유연상을 통해 표현하게 하면 이들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과 무의식, 주관과 객관, 현재와 과거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정신적으로 붕괴된다. 정신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자기고백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는 뼈아픈 상처나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는 자기고백이 감정의 정화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 그게 바로 자기고백의 가장 큰 미덕이다.

김근태의 불법 정치자금 고백은 정치인 모두의 자기고백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왕따’시켜 사퇴를 재촉한 듯한 민주당의 당내 분위기에서 자기고백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을 연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양심선언 직후 그가 민주당 경선에서 꼴찌를 기록하자 국민들 사이에서 김근태 지지 릴레이 서명 운동이 벌어졌고, 후원 모금전화로 순식간에 1천만 원이 모금되었다고 한다. 김근태의 자기고백을 ‘정치자금 투명화의 계기로 삼자’는 집단적 속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정서는 민주당 내부 집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 결과가 김근태의 후보 사퇴다.

김근태의 양심고백에 단 1%의 정치 전략적 고려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도, 특정 정당을 흠집 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직의 자아기능이 좀더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김근태의 자기고백이 ‘한 단계 높은 통찰로 이어질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단순히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성찰에 관한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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