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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많은 것도 병이다 - 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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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58회 작성일 10-11-2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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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집이 경매를 통해 48억1천만 원에 팔렸다. 그는 1999년 대우그룹 자구책을 발표하면서 전 재산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할 때도 집과 장남의 묘소가 있는 안산농장만은 제외했을 정도로 집에 애착이 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갔으니 일부에서 제기하는 ‘은닉재산’이 없다면 김우중은 사실상 빈털터리가 된 셈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김우중이 진짜 망했구나" 하는 강한 실감에 괜스레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고도 한다. 전성기 때의 김우중을 떠올린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김우중이 누구인가.

‘세계경영의 전도사’, ‘한국 최고의 비즈니스맨’으로 불리며 한국의 경제인 중 그만큼 해외에 널리 알려지고 또 해외에서 펀딩이 가능했던 인물도 없다고 평가받았던 사람이다.

대우는 IMF 직전까지만 해도 고용인원 32만(국내 10만, 해외 22만) 명, 해외지사․현지법인․연구소․건설현장 등 글로벌 네트워크 590개(110개국), 총매출 71조 원, 총수출 151억 달러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쌓아왔던 기업이었다. 그 기업의 총수가 바로 김우중이었다.

그는 한때 많은 젊은이들과 샐러리맨들의 살아 있는 신화이자 우상이었으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화두로 세인의 찬사와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 같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김우중식 추진력. 사람들이 김우중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을 그것이 오늘날 ‘집도 절도 없는’ 김우중의 신세를 재촉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가졌던 불퇴전의 용기나 불굴의 의지까지를 매도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많은 경우 나는 김우중식 저돌적 추진력에서 병적인 ‘자아팽창’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조증무드(manic mood)의 일종이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김우중의 일생은 자아팽창, 즉 조증무드의 연속으로 보인다. 조증 무드에 있는 사람은 늘 자신감에 넘치고 매사를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본다. 기분이 좋고 늘 들떠 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잠을 적게 자는데도 불구하고 기운은 솟는다. 할말도 많고 아이디어도 넘친다. 자연히 일을 자꾸 벌인다. 그들은 늘 확신에 차 있어서 일을 쉽게 시작한다. 한번 시작하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다. 두려움도 없다.

얼핏 ‘그런 것이 병이라면 나도 한번 걸려보고 싶다’고 할 만큼 매력적이지만 그건 독버섯의 색깔이 유난히 매혹적인 것과 같다. 더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들의 지나친 낙천성은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에 대한 대비를 불필요한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조증의 끝이 예외 없이 남루하고 허망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조증무드 때 사업을 확장하고, 지나친 투자를 했던 사람이 조증무드가 가라앉은 다음에 후회하며 그것을 감당하느라 고통을 당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피해의식이나 자기비하 같은 ‘자아위축’은 누구나 문제라고 쉽게 인식하지만, 조증 같은 ‘자아팽창’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수긍하지만, 조증인 경우에는 애초에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인생관이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앞서가는 경제인의 표상’이 될 수도 있었던 김우중은 ‘불과 종이 한 장 차이로 사기꾼’처럼 되어버렸다. 그 종이 한 장 차이는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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