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흐릴수록 거리감이 커진다 -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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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06회 작성일 10-11-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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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10% 안팎의 ‘저조한’ 누계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간 국민들 사이에 인식된 정동영의 호감도나 정치적 잠재력 등을 감안한다면 ‘저조하다’는 표현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보다 두 배쯤의 표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첫 경선지인 제주와 자신의 연고지인 전북에서만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 여타 지역에서는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노무현과 이인제의 팽팽한 양강 구도 속에서 득표율은 불과 10%선에 머물고 있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경선지킴이로서,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후보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게 정동영의 전략이라고 한다. 그의 전략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국민경선을 성공시키기 위한 외로운 투쟁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더 미운 시누이’로 상징되는 비껴가기 경선전략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두 후보 사이에서 틈새전략을 펴면서 20% 정도의 득표율을 기대했던 정동영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를, 경선이 거듭될수록 두 후보에 대해 양비론으로 일관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전술적 오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나는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가 아닌 심리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분석에 동의한다. 경선 과정 중 일부 후보들이 사퇴하고 세 명의 후보가 남은 가운데 양강구도가 굳어지는 상황이 되면서 정동영에게 ‘절제의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느 감독의 말처럼 오버액션만 과잉이 아니다. 절제의 과잉 현상은 많은 경우 양비론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TV토론장에 나와 있는 정동영을 보고 있으면 세련되고 유능한 토론 사회자를 보는 느낌이다. 이인제, 노무현 후보의 중간에서 철저한 양비론과 경선지킴이 조정역으로서의 역할로만 일관한다. 특별성명이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 경선을 망칠 수도 있는(?) 비생산적인 논쟁을 중단하자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그의 지지자라는 한 젊은이는 “처음에는 중재의 미덕이 보기 좋았지만 정의원님은 링에서 싸우는 선수지 선수들을 중재하는 심판이 아닙니다. 결국 중재는 경선관리자들의 몫이니 제3의 대안론을 가지고 링 위에서 열심히 싸워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국민경선을 주창하고 이를 관철시킨 주역으로서 경선지킴이로서의 역할에만 치중하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일 것이다. 경선 분위기에 대해 과열 운운하지만 그것은 충돌로 인한 에너지 집중 현상이다. 모름지기 충돌을 해야 주목과 관심이 일어나고 또 그래야 그것을 해결하려는 에너지가 생기지 않겠는가.
나는 정동영의 기계적 중립이 정치적으로도 그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분노와 슬픔을 담아 리포트를 하던 정동영 기자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민주당 쇄신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폭발적 에너지를 경이롭게 지켜본 유권자들에게 지금 그의 모습은 몹시 낯설고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경계선상의 사상가’로 유명하다. 그는 어느 하나에 몰입되지 않고 의식의 각성상태를 유지하면서 그 경계의 모서리에 서기를 희망했다. 그의 ‘경계선 사상’은 존재의 각성상태를 유지하는 ‘Yes, but'의 철학이지만 현재 정동영의 양수겸장 전략은 긴장과 각성이 상실된 기계적 중립처럼 보인다. 존재의 각성이 동반되지 않는 ‘절제의 과잉’은 자기색깔만 잃게 할 뿐이다. 색깔의 원근효과 이론에 의하면 색이 흐릴수록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 법칙은 마음의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동영에게도 그 말을 전하고 싶다.
노무현과 이인제의 팽팽한 양강 구도 속에서 득표율은 불과 10%선에 머물고 있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경선지킴이로서,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후보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게 정동영의 전략이라고 한다. 그의 전략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국민경선을 성공시키기 위한 외로운 투쟁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더 미운 시누이’로 상징되는 비껴가기 경선전략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두 후보 사이에서 틈새전략을 펴면서 20% 정도의 득표율을 기대했던 정동영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를, 경선이 거듭될수록 두 후보에 대해 양비론으로 일관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전술적 오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나는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가 아닌 심리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분석에 동의한다. 경선 과정 중 일부 후보들이 사퇴하고 세 명의 후보가 남은 가운데 양강구도가 굳어지는 상황이 되면서 정동영에게 ‘절제의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느 감독의 말처럼 오버액션만 과잉이 아니다. 절제의 과잉 현상은 많은 경우 양비론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TV토론장에 나와 있는 정동영을 보고 있으면 세련되고 유능한 토론 사회자를 보는 느낌이다. 이인제, 노무현 후보의 중간에서 철저한 양비론과 경선지킴이 조정역으로서의 역할로만 일관한다. 특별성명이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 경선을 망칠 수도 있는(?) 비생산적인 논쟁을 중단하자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그의 지지자라는 한 젊은이는 “처음에는 중재의 미덕이 보기 좋았지만 정의원님은 링에서 싸우는 선수지 선수들을 중재하는 심판이 아닙니다. 결국 중재는 경선관리자들의 몫이니 제3의 대안론을 가지고 링 위에서 열심히 싸워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국민경선을 주창하고 이를 관철시킨 주역으로서 경선지킴이로서의 역할에만 치중하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일 것이다. 경선 분위기에 대해 과열 운운하지만 그것은 충돌로 인한 에너지 집중 현상이다. 모름지기 충돌을 해야 주목과 관심이 일어나고 또 그래야 그것을 해결하려는 에너지가 생기지 않겠는가.
나는 정동영의 기계적 중립이 정치적으로도 그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분노와 슬픔을 담아 리포트를 하던 정동영 기자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민주당 쇄신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폭발적 에너지를 경이롭게 지켜본 유권자들에게 지금 그의 모습은 몹시 낯설고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경계선상의 사상가’로 유명하다. 그는 어느 하나에 몰입되지 않고 의식의 각성상태를 유지하면서 그 경계의 모서리에 서기를 희망했다. 그의 ‘경계선 사상’은 존재의 각성상태를 유지하는 ‘Yes, but'의 철학이지만 현재 정동영의 양수겸장 전략은 긴장과 각성이 상실된 기계적 중립처럼 보인다. 존재의 각성이 동반되지 않는 ‘절제의 과잉’은 자기색깔만 잃게 할 뿐이다. 색깔의 원근효과 이론에 의하면 색이 흐릴수록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 법칙은 마음의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동영에게도 그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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