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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아버지의 건강한 아들 - 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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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55회 작성일 10-11-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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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에 출전할 태극전사 23명 중에 흥미로운 이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의 아들 차두리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첫 부자(父子) 월드컵 출전의 신기록을 세우게 되었다니 당연한 호기심이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60명이 넘게 거쳐갔다는 ‘히딩크 사단’에서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었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다.

나는 축구천재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숙명에 짓눌리지 않고 축구를 통해 ‘작은 성공’을 이룬 스물두 살 난 청년을 보면서 유쾌하고 대견하다. ‘특별한’ 아버지를 둔 이者들의 상상할 수 없는 심리적 갈등과 평범하지 않은 삶에 생각이 미치면 더 그렇다.

차범근이 누구인가. 20세기 한국 축구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불세출의 스트라이커, 축구팬들이 선정한 역대 국가대표팀 최고의 사령탑이라는 평가를 받는 명실상부한 축구영웅, 축구천재다. 그의 아들로 축구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웠을 리 없다. 아버지의 존재는 그에게 후광이자 동시에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을 때 차두리는 실력보다 ‘차범근 주니어’로 더 관심을 모았다고 알려진다. 국가대표가 된 후 한동안 골을 넣지 못하고 부진하자 “실력도 없는데 아버지 덕에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그러니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만큼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다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닌 듯 싶다.

나는 상담실에서 ‘특별한’ 아버지를 둔 사람들의 마음고생을 적지 않게 목격한다. 대체로 ‘특별한’ 아버지는 “아들이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늘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와 끝없이 비교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품는다. 물론 두 감정의 날 끝은 모두 아버지를 향한 것이다. 시계추같이 왕복하며 병존하는 양극단의 감정은 사람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분열시키기까지 하는 ‘양가감정(ambivalence)’의 무서움이다.

차두리처럼 ‘특별한’ 아버지가 있을 경우 일정 부분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내적 혼돈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된 조오련 씨 아들의 고백은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록이 떨어졌어요. 아버지가 미웠어요. 조금만 못해도 아버지와 너무 다르다며 다들 수군거렸거든요”

‘특별한’ 아버지들 또한 ‘양가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학을 떠난 아들에게 겨우 라면이나 끓여 먹고 살 정도의 생활비만 송금했다는 한 재벌회장의 일화처럼 자신의 돈과 유명세가 자식에게 끼칠 수 있는 부작용을 염려하여 ‘지나치게 엄격’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식이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턱없이 관대’해지기도 한다.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양가감정’이란 불가피한 것이지만 냉탕, 열탕처럼 낙폭이 큰 감정적 스윙은 정신적 균형을 잃게 한다. 마약복용혐의로 몇 번씩 구속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나 아버지가 현직 대통령일 때 형사처벌을 받은 김현철, 김홍일 씨 등은 ‘양가감정’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특별한’ 아버지로 인한 양가감정을 침착하게 극복하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차두리가 반갑다. 차두리는 “4년 뒤에 아버지는 감독으로 나는 선수로 독일 월드컵 무대에 나란히 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차범근은 그럴 능력과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이다. 차두리에게 바라노니, 차범근이 감독의 입장에서 차두리를 꼭 필요한 선수라 선발했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시비 걸 수 없는 선수로 대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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