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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 트러스트 - 최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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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07회 작성일 10-11-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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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각 일간신문의 사회면. 1급 지체장애인이 서울 시내 지하철역의 장애인용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숨졌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의 말미에는 2001년 1월 또 다른 지하철역에서도 비슷한 사고로 장애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덧붙여져 있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2002년 3월26일 세상을 하직한 장애해방운동가 고 최옥란 씨를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생소할 것이다. 그 자신이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던 최씨는 장애문제연구소 창립회원으로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위한 공대위’ 활동, ‘정립회관 정상화를 위한 공대위’ 활동,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 등 지난 십수년 간 장애해방운동에 헌신해온 사람이다.

2001년 2월에는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역 선로를 점거해 15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생계 유지조차가 불가능한 극심한 생활고에 일할 기회나 교육의 기회마저도 봉쇄된 현실에 절망한 그녀는 결국 30대의 젊은 나이에 고단한 세상을 뒤로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뿐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중증장애인은 자살하고픈 충동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라는 게 관련자들의 견해다. 최씨 같은 운동가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니 다른 장애인의 경우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오직 장애인 가족을 위해서 이민을 떠난다는 사람들의 절절한 심정에는 핏빛이 맺혀 있다.

우리나라에선 ‘나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혹은 ‘우연한 사고로 내가 장애인이 된다면’ 하는 결코 확률이 낮지 않은 가정을 하는 순간 지옥이 연상된다. 버림받음으로 인해서 피해의식을 가진 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해 정신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 중 하나가 ‘본질적 신뢰(basic trust)’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아기가 엄마의 조건 없는 보살핌과 따뜻한 공감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것은 ‘엄마(세상)가 나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주었다. 고로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다’라는, 엄마(세상)에 대한 ‘본질적 신뢰’다. 세상에 태어나 첫 번째의 심리적 과제인 ‘본질적 신뢰’형성에 어떤 이유로든 문제가 생길 때, 그 아기는 나중에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 고전 정신분석학 이론이다.

99마리의 양을 내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행동은 성경적 비유로서뿐 아니라 정신분석적으로도 매우 현명한 행동이다. 목자가 남은 양들에게 “길 잃은 양은 어차피 찾기 힘들 테니 깨끗히 잊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라고 한다면 양들은 안심할 것인가. “언젠가 내가 길을 잃으면 목자는 나를 버릴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무리 전체가 불안과 피해의식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길 잃은 한 마리를 포기하지 않는 목자를 보면서 99마리 양들의 마음에 자리잡는 것은 바로 ‘본질적 신뢰’다.

2001년 3월 단 한 명의 장애 신입생을 위해 학교 운영체계를 바꾸고 시설을 개조한 서울 시내 한 중학교의 사례가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일을 자기일처럼 기뻐했다. 그만한 미담에 어울리는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더 내밀한 이유는 ‘내 자신이 보호받는다는’ 무의식적 느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고 최옥란 씨는 지난 1989년에도 자실을 꾀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20대의 여성이 당연히 원하는 행복을 꿈꿀 수 없는 자기신세를 한탄했을 것이라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장애인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집단적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질적 신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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