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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명료함, 그렇지 않으면 죽음 -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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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85회 작성일 10-11-2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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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것처럼 이유 없는 현상은 없다. 한일 월드컵이 낳은 국내 최고의 스타라는 김남일 선수에 대한 국민적 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일부에선 김남일 현상을 ‘이상열기’라 진단하고, 한 외신은 한국의 축구팬들이 김남일의 축구 스타일을 ‘숭배할 정도’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지금 김남일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 반응은 축구의 영역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부상으로 출장이 당분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남일이 소속된 프로팀의 경기는 팀 창단 이후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인터넷 팬클럽 회원은 순식간에 수십만 명이 되었다. 김남일 본인이나 전문가들은 ‘솔직담백한 성격과 눈길을 끄는 노랑머리에 다소 터프해 보이는 외모’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일까.

신드롬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대중의 내면적 욕구와 맞닿아 있을 때 나타난다. 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상소리를 내뱉는 목소리를 흉내낸 ‘엽기대통령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인터넷상에서 수백만 명이 청취할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었다는데, 그 유머의 핵심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소리’라는 멘트에 담겨 있다. 우리의 속마음을 표현해준 까닭에 엄청난 공감력을 획득한 것이다.

사람들이 김남일에 열광하는 현상도 비슷한 맥락에서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언행 속에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어떤 흔적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남일은 간단명료한 인간형이다. 빙빙 돌리거나 쭈뼛거리지 않는다. 단순한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완전한 명료함,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라고 외쳤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명제에 가깝다. “이런 자리(사인회장)에서 첫 키스 언제 했는지 물어보면 바보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바보다”라고 대답하고,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지단이 김남일의 태클로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며 기자가 “어떡하냐, 지단 연봉이 얼만데…”라고 하자, 김남일은 “아,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라고 한다. 그에게 이런 예화는 수없이 많다.

김남일의 말과 행동을 접하고 있으면 ‘자아’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나의 생각과 지각, 나의 느낌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아의식이다. 그러니까 자아가 명확하게 느껴진다는 말은 생각과 느낌에서 자기만의 뚜렷한 중심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자기중심이 견고한 까닭에 간단명료하고 거침없어 보인다. 어떤 경우엔 일종의 오만이나 치기가 느껴질 정도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한국이 독일을 이기면 요코하마에 가는데…”라는 기자의 말에 “요코하마더러 오라고 하세요”라고 했던 그는 실제로 지단 같은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들과의 대결에서 배짱 있는 플레이를 펼쳐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의 대표팀 선배는 “남일이와 몸이 닿을 때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마치 바위에 부딪치는 느낌이다”라고 말한다. 강건한 체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견고한 그의 자아 탄력성이 상대를 밀어내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는 듯한 스포츠 스타를 보는 일은 즐겁고 유쾌하다. 그렇게 살고 싶은 우리의 잠재욕망이 자극받는 까닭이다.

폭발적인 김남일 현상 속에 자아중심성을 갈망하는 우리의 속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투원반 경기에서 원반을 더 힘껏 돌리려다 보면 자기중심을 잃고 실격당하는 경우가 있다. 삶의 자기중심성이라는 화두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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