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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부작용 - 이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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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99회 작성일 10-11-2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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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위에 두 점이 있을 경우 점과 점을 잇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심리학 이론처럼 사람들은 ‘나’와 ‘나 아닌 것’을 연결시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관계지향적 사고’다. 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인간의 행동이 본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까닭이다.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부모자식, 부부, 연장자와 젊은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부를만큼 막강하고 일방적이다. 영향력의 원천이 되는 권력이나 경제력, 지위, 재능, 인품 등이 남보다 특별해서다. “미당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시인은 미당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한 한 문학평론가의 말은 시세계에서 서정주의 절대적 영향력을 웅변한다. 그 정도까진 아닐지라도 방송에 관한 한 40여년간 지속된 방송인 이종환씨의 영향력 또한 막강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종환을 가리켜 대한민국 최고의 장수 디스크자키이자 이 시대 최고의 국민 DJ라고 추어 올린다. 지난 40여년, 이종환의 방송 인생을 감안한다면 호들갑이랄 것도 없다. 당연히 방송인 ‘이종환’이라는 브랜드의 영향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밤의 디스크쇼’가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 잡던 시절, 이종환이 특유의 감칠맛나는 화법으로 수필 한편을 소개하자 그 수필이 수록된 수필집이 하루 아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일은 하나의 전설이다. 그뿐인가. 최초의 음악생방송 DJ, 생방송 중 연예인 전화연결, 유려한 시낭송, 팝송가사 해설, FM 최초로 만들어진 일요일 공개방송 등 방송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이룩한 그의 기념비적인 성과들은 그의 영향력을 배가시킨다. ‘이종환 사단’이라도 말도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런 이종환이 7년간 진행해 온 ‘지금은 라디오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중도 하차했다. 사퇴이유는 프로그램 진행과 관련된 그의 정치 편향적 발언에 대한 논란과 이를 문제삼은 청취자에 대한 직접적인 전화 욕설 때문이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란 성공한 사람이며, 성공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지나친 자기확신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자체가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뭐든 옳은 것’이라는 확신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줄곧 탄탄대로만 내달려 왔기 때문에 자기확신에 차있는 것이 아니고 성공적이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들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부주의(selective inattention)했기 때문이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패의 경험을 내면화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성공만 해온 사람’으로 인식하며 그에 걸맞는 자기확신을 갖는다. 이종환은 청취자들의 예민한 반응을 수긍할 수 없다며 ”35년 동안 방송을 했지만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혹시 이종환은 자신의 절대적 영향력으로 인해 피할 수 없었던(?) 과오들에 부주의한 것은 아닐까.

개구리에게 돌팔매질을 하던 소년은 어느 순간 부모나 선생님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개구리의 입장처럼 나약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런 인식이 전제되면 개구리에게 행사할 영향력의 수위 조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일종의 ‘쌍방형(two-way) 영향력’이다. 일부 방송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지금까지 방송진행자가 청취자들의 ‘선별된’ 전화, 엽서반응에만 길들여져 있다가 인터넷 언론 자유에 노출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도 말한다. 이종환씨의 급작스러운 방송 중단은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일방형(one-way) 영향력'에 익숙해진 그의 불균형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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