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놈’이 이긴다 - 이환경 > 한국사는 사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한국사는 사람


 

‘센 놈’이 이긴다 - 이환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66회 작성일 10-11-21 23:13

본문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가 연일 화제다. 50%에 가까운 경이적인 시청률을 증명하듯 부천에 있는 오픈세트장엔 주말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이용해 이 드라마를 시청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10만 명 이상 몰리는 바람에 접속이 제한될 정도였단다. 직장남성들의 귀가시계가 된 지는 이미 오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극중 이름을 별명으로 붙이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니 가히 《야인시대》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그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지만 주종을 이루는 건 역시 ‘현실적 상황’과 연계한 진단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계의 이합집산에 실망하는 시청자들이 김두한의 의리를 하나의 모델로 여긴다’거나 ‘사회 정의를 외면하는 탈법적 상황에서 주먹으로 정의를 찾아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현실의 갑갑증을 해소해준다’는 식의 해석이다. 100% 틀린 진단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인기 드라마의 요인을 무조건 시대상과 결부시키는 분석은 너무 허망하다. 현실과의 연계성이 인기 드라마의 한 근거일 수는 있어도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보는 까닭이다.

나는 《야인시대》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결정적 이유를 드라마상의 모든 인물들이 제각각 독립적인 존재로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전문가의 처지에서 어쭙잖게 ‘드라마론’을 펼치자는 게 아니다. ‘독립적 존재’를 향한 인간의 열망이 얼만 강렬한가를 말하고자 함이다.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도 ‘나’만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대기실에 앉아 있던 내담자(특히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정신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내담자)들은 자기가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상담실 문을 열고 나오는 또 다른 내담자를 보면서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토로한다. 자신이 단지 의사의 여러 내담자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게 싫어서다. 작가 이인성은 “내가 지금 마시는 커피에 대해 맛이 있다, 없다, 색깔이 어떻다라는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인성이 어떤 인간이냐고 물으면 복잡해진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다.

나는 《야인시대》를 집필하는 작가 이환경이 특별히 그런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집필한 《용의 눈물》이나 《왕건》에 등장하는 정도전이나 종간, 아지태, 최응 등은 단순한 조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각각의 캐릭터를 잘라내면 그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편의 드라마가 창조될 만큼 ‘독립적’이고 생생하다. 《야인시대》의 조연들도 마찬가지다. 독립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인터넷상에 쌍칼, 신마적, 구마적 등을 환호하는 팬클럽이나 동호회가 즐비한 것이 그 한 증거다. 심지어는 일본 고등계 형사로 등장하는 ‘미와’에 대해 대사가 별로 없다고 제작진에 항의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환경 드라마의 분화된 인간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펼치는지 모른다.

이환경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서른두 살에 방송작가가 되기까지 엿장수, 고물상, 막노동 등 백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에게 학력이 낮아 방송가에서 수모를 당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을 하자 이환경은 “어차피 ‘센 놈’이 이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이환경이 자신의 이력을 드라마로 쓴다면 ‘센 놈’이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정치인의 자서전처럼 나머지 등장인물을 들러리로 내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드라마에선 실패한 인물에게 더 애정이 간다는 그의 고백을 상기하면 억측이 아니다. 그래서 이환경표 드라마에 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